앱 활용해 운동·공부·명상…"건강한 중독에 불면의 밤 사라져"

아직 그믐달이 홀로 하늘을 밝히던 지난 6일 아침 6시50분께 경기 용인시 수지구 용인아르피아종합운동장에 ‘용수기(용인수지기흥) 러닝 크루’ 멤버 14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달리기 앱 ‘런데이’에서 지난해 11월 모임을 결성한 이들은 매주 이곳과 탄천변을 5∼10㎞씩 함께 달리고 있다고 했다. 150여명의 크루 멤버들은 런데이 앱이 제공하는 달리기 프로그램(1~30분)에 맞춰 함께 달리기도 하고, 혼자 뛸 땐 앱에 내가 얼마나 뛰었는지 기록을 공유한다. 다른 멤버들의 응원과 목표 달성 스탬프는 ‘달리기 촉매체’가 됐다.

크루에서 훈련부장을 맡은 직장인 선황석(38)씨는 “비만으로 인해 고혈압 등이 생긴 뒤 건강 때문에 러닝 크루에 가입했다. 체중도 11㎏가량 감량했다”며 “운동을 시작하고선 퇴근 후에 쇼트폼을 보며 무기력해지고 불면증에 빠지는 악순환이 사라졌고, 이젠 크루원들과 1만㎞ 뛰기 챌린지를 하며 매일매일 기록을 채우는 재미에 중독된 거 같다”고 말했다. “런데이 앱 켜시고요.” 리더 최고은(43)씨 말에 준비운동을 마친 이들은 이날도 휴대전화를 스마트워치에 연결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하루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장비에 과도하게 노출되며 집중력 붕괴와 사회성 상실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스마트폰 감옥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는 몸에 독소를 제거하는 디톡스 다이어트처럼 일정 기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디톡스’에 나서는가 하면, 한발 더 나아가 스마트폰을 아예 쓰지 않을 수 없다면 스마트폰의 중독성을 건강한 삶을 위해 활용해보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인 영국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 역시 디지털 디톡스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산만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몰입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는데 강력한 몰입을 위해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도파민 중독의 대안으로 이런 활용법이 점점 더 주목받을 거라고 전망한다. 대표적인 예가 운동 동기를 자극해주는 앱 활용이다. 일일 활성 이용자 약 4만5천명, 앱 누적 다운로드 약 290만회에 달하는 ‘런데이’ 앱 사용자들은 이용자들 간의 응원, 챌린지 보상 등 긍정 반응으로 서로의 도파민을 자극하고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만난 ‘용수기 러닝 크루’ 회원 박종희(43)씨는 “앱을 켜고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뛰면 라면, 편의점 상품권 등 소소한 상품을 준다. 이런 소소한 보상들이 추운 날에도 집에 머물지 않고 밖에 나가는 동기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해당 앱에는 모두 2만5060개의 챌린지가 운영되고 있다. 인상균(38)씨는 “앱에서 나오는 친구들의 응원 메시지를 들으며 하루 1시간은 꼭 혼자라도 러닝을 하게 됐다”며 “무의미하게 동영상을 보며 보내는 시간이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직장인과 학생들은 공부와 자기계발에 앱을 적극 활용한다. 직장인 최민수(30)씨는 에스엔에스(SNS)를 하며 보내는 시간을 앱을 통해 영어 공부하는 시간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최씨는 “의미 없는 동영상을 에스엔에스에서 보며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앱에서 짧은 영어 클립이라도 보자고 마음먹었다.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앱에 자주 들어가고 있다”며 “지루할 수 있는 책과 달리 앱에서 재밌게 공부하면서 영어 공부 시간이 늘었다”고 밝혔다.

마음의 안정을 제공하는 앱도 있다. 직장인 지산하(31)씨는 ‘캄’(calm)이라는 명상 앱을 이용해 일주일에 두세번 명상을 하며 정신건강을 되찾고 있다고 했다. 지씨는 “에스엔에스나 쇼츠 영상들을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이용해왔는데, 반대로 명상 앱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현실의 감각을 되살려준다”며 “명상으로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고 했다.

이용자들의 이런 욕구를 파악한 테크 기업들은 건강한 중독을 만들어낼 수 있게 앱을 설계 중이다. 명상 앱 ‘마보’의 유정은 대표는 “푸시 알림을 통해 아침저녁으로 마음 챙김 메시지를 보내고, 일기 쓰기 기능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는 등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앱을 설계했다”며 “실제 이를 통해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마보 앱은 현재 총가입자 수 40만명, 누적 다운로드 수 70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전지영 런데이 사업 담당은 “런데이 앱은 재방문 비율이 80%에 달한다”며 “친구 응원 시스템, 러닝 이벤트 등의 장치를 통해 러닝의 재미를 느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됐던 앱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 거라고 전망한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과)는 “코로나 기간 비대면 사회를 거치면서 스마트폰을 단순히 오락의 기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등 생산성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앞으론 스마트폰 등이 개인의 성취나 성공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여겨지고, 작은 성취마다 보상을 줘 결국 큰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앱들도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앞으로는 유익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테크 기업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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