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지자들이 국회를 모두 포위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12.3 불법 계엄 사태 당시 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놓고 같은 당 나경원 의원이 한 주장이다. 단정적인 표현을 선호하지 않지만 이건 반박의 여지가 없는 헛소리다. (관련 기사:
나경원, '민주당 지지자 탓'...계엄 당일 단체방 보니 https://omn.kr/2bjhq)
물론 당시 국회 주변에는 여러 시민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 중 일부가 민주당 지지자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윤석열의 불법 계엄 선포를 듣고 국회를 지키기 위해 모였지, 포위하려고 모인 게 아니었다. 오히려 국회를 봉쇄하고 의원들의 경내 진입을 막은 건 경찰들이었다. 더불어 군인들은 불법적인 의회 진입을 시도해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이를 막고자 본회의장 진입로를 봉쇄하는 데 일조했다.
12.3 불법 계엄 사태는 전국을 거쳐 생중계되었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마음을 졸여가며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윤석열의 계엄선포부터 경찰이 국회를 막고 군이 침투를 시도하는 과정과 시민들이 이에 대항하고 결국 의원들이 계엄 해제 표결에 성공하는 순간까지.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도 물론이지만 언론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초유의 상황이었다. 모든 순간이 기록되고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그러니 나경원 의원이 한 주장의 의도가 진심으로 궁금할 지경이다. 그런 식으로 진실이 가려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발언의 의도와는 별개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나경원 의원의 말하기는 전형적인 가짜뉴스의 생산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문제, 가짜뉴스
많은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 가짜뉴스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 가짜뉴스의 병폐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짜뉴스 문제를 비교적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건 개인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가짜뉴스를 주장하는 극우 인사들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짜뉴스 또한 비슷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가령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0톤의 금괴를 소유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생각해보라.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살펴보긴 어렵다.
하지만 범죄자에도 잡범과 강력 범죄자가 있는 것처럼 가짜뉴스 또한 유머로 치부할 수준의 황당무계한 이야기와 실질적인 폐해를 만드는 악성 뉴스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케케묵은 금괴 루머를 가지고 온 것도 이 가짜뉴스가 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떠도는 많은 수의 가짜뉴스는 국가 폭력, 사회적 참사,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악질이기도 하거니와 그렇기 때문에 가볍게 언급할 수도 없다. 그런데 가짜뉴스가 유독 이런 소재를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짜뉴스 문제에 대응하기 까다로운 이유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까다로운 이유 중 하나는 가짜뉴스를 온전히 거짓으로 등치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짜뉴스가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진 않다. 애초에 허위가 섞여 있지 않다면 '가짜뉴스'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다만 가짜뉴스 속에 거짓만 있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이 허위로 교묘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가짜뉴스는 "윤석열이 불법 계엄을 선포한 적이 없으며 군이 국회에 침입하려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걸 부정하지 않지만 '사실 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은 건 민주당 지지자들이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부분을 교묘히 왜곡한다. 나경원 의원이 한 방식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허위에 기반한 왜곡은 어떤 부분에서 가능해질까. 상투적인 말이지만 사실의 힘이 약해지는 부분에서 그러해진다.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의 사건이나 특정 사건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에서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동시대에 벌어진 사건들의 거시적인 부분들은 일상 속에서 뉴스만 훑어봐도 금세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일들의 아주 세세한 면 혹은 아예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의 경우 주의를 충분히 기울여서 살피지 않으면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가짜뉴스는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린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다. 극우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박근혜·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어떤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있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이 영상들이 주 시청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선입견과 편견, 이 사회의 적폐
사실의 힘이 약해지는 경우는 또 있다.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호남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멸시의 정서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무맹랑한 가짜뉴스들이 힘을 가지는 데 일조했다. '귀족 노조'와 같이 노동운동에 편견이 깃든 멸칭은 역시나 노동조합에 대한 가짜뉴스가 사람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동성애자가 문란하고 불결한 존재라는 선입견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정보 습득을 방해하고 허위 정보 유포에 바람을 넣었다. 이와 비슷하게 성별은 생물학적인 것이며 오직 두 가지로만 분류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막고 '남성이 여성인 척하며 권리를 침해한다'는 식의 혐오적인 가짜뉴스가 대중에 스며들도록 만들었다. 사실 '민주당 지지자가 국회를 봉쇄했다'는 식의 허위 뉴스 역시 민주 진영을 중심으로 주로 이루어졌던 집회·시위를 '불법점거'라고 매도해 온 역사가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발상이었을 것이다.
12.3 불법 계엄 사태가 사회의 어느 분야까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다만 내란 사태의 책임 정당인 국민의힘이 정권 청산을 통해 의무를 다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피의자 윤석열을 비호하며 당장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이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지난 박근혜 탄핵 국면만큼 지지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이는 보수 유튜브 매체가 구심점이 되어 지지자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말이 좋아 보수 유튜브 매체지 우리는 이들이 '부정선거' 이야기나 떠드는 극우 사이버 레커나 다름 없음을 잘 안다. 피의자 윤석열이 심취해 있다고 알려진 그런 류의 매체들 말이다.
생각해보자. 내란 정도는 우습게 비호하는 정당이 이들이 만드는 가짜뉴스가 기득권을 지켜준다면 그것에 손을 내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그리하여 내란사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권력을 움켜쥘 수만 있으면 아무런 허위 정보를 뉴스랍시고 유포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나는 이것이 아주 현실적인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악순환의 고리는 단순히 몇몇 가짜뉴스의 사실 관계 점검을 하는 것을 넘어서 이런 뉴스가 생산되는 과정과 조건을 청산해야만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집단을 향한 편견과 선입견에 사회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적어도 몇 년 뒤, 12월 3일 밤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국회를 봉쇄했다는 뉴스를 사실로 믿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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