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NEY

롯데 신유열 ‧ HD현대 정기선 ‧ 오리온 담서원… 고속 승진 페달 밟은 재계 후계자들

김명희 기자

2024. 12. 24

재계 신년 인사를 살펴보면 30대 오너가 후계자들의 초고속 승진이 두드러진다. 올 한 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 전망 속에서 이들이 과연 구원 투수가 될 수 있을까. 

2024년 1월 열린 CES2024 전시관을 찾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과 신유열 롯데 부사장.

2024년 1월 열린 CES2024 전시관을 찾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과 신유열 롯데 부사장.

그룹 위기 속 해결사로 조기 등판! 신유열 롯데 부사장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무차입 경영 원칙 덕분에 IMF 금융위기에도 끄떡없던 롯데그룹이 흔들리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과 재무 상태 악화로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이는가 하면,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은행 보증 보강을 위해 그룹의 심장과도 같은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재계 순위도 5위에서 6위로 한 계단 추락했다. 롯데그룹은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지난 11월 말 경영 혁신을 내세우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60대 이상 임원 50% 이상을 물갈이하고, CEO 36%(21명) 교체, 임원 규모를 13% 줄인 고강도 인적 쇄신이었다. 이런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39) 씨가 전무 승진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신유열 부사장은 신동빈 회장과 일본인 아내 시게미쓰 마나미 씨의 1남 2녀 중 장남이다. 1986년 신동빈 회장이 영국 노무라증권 지사에 근무하던 당시 런던에서 태어났다. 일본 명문 사립인 아오야마가쿠인초중고등학교를 거쳐 게이오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MBA를 수료하고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는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에 근무하며 금융 관련 실전 감각을 키웠다. 이런 그의 커리어는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MBA를 받고 노무라증권 런던 지점에 근무한 부친 신동빈 회장의 행보를 판에 박은 것 같다.

신 부사장은 롯데 입사 2년 만인 2022년 5월 롯데케미칼 상무보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2022년 12월 인사에선 상무로 승진했다. 이후 2023년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에 발탁돼 그룹의 미래성장동력인 바이오와 헬스케어 부문을 진두지휘하다 이번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외에도 지난해 6월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로 선임되었으며 일본 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 일본 롯데부동산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있다. 입사 4년 만에 부사장에 오르는 건 재벌 후계자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초고속 승진인 까닭에 이번 롯데 인사를 보는 업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신 부사장이 그간 남다른 경영 성과를 보여준 것도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그가 몸담았던 202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앙지가 됐고, 2022년 설립된 롯데헬스케어도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끝에 청산 수순을 밟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신사업 하나를 접는 모습을 보니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앞으로 성공할지 모르겠다”는 구성원의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신 부사장의 정체성과 소통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신 부사장은 일본 국적인 데다 조모와 아내가 일본인, 모친은 재일교포 3세다. 신동빈 회장의 경우 형인 신동주 광윤사 대표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2015년 기자회견 당시 우리말이 서툴러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신유열 부사장의 한국어 실력은 부친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유열 부사장의 이례적인 고속 승진 배경에는 여전히 불씨가 남은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롯데 지배구조는 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로 이어지고, 광윤사의 최대주주는 신 부사장의 큰아버지인 신동주 광윤사 대표(지분 50.29%)다. 신동주 대표의 외아들 신정열 씨가 지난해 10월 광윤사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만큼 사촌지간인 신정열 씨와 신유열 부사장이 차후 그룹 경영권을 두고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없진 않다. 실제로 신동주 회장은 경영 능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24년 6월 신유열 부사장의 롯데홀딩스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한 바 있다. 신유열 부사장이 승진 직후인 지난 12월 3일 롯데지주 주식 4620주(약 9800만 원)를 매수한 것도 책임 경영과 아울러 차후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한 초석으로 풀이된다.

1980년대생이 온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정기선(43) HD현대 부회장은 2024년 11월 연말 인사에서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내에서 입지를 굳혔다. 부회장 승진 1년 만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2남 2녀 중 장남인 정 수석부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지난 2009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 업체에서 2년간 근무했다. 이후 2013년 현대중공업에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재입사해 2021년 10월 사장에 올랐고, 2년 만인 2023년 11월 부회장에 선임됐다. HD현대는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HD현대삼호, HD현대미포, HD현대오일뱅크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 그룹이다. HD현대는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그룹 전체를 대표해 경영 방침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HD현대 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그룹의 주요 핵심 과제들을 직접 챙기고, 미래성장동력 발굴과 친환경 및 디지털 기술 혁신, 새로운 기업문화 확산 등을 주도해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자신이 주도한 계열사 HD현대마린솔루션이 연 2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경영 능력을 입증받았다. 지인 사이에선 ‘미담 제조기’라 불릴 만큼 인성도 반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 결혼했는데, 당시 신부가 시어머니인 김영명 재단법인 예올 이사장이 30년 전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을 치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인사로 김동관 한화 부회장(1983년생),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1984년생) 등 재계 1980년대생 부회장 가운데 경영 승계 고지에 가장 가까이 서게 됐다.

신라면·초코파이 이을 미래 먹거리를 찾아라! 식품가의 후예들

2023년 ‘삼양라면 60주년 기념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전병우 상무(가운데 줄 왼쪽 두 번째). 
전 상무 오른쪽은 모친인 김정수 부회장이다.

2023년 ‘삼양라면 60주년 기념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전병우 상무(가운데 줄 왼쪽 두 번째). 전 상무 오른쪽은 모친인 김정수 부회장이다.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100대 상장 그룹 오너 경영인들의 승진을 분석한 결과, 재벌 3세들은 평균 29.6세에 입사해 임원을 달기까지 3.8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초고속 승진이라 할 수 있지만 식품기업 후계자들은 이보다 더 빠른 경향을 보인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아들 담서원 상무가 대표적이다. 1989년생인 담 상무는 미국 뉴욕대학 졸업 후 베이징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근무하다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지원팀에 수석부장으로 입사, 1년 5개월 만인 2022년 말 상무로 승진했다.

신상열 농심 전무(왼쪽)와 담서원 오리온 상무.

신상열 농심 전무(왼쪽)와 담서원 오리온 상무.

농심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 미래사업실장도 2024년 11월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하고 농심에 입사한 신 전무는 2024년부터 그룹 내 신규 사업 진출 여부를 검토하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미래사업실의 초대 실장에 올라 부서를 총괄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매출 1조 원 그룹 대열에 합류한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의 전병우 상무도 고속 승진 사례에서 빠지지 않는다. 전인장 전 회장과 김정수 부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4년생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2019년 입사, 2020년 이사에 이어 2023년 상무 직함을 달았다. 식품기업은 다른 사업군에 비해 트렌드에 민감한 데다 K-푸드 열풍에 힘입어 이제 국내만이 아닌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감각을 갖춘 후계자가 실력을 입증하기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들이 과연 초코파이와 신라면, 불닭볶음면을 잇는 신박한 먹거리를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재벌후계자 #롯데 #농심 #오리온 #여성동아

‌사진 뉴스1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
  翻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