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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지형에서 거야 ‘협치 대상’ 아닌 ‘피의자’로 지목
‘적’ 앞에서 ‘아군’ 상대 리더십도 실종…“소통 능력 부재”
‘檢 투톱’ 몰락에…“국민들 ‘검사 정치인’ 보이콧 할 것”

‘별의 순간’을 잡았던 검사와 그의 ‘날선 칼’로 불렸던 다른 검사가 동시에 위기에 빠진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가운데, 그의 탄핵을 찬성했다는 이유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당권을 잃었다.

보수 용병으로 투입됐던 두 사람의 몰락을 두고 정치권에선 ‘검사 정치의 실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입법 권력을 쥔 거야(巨野)를 ‘타도해야 할 피의자’로 규정, 행정 권력의 고립을 심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상명하복 기반의 ‘검사동일체 원칙’이 체화된 검사들이 설득과 포용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범죄자’와 협상 없다? 尹, 임기 내내 ‘피아식별’ 치중

입법 권력을 쥔 거야의 협조 없이 윤 대통령이 내세운 ‘4대 개혁’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윤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적극적인 협치’로 숙제를 풀겠다 했다. 그는 2021년 9월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야당이 나를 욕해도, 저녁에는 식사를 대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저도 한 번씩 국회를 찾고, 야당 당사도 방문해서 진정성 있는 소통 행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임 후 윤 대통령이 자신한 ‘포용의 정치’는 실종됐다. 윤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빈번히, 가장 거칠게 야당과 충돌했다. 윤 대통령이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면서 ‘진정성 있는 소통’도 이뤄지지 못했다. 이재명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8차례에 걸쳐 영수회담을 제안했으나, 대통령실은 그 때마다 퇴짜를 놨다. 윤 대통령 취임 1년11개월 만에 영수회담이 성사됐으나,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영수회담이 됐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도 윤 대통령이 ‘검사의 시각’으로 야권을 바라보면서 정쟁이 격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도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며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의 한 전직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를 ‘방탄’하려는 야당의 ‘입법 독주’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 갈등을 풀어내는 게 리더십이고, 정치의 본질이다. 피의자를 몰아세우듯 야당을 대하는 건 대통령이 아닌 기소권을 쥔 검사가 해야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적과의 공존’을 거부한 윤 대통령의 ‘피아식별’은 보수 진영 내에서도 이어졌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국민의힘 초대 대표인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비롯해 2대 김기현, 3대 한동훈 대표마저 2년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났는데, 당 대표가 바뀔 때마다 정치권에선 ‘윤심’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을 비판한 당 대표가 연거푸 ‘직’을 잃는 우연이 반복되면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윤 대통령이 사실상 자멸의 길로 접어든 요인은 ‘자기 혼자와의 대화’ 때문일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독불장군 스타일이다. 과거 검사 시절 그는 충직한 후배들을 잘 챙기는 등 보스 기질이 강한 반면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껄끄러운 사람들은 단호히 배제하는 등 타인과의 대화는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월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일체’ 통하지 않는 정치…‘檢 리더십’ 한계로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같은 ‘윤석열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전당대회 당시 ‘당정 관계 수평 재정립’을 내걸기도 했다. 60% 넘는 ‘당심’이 이런 한 전 대표를 지지했다. 한 전 대표는 전당대회 승리 직후 “국민들께서 우리들에 대해서 더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덜 경청하고, 덜 설명하고, 덜 설득했기 때문”이라며 “당내 이견이 있을 때, 항상 당원들께, 동료들께 설명드리고 경청하고 설득하겠다. 저는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의 마음까지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 전 대표 역시 ‘검사의 시각’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한 전 대표는 취임 직후 ‘활발한 여야 소통’을 자신했으나, 여야 대표 회담은 지난 9월 단 한 차례에 그쳤다. 대신 한 전 대표 역시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표를 ‘피의자’로 규정, ‘사법리스크’를 잇따라 저격했다. 한 전 대표는 이 대표를 겨냥해 “형사피고인이 대통령 되면 재판 중단될까”, “자기도 무죄 못 받을 것 잘 알 것”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때마다 민주당 지도부는 “한동훈은 윤석열의 아바타”, “바지사장”이라며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를 싸잡아 맞불을 놨다.

여야 관계가 삐걱대는 사이, 한 전 대표의 ‘당내 리더십’도 같이 흔들렸다. 전당대회 당시 내세운 ‘채상병 제3자 특검’은 친윤계의 거센 반발에 좌초됐다. ‘12·3 비상계엄’ 정국에서는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방법을 두고 친윤계와 충돌하기도 했다. ‘1차 탄핵안’이 불성립한 후 윤 대통령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주장했으나, 그를 따르는 당내 ‘이탈표’는 12표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장동혁 최고위원 등 친한계도 등을 돌리며 한 전 대표는 결국 당권을 잃었다. ‘설명하고 설득하겠다’던 그의 공약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정치권에선 ‘검사동일체’(전국의 검사들이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유기적 조직체로 활동한다는 원리)라는 서초동의 오랜 문법이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의 발목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소통과 설득이 필요 없는 검찰에서 장점이 됐던 이들의 ‘빠른 결단력’, ‘범죄자 척결 의지’ 등이 ‘상대와의 협상’이 필요한 정치에서는 ‘독’이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사 출신 정치 1, 2번 타자들이 정치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는 걸 보여줬다”며 “정치는 단순히 반짝 스타성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정치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야당과 대화, 소통,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결국 비상계엄이나 내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동시에 몰락 위기에 빠지면서, ‘검사 정치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크게 악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검찰 출신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가 뚜렷한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며 “이 상황에서 다시 검찰 출신 용병이 대선에 출마할 수 있을까. 국민들 반감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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