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게는 한 홀에 30개 넘게 줍기도
일반 골프숍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
모은 돈으로 서울 왕복 차표 끊어
그때 알았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도 마찬가지다. 두드리면 들린다. 그 옛날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에도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니 마음이 열려서 뭔가 나오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고 그것을 얻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동시에 생존력도 생겼다.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돈을 요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당시 스스로 돈을 많이 벌었다. 손님들의 골프채와 골프화를 관리해주면서 용돈을 받았다. 요즘으로 하면 팁 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른들이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더 나아가 세차도 하고 필드 이곳저곳에 날아간 공도 찾아줬다. 손님들의 공을 새 골프공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필드에 굴러다니는 수 천 개 공 가운데 새 공이 많았다. 나는 공을 줍고 닦아주면서 손님들한테 몰래 새 공을 바꿔서 주기도 했다. 혈기왕성한 나이였기에 남들이 들어가지 않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공이란 공은 다 쓸어왔다. 하나의 홀을 돌면 많게는 골프공 20~30개를 모을 수 있다. 18홀을 다 돌면 공만 100개를 주웠다. 가방엔 공으로 가득했다. 공 찾아서 필드에 나간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는 주운 공을 수건으로 하나하나 닦아서 골프연습장을 찾는 손님한테 판매하기도 했다. 일반 골프숍에서는 1만원에 팔았지만, 나는 5000원만 받았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입소문이 퍼졌다. 어차피 똑같은 공인데 경주한테 사면 반값에 살 수 있으니 이득이라는 것이었다. 종종 손님이 잔돈이 없어서 1만원을 내면 나는 “제가 지금 잔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5000원은 내일 거슬러 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반응은 두 가지다. 그냥 가는 부류와 끝끝내 잔돈을 받아가는 부류다. 전자 손님이 다음에 공을 또 구매할 경우 서비스로 15개를 더 줬다. 후자 손님인 경우엔 일부러 공 한 개씩을 뺐다.
당연히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아야, 니는 왜 편애를 허냐. 저놈은 15개 주고 나는 왜 9개냐.” “저분은 다음에 더 좋은 공 있으면 달라면서 1만원 주고 가셨고 사장님은 5000원 꼬박 받아가셨지라.” 손님은 깜짝 놀라면서 다음부터 잔돈을 안 받아갔다.
라운드가 기뻤던 또 다른 이유는 공을 많이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꽤 모았던 나는 돈 쓰는 데 맛 들여 친구들을 모아놓고 막 사줬다. 쉽게 돈을 벌었더니 아무렇게 쓰게 된 것이다. 결국 5만원을 손에 쥔 나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왕복 1박 2일 표를 구매했다. 드디어 17살 소년 최경주와 김재천 이사장의 첫 독대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