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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시험 불안증에는 이렇게” 김은주 강남세브란스 정신의학과 교수

전혜빈 기자

2024. 12. 24

수능이 끝났다. 생애 가장 큰 시험을 치른 고3과 수험생을 ‘모셔온’ 학부모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수능 후 마음 돌보는 법’에 대해 물었다.

대치동 ‘금쪽이’ 전문,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치동 ‘금쪽이’ 전문,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지난 11월 14일(현지 시각) 영국 BBC는 한국의 수능 모습을 조명하며 “8시간 치러지는 한국 수능은 세계에서 가장 힘든 시험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토록 압박감이 강한 시험을 치러내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은 옛말, 수능 끝에는 집 안이 살얼음판이 되고 만다. 원하는 성적을 거둔 학생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수능 후야말로 부모와 자식 간 갈등이 폭발하는 시기다. 대치동에서도 이런 갈등은 격화된다. 아이 못지않게 수능 스트레스를 받으며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해온 대치동 학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는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 원망의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김은주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과 가까운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한다. 근무지가 대치동에 근접해 있다 보니 김 교수는 자연스럽게 학업 스트레스로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 ‘청소년 금쪽이’들의 사연을 가장 많이 접하고 해결해주는 의사가 됐다. 김 교수는 “힘겹게 입시를 치른 자녀에게 현실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T’의 태도보단 속상함을 공유하는 ‘F’의 자세로 대하라”며 “그 나이 때는 감정적 충격을 흡수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겪는 ‘고3병’

수능이 끝난 후 가정 내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한다.

수능이 끝난 후 가정 내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한다.

수능 끝난 후 청소년의 심리 상태는 어떤가요.
수능은 초중고 12년을 결산하는 시험이잖아요. 이런 심리적 부담이 큰 시험이 끝나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약간의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곧 다시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죠. 입시제도가 간단했던 부모님 세대와 달리 요즘 수험생들은 복잡한 입시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가채점 후 본인의 등급을 예측하고, 성적에 맞춰 면접이나 논술고사 일정을 줄줄이 소화해야 합니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받았다면 좌절감, 자책감이 들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불안을 느끼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나요.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험 결과를 친구와 비교하면서 열등감, 미묘한 거리감, 경쟁의식을 느껴 친구 관계가 위축되기도 하고요. 진로 결정에 대한 부담감으로 현실을 회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부모님이 결과에 대해 실망하거나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 대화를 단절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가정 내 긴장감은 증가하고요.

학부모도 ‘고3병’에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수를 하면 1년 더 아이를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경제적 압박 등이 있기 때문이죠. 수능 결과에 대해 학생 당사자보다 부모님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어요. 불안해지면 옆에 있는 사람을 닦달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수험생이에요. 학부모님이 “너 공부 안 할 때 알아봤다”라고 아이를 비난하거나, “이 성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하면서 다그치거나, “그래 이번에 실패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니?” 물으며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아이도 충격을 흡수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너무 조급하게 아이를 다그치다가 부모와 자녀 관계가 깨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아이 앞에서는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셨으면 좋겠어요.

부모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당연히 어렵죠. 그래도 아이들을 좀 기다려주세요. 아이에게 압박감을 자꾸 주면 반발심 때문에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긴장 상태가 되면 객관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상황을 그르치게 되니까요. 게다가 10대는 성인보다 충동적인 성향이 있어요. 아이를 스트레스 상황으로 몰아넣으면 반발심 때문에 오히려 본인한테 이득이 되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있어요.

어떤 사례가 있나요.
자기 역시 원하지 않는 결정이지만 무조건 부모가 싫어하는 결정을 내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런 문제로 부모와 싸우고 온 아이들에게 “네가 엄마랑 싸우느라고 너한테 도움이 되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해줘요. “엄마와 잠깐 떨어져서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하죠. 그리고 사실 부모님도 자기 자식 일인지라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앞으로의 자기 인생을 내다보며 긴장하고 고민하는 시기라는 점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능이 끝난 후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해줘야 할 것이 있다면요.
자녀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공감해야 합니다. 어떤 점이 특히나 속상한지 등 심리 상태를 표현하게 하고 들어주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자기 속을 털어놓느냐 아니냐는 그동안 쌓여온 부모와 자녀 간 애착 관계에 달려 있어요. 부모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속얘기를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나요.
부모는 아이의 ‘안전 기지’가 돼줘야 합니다.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면서 두려움과 좌절감을 느낄 때 안전 기지처럼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 돼줘야 해요. 부모는 아이가 두렵고 괴로울 때 불안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다음 단계의 도전과 탐색을 할 수 있거든요. 이런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 아이는 부모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애착 안정성이 생깁니다.

유아기 때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면요.
중고생이 되면 애착 관계 형성이 어려워집니다. 이 시기에 갑자기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갈등이 생겨서 오히려 사이가 악화합니다. 청소년기 아이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아이의 속도에 맞게 아주 천천히 다가가야 해요. 공부할 때 말없이 간식을 주는 식으로요. 아니면 답장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따뜻한 문자를 보내주는 거죠. 꾸준한 행동이 쌓여야 아이가 진정성을 깨닫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김 교수는 한국의 입시를 겪은 당사자이자 작년까지 아들의 수험 생활을 지켜본 어머니로서 솔직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나 역시 불안했다”며 “오히려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근시안적인 시각을 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시험을 전후로 경험하는 부모와 아이의 불안증을 타파할 방법을 김 교수에게 물었다.

수능이 끝난 후 수능성적표를 배부받는 학생들

수능이 끝난 후 수능성적표를 배부받는 학생들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치르는 상대평가에서 아이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경험하나요.
아이들은 각자의 기질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경쟁심을 느끼는 것 자체를 괴로워하기도 하고요. 과도하게 성취 욕구가 높은 아이들은 시기와 질투가 생겨 또래 집단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한 문제로 등급이 갈리다 보니 실수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되기도 하고요.

시험에서 불안과 긴장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학생들이 위안을 느끼는 시점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할 때예요. 저는 내원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런 시험 제도하에서는 누구나 불안을 느낀다”고 얘기해요. 심지어 저도 고3 때는 불면증이 생겼으니까요. 그다음에는 “적당한 불안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줘요. 극심한 불안이 있으면 전문가가 치료해야 하지만, 불안이 너무 적어도 공부를 하지 않거든요. 적당한 불안이 시험 퍼포먼스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줘서 불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유도합니다.

긴장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나요.
몸과 정신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몸을 이완하는 훈련을 하면 정신적 긴장도 풀 수 있어요. 그래서 고3 학생들에게 명상, 복식호흡 훈련을 하루에 5분씩 아침저녁으로 하라고 해요. 명상 앱을 이용하거나 적당한 유산소운동을 해서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학부모는 시험 후에 어떤 칭찬과 격려를 건네면 좋을까요.
시험 성적이라는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도 크거든요. 저의 경우, 고3 때 수학 시험만 앞두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감이 드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께서 “네가 공부한 만큼 실력이 안 나올 수도 있어. 근데 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가 없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요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시험 일정을 챙기고 공부 계획을 세우면서 시간 관리 능력, 메타인지, 실행 기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 부담감이 심한 시험을 무사히 치러내는 과정을 통해 담력, 성실성과 인내심을 배웁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서 큰 자산이 될 것임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중심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네요.
시험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할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시험은 자녀의 ‘성장’을 위한 통과 의례일 뿐입니다. 현실적인 부분과 진학, 취업 가능성을 지나치게 연결 지으면 부모님의 불안과 부담이 커지고, 아이에게 압박을 가하게 됩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내려면 마음이 편해야 해요. 자꾸 스트레스를 주면 불안감이 올라가 공부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시험 불안도 높아져요. 불안이 집중력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정시모집 대학지원 참고표를 살펴보는 학부모.

정시모집 대학지원 참고표를 살펴보는 학부모.

부모는 본인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조절하면 좋을까요.
“부모님도 본인의 인생을 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요즘은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는 경우가 많고 사교육 분야도 확대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부모님이 아이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과잉 간섭을 하다 보면, 예민하고 약한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감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 좌절감을 느낄 수 있어요. 반대로 개성이 강한 아이들은 부모님이 자율성을 말살하는 것에 반발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의 기질에 따라서 부모와 자식 관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틀어집니다. 자신의 인생과 자식의 인생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자식은 본인의 트로피도 아니고 복사본도 아니잖아요.

교수님도 자녀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시나요.
저는 아들이 둘 있는데, 그 애들은 이런 얘기를 길게 듣지 않아요. 하하. 그래서 문자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곤 합니다. 특히 저희 둘째가 불안이 조금 많아 계산 실수를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저는 아이한테 “몇 개의 실수가 너의 진로에 대세가 될 수는 없어”라고 얘기해줬어요. 그리고 “네가 한 실수와 찍어서 답을 맞힌 것이 상쇄돼 결국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긴장 좀 풀어줬죠. 아이가 실수에 너무 신경 쓰지 않게요. 긴장이 너무 심한 경우 청심환을 마시게 할 때도 있어요.

긴장 상태가 어느 정도일 때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나요.
질병으로 인정받으려면 지나친 긴장으로 인한 기능저하가 발생해야 합니다. 학교를 못 간다거나, 시험 상황에서 머릿속이 하얘져 성적이 반복적으로 떨어진다거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죠. 친구들 공부하는 모습에 불안감을 느껴 친구들 있는 데서는 공부를 못 하는 일도 있고요. 부모님과 지나치게 갈등을 빚는 때도 있어요. 이 정도라면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상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면 어떤 치료를 받나요.
약물치료나 상담을 합니다. 심한 경우 이를 병행하고요. 문제는 약을 먹으면 우울감이 줄어서 상담에 소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치동 아이들은 상담받을 시간에 학원을 하나 더 다니려고 해요. 그때 저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1시간도 여유시간을 못 낼 만큼 공부하진 않을 것 아니냐”라고 설득해요. 무엇보다 약은 고기를 잡아다 주는 거고, 상담은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거든요. 상담을 통해서 멘털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니까요.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두 아이가 세 살 터울이니까 15년의 입시를 겪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청 불안했어요. ‘내가 직장에 다녀서 우리 아이가 충분히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죠. 제 직업의 장점이, 한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다 지켜볼 수 있다는 거예요. 정신과 환자들은 의사를 잘 바꾸지 않거든요. 제가 경험한 것 중에, 엄마가 다그쳐서 성적이 잘 나오다가 엄마와 사이가 틀어져 자퇴하는 친구를 봤어요. 엄마가 욕심내지 않고 차곡차곡 아이의 역량을 키워준 덕에 좋은 대학에 간 친구도 봤고요. 저의 수많은 관찰 결과로, 근시안적인 시각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다는 점을 깨달았죠. 어렸을 때는 아이의 성적만 보고 너무 다그치기보다는 ‘자아 정체성’을 찾게끔 도와주세요.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볼 기회와 자기 한계에 부딪힐 기회도 주시고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서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수능번아웃 #고3 #시험불안증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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