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 주치의가 우울증 환자 보면 안되나요?”
[Voice of Academy-인터뷰] 강재헌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
대한가정의학회 강재헌 이사장(강북삼성병원)은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개인과 가족의 주치의로서 지속적으로 포괄적으로 건강을 챙기면 개인의 건강은 물론, 다른 전문의들의 진료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고령화 시대와 디지털헬스 시대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더욱 더 중요해질 텐데, 얼키고 설킨 의료시스템 탓에 국민 주치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반의와 가정의학 전문의의 역할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서구에는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를 받지 않은 일반의가 주치의를 맡고 있지 않나?
“서구의 GP(General Practitioner)가 ‘일반의’로 번역되면서 우리나라의 일반의와 혼동되고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의 GP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인턴 1~2년 뒤 3년의 전문의 수련을 받은 의사다. 미국의 가정의(Family Physician)와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의 과정을 밟지 않은 의사를 일반의라고 하는데 전혀 다른 개념이다. 서구의 GP나 가정의는 개인과 가족의 주치의로서 환자의 병 예방, 진단, 질병치료, 재활 등을 모두 담당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거쳐야 다른 전문의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가족 주치의이자 일차의료 책임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수련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나?
“가정의학과 전공의는 2년 이상 내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외과,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안과, 비뇨의학과 등을 돌며 각 과의 기본적인 것을 배운다. 10개월간 가정의학에 대해 배우는 데 이때 환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 법, 환자의 증상 호소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법, 환자와 대화하는 법 등을 구체적으로 배운다.”
-가족 주치의 외엔 어떤 역할을 하나? 우리나라에선 주치의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는데….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일차의료를 책임진다. 여기에는 노인의학, 호스피스 주치의, 요양병원 주치의, 건강검진센터 주치의 등이 포함된다. 금연클리닉, 비만클리닉 등도 일차의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가정의학과 전문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왜 의정갈등 이전에도 가정의학과 전공의 지원이 줄어들고, 심지어 다른 과로 이탈하는 조짐이 있었나?
“안타깝게도 가정의학과 의사는 다른 전문의에 비해 수익이 많이 낮다. 제자들 가운데 ‘배운 대로 환자를 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이도 적지 않다. 심지어 ‘강남엔 가정의학과 의원이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많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딩에 입주해 있어 2018년 5월 장애인건강주치의제가 시작됐을 때 장애인 이용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전문성인 상담과 문진 등에 대해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상담문진료가 현실화하면 필요 없는 처방이 줄어들 것이고 다른 전문의들과 협업이 활성화돼 전체 의료비도 줄어들 것인데…”
-디지털헬스 시대에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역할이 더욱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가정의학 전문의들이 국내에서 원격의료를 비롯한 디지털헬스의 선봉에 섰다. 1988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가 연천보건의료원과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이는 춘천한림대병원(현 춘천성심병원)-화천보건의료원, 경북대병원-울진보건의료원의 원격의료로 이어졌다. 필요성은 검증됐지만 확산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선 디지털헬스가 일차의료(Primary Care)의 희망이라고 선언했고 세계적으로 디지털헬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선 코로나19 이후 허용됐던 원격의료 영역도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세계의 추세를 거스르긴 힘들 거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디지털헬스케어 시스템을 구축해달라는 요청이 잇달아 공적개발원조(ODA)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을 통해 지원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선 장점을 못살리고 있으니….”
"우리나라 성인, 백신 접종률 너무 낮아"
-국민 주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방금 전 언급한 WHO에서 21세기 가장 우려할 질병의 하나로 규정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도 다뤄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중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초기에 찾아내지 않고 관리도 안되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긴다. 주치의가 초기 단계의 정신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앞서 말한 대로 수련 때 환자와의 상담에 대해 집중적으로 트레이닝 받는다. 환자가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 우울증이 원인일 때가 많은데, 이런 환자들은 정신과에 가지 않고 병을 키운다. 정신과로 보내도 다시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정의학과에선 다른 병 환자도 증세가 심해지면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등으로 보내는데, 정신 영역에서도 경증 환자를 일차의료에서 보고 중증일 때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현재 일부 우울증 치료제는 가정의학과에서 처방이 가능하지만 영역이 확대되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그래서 우리 학회는 정신과 학회 프로그램도 강화하고 있다.”
-가정의학회 의사로서 환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건강에선 예방이 치료 못지않게 중요하다. 환자들에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예방접종인데, 우리나라에선 성인 백신 접종률이 너무 낮다. 외국에선 주치의제가 정착돼 백신 권유가 자연스럽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독감 백신뿐 아니라 폐렴, 대상포진 등의 백신도 제때 맞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의학회는 예방접종 이사를 신설해서 성인 접종의 필요성과 관련 정보를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