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尹, 퇴각 모르는 ‘나무대가리’ 오기가 파멸 불렀다

[조귀동의 정조준] 열세에도 무리한 공격 고집하다 대패

  •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이탈리아로 가는 길’ 저자

    입력2024-12-0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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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0 총선 패배 자초했으면서 당 장악만 골몰

    • 야당 “적대적 반국가 세력” 규정해 대결

    • 참모들도 극단적 주장하는 이들만 남아

    • 민주주의 정치 기본 모르고 극단적 선택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KTV 캡쳐)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KTV 캡쳐)

    12월 4일 반나절 만에 끝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빨리 끝난 쿠데타다. 김옥균 등 개화파가 일본군을 믿고 저지른 갑신정변도 사흘은 버텨냈다. 윤 대통령의 쿠데타에는 국민의 지지나 암묵적인 동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거사’를 결행하기 위한 조직도 만들지 못하고, 집행을 위한 무장력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투입된 군대와 경찰이 동조할 리 만무했다. 친윤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미온적 동조나 방관으로 해석될 행동을 하는 게 전부였다. 내란죄 혐의를 받는 것까지 각오하고 저지른 ‘구국의 결단’이었음에도 허무하게 끝난 이유다.

    비상계엄 사태는 윤 대통령이 얼마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왜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됐는지도 잘 드러낸다. 타협과 협상, 그에 따른 상대방의 주장 수용과 이익 보장, 유권자 집단에서 중도 포지션의 확보, 문제가 터졌을 때 적당히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등 민주주의 정치에서 필수적인 기술 대신 단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행태가 그를 외통수에 내몬 것이다. 6공화국의 기본 합의를 일거에 뒤엎겠다면서, 정작 정치 엘리트와 국민의 동의를 얻을 방법을 하나도 취하지 않은 기이한 방식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적 한정치산자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도박을, 이길 수 없는 방식으로 걸면서 금치산자로 전락하게 됐다.

    무모한 고집은 어떻게 대패를 부르는가

    전쟁사를 살펴보면 열세인 상황을 도외시하고 무모하게 공세에 나서거나, 현 위치 사수를 고집하다 대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세일수록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해 방어해야 하지만, 지휘관의 고집에 주력군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부는 핵심 도시 애틀랜타가 함락되자, 방어 병력을 긁어모아 공격에 나섰다. 적의 보급 거점을 점령하면 북군이 물러날 거라는 존 벨 후드 장군의 주장을 받아들여서다. 그런데 보급 거점인 내슈빌은 애틀랜타에서 직선거리로 330㎞ 떨어진 곳인 데다, 북군은 공격 부대와 별도로 방어 부대를 편성하고 진지를 잘 구축해 놓았다. 중과부적인 상황에서도 ‘닥치고 돌격’에 나서면서 원정군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남부는 후방을 지킬 병력이 완전히 소멸해 무인지경이 됐다. 지휘관 후드는 ‘돌대가리’라는 뜻의 ‘나무 머리(wooden head)’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게 됐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소련군의 공세에 후퇴하지 말 것을 강박적으로 지시했다. 그 결과 스탈린그라드(6군), 크림반도(17군), 발트해 연안(북부집단군) 등에서 잃지 않아도 되는 병력이 포위 섬멸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는 실체 없이 지도에만 표시된 독일군이 공세를 취하면 베를린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명령을 내리고, 장군들이 자신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패배했다고 주장하곤 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시작 때부터 “나는 싸우다 죽을 거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2022년 10월 원외 당협 위원장과의 오찬에서도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며 민주당을 겨냥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발언을 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근거를 댄 건 윤 대통령의 평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황이 불리하지만, 상대방과 타협할 수 없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건 그의 세계관에선 꽤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지지자 연합 스스로 망가뜨려 선거 패배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문제는 2023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모두 대패하면서 열세에 몰리게 된 원인이 그의 세계관에 있다는 것이다. 선거 패배는 지지자 연합 와해의 결과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 정서로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선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찍었던 유권자들은 같은 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이탈했다. 2023년 하반기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가 2020년 총선 수준이었다. 중도층과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도외시하고 이념이나 역사 전쟁을 전면에 내세우고, 균형 재정을 이유로 정부 지출을 줄이면서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민주당의 공세나 국민의힘 비주류의 비협조를 탓하기 일쑤였다. 국정 방향은 그대로였고, 대통령실이나 행정부 인사 쇄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에 내리꽂는 것부터 아무것도 양보할 수 없다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온 것이었다. 인기 없는 여당이 선거에서 패배를 면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데, 당내 중진에게 권력을 넘겨주면 기껏 ‘윤석열당’으로 만든 국민의힘이 다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뀌지 않는 대통령을 향해 유권자들이 종이 짱돌(투표용지)을 던져 심판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입법 독재”(비상계엄 선포문)라고 규정한 4월 총선 결과에 대해서 그는 하나도 책임지지 않았다. 공식 발언 없이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을 상대로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다.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한 뒤, 참모들이 언론에 설명하는 식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이른바 4대 개혁(교육·노동·연금·의료개혁)에 매달렸다. 언론진흥재단의 언론 기사 데이터베이스 빅카인즈에서 ‘윤석열’과 ‘4대 개혁’이 함께 쓰인 기사는 2022년과 2023년 각각 687건, 367건에서 올해 2717건으로 뛴다. 방어선을 뒤로 물리지 않고 의대 정원 확대 같은 과감한 ‘공세’를 선택한 것이다.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대통령이 회피한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당내 기반이 약하고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한동훈 후보가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일하게 제대로 된 ‘비윤’ 후보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측은 총선 이후 별다른 정치 일정을 잡지 않았던 원희룡 전 장관을 억지로 후보로 내세웠다. 한 후보가 비대위원장 시절 김건희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무시했다는 이른바 ‘읽씹(읽고 씹는)’ 논란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것은 친윤의 네거티브 공세 때문이었지만, 역풍만 불렀다.

    전당대회 결과 한동훈 대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비윤의 구심점이 됐다. 그와 갈등이 깊어질수록 대통령실의 당 장악력은 약화했다.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친윤이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논란으로 한 대표를 공격하고, 한 대표 측이 김건희 특검법 반대 대오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등 윤 대통령은 더욱더 고립됐다.

    김건희계·충암파만 남은 측근 집단, 대안 없는 폭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12월 4일 새벽 무장 계엄군이 국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12월 4일 새벽 무장 계엄군이 국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열세인 상황에서 휘하 장교와 참모의 반대에도 공세를 외치는 지휘관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쳐내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의 ‘나무대가리’ 같은 행보에 대선 당시 형성된 측근 집단은 해체되고 김건희계나 충암파만 남았다. 보수가 공멸을 피하려고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주문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해 왔던 것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안이 없으니 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 출범 초기 윤 대통령의 측근 집단은 크게 네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검찰 특수부 인맥이다. 두 번째는 그가 개인적으로 알던 이들이다. 세 번째는 김건희가 모아온 사람들이다. 네 번째는 캠프 초창기에서부터 함께 했던 이명박계 출신이다.

    김건희계를 제외한 나머지 세 집단의 인물들이 빠르게 밀려나거나 튕겨 나갔다. 검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물론이고 대선 캠프에서 안살림과 네거티브 대응을 주도했던 주진우 의원도 ‘친한’이 됐다. 개인적인 측근 집단도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고려대 교수)이 지난해 3월 대통령 방미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경질되는 등 힘을 잃었다. 충암고 인맥은 예외에 가깝다. 옛 이명박계 인사들도 다수가 대통령실이나 행정부에서 나왔다. 그나마 남아서 실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윤 대통령과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이웃 주민이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정도다.

    대통령이 힘을 잃고 여러 공격에 시달릴수록 대통령실에서 누군가를 내보내기 어려워진다. 여러 스캔들과 특검, 탄핵에 시달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 백악관 참모들의 경질을 극히 꺼렸다. 언론에 기밀 사항을 반복적으로 누설해 온 데이비드 드라이어 부보좌관을 다른 정부 기관으로 전직시키는 데 몇 달이 걸렸을 정도다. 야당과 언론의 감시와 공격에 시달리다 보니 백악관 참모들에게 지지를 얻는 게 중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리를 잃은 누군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기밀 사안을 외부에 흘려 타격을 입힐지 우려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용산 3간신’, ‘칠상시’ 등으로 불리는 이들을 정리하고, 김건희의 영향력을 없애는 것도 불가능했다. 사실 인적 쇄신 요구는 대체 불가능한 측근 집단을 내몰라는 것인지라, 윤 대통령에게 실질적인 위협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국회 없는 통치도 한계점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언에서 민주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 때문이라고 정치적인 책임을 야당에 지우려 했다. 사실 2년 넘게 국회 없이 시행령과 정부의 행정 조치를 이용한 통치도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2025년에는 국회 동의 없는 통치의 문제가 일거에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재정 적자가 대표적이다. 2023년 64조8000억 원의 재정 적자가 났고, 2024년도 그 못지않은 적자가 예상된다. 불황으로 인해 세수가 줄어드는 경우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예산)을 편성해 국채를 발행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윤 대통령은 민주당과 타협을 거부하고 재정 지출을 줄이고 각종 기금을 헐어 2년을 버텼다. 11월 윤 대통령이 갑작스레 추경 이야기를 꺼낸 건 더 이상 빼다 쓸 기금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이른바 4대 개혁도 국회를 통한 법률 개정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대 정원 대폭 확대의 퇴로를 확보하는 데 신규 예산 편성이나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국회와 극한 대치를 종식시키려면 윤 대통령은 무언가를 양보해야만 한다. 나아가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줄기차게 거부권 행사로 맞받아쳤던 방식을 전면적으로 고수하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극히 낮은 지지율과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행보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윤 대통령의 역량 덕분이 아니다. ‘비토크라시(상대 정당을 모두 거부하는 정치 행태)’를 만든 외부 환경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적대적 공생 관계, 중앙 정부 지원이 필요한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순응, 국회 내에서 합의를 거부하고 시행령 등으로 버틸 수 있었던 정치적 환경 등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위의 환경이 바뀌는 건 필연적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립되고, 빠르게 보수 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됐을 터다.

    12월 초 윤 대통령에게 위기는 임박했고, 정상적 탈출구는 없었다.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없애고, 퇴로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제6공화국의 기본 전제를 무너뜨리는 선택을 내린 건, 후퇴보다 파멸이 낫다는 그의 결기를 보여준다. 교착상태와 타협이 기본값인 민주주의에서 이를 무시하는 인물이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떻게 스스로 무너지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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