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외 신인도에 끼칠 부정적 영향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간 정상외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던 외교가는 또 한 번 휘청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정치 상황이 당분간 불안정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잦은 리더 교체에 따른 '코리아 패싱'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약 2주 만인 이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우리 정부는 지난 2주간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 대행은 체제 전환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직접 통화하며 "외교·안보 정책을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아울러 주한일본상공회의소,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등과 간담회를 열고 "국정에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위급 소통이 정상화 조짐을 보이자 외교 당국도 발맞춰 소통 채널을 재개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과 미국 워싱턴 D.C.에서 회담을 갖고,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지체됐던 양국 외교 일정을 다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4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30분간 통화하며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하에서도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될 경우 이 같은 절차를 또다시 밟아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다음 달 미국 신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요국들이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와의 소통 채널 확보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늦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북·미 정상회담 등의 사안에 대해 선제적인 해결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지만, 탄핵 정국이 지속하면서 우리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굵직한 외교 이벤트가 예정돼 있어 외교 공백에 대한 부담이 증대되는 상황이다. APEC의 경우 보통 5~6월께 대통령 명의로 각국 정상에게 초청장을 보내지만, 현재로선 누구 명의가 될지 확신할 수 없는 분위기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일부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APEC 정상회의를 유치한 주체는 우리나라이고 대통령 개인이거나 장관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이 바뀌거나 해도 우리나라가 의장국인 것은 변함이 없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아울러 "정치 상황의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되고, 영향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