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잃은 여중생이 울며 말했다…"땅 좀 찾아주세요"[아·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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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25. 오전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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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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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호룡 전 경남도 지적과장(77)이 최초로 아이디어 낸 '조상 땅 찾기'
여중생 요청으로, 돌아가신 아빠 땅 찾아준 게 시작
이후 2001년부터 전국 확산, 최근 5년에만 368만 필지 찾아줘
37년 공직 생활…"내 작은 수고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 된다면, 그 수고는 즐거운 거란 신조"
[편집자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디어의 시작과 발명, 이른바 '아시발'입니다. 시발(始發)은 비속어가 아니라 '처음으로 일어남'이란 뜻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더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1993년 초, 여중생이 경남도청 사무실에 찾아왔다. 송호룡씨는 당시 경남도 지적과장이었다. 토지 정보와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학생은 울면서 이리 말했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어디에 땅을 사두셨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아빠를 잃은 딸. 갑자기 생계가 기울어진 벼랑 끝에서 기억해낸 얘기였다. 단지 땅이 있단 것만 알 뿐, 이를 어떻게 찾을지 몰라 무작정 찾아온 거였다.

학생 얘기에 마음이 찡해졌다. 찾아줄 수 있었으나 걸리는 게 있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이었다. 호룡씨가 말했다.
'조상 땅 찾기' 참고 사진(기사 내용과는 무관)./사진=뉴스1
"그 당시엔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정보를 알려주면 안 되게 돼 있었어요. 그렇지만 사정이 딱하더라고요. 나중에 문제 돼도 꼭 찾아줘야겠다 싶었습니다."

호룡씨는 지적전산망을 샅샅이 뒤졌다. 아빠 명의의 땅, 수백 평이 정말 있었다. 땅값이 오른 땅이라 가격도 좀 되었다.

아빠가 남긴 땅이 있다고, 학생에게 알려줬다. 학생은 고맙다고 호룡씨에게 절까지 했다. 뿌듯했단다. 가족을 위해 사뒀을 거였으나 알 길 없던 땅의 존재, 그게 밑거름이 돼 잘 자랐을 거라고. 호룡씨는 그리 상상했다.



200평 땅 있는 줄도 모르던 할아버지…'조상 땅 찾기' 시작되었다


1966년 공무원을 시작해 2003년 은퇴한 송호룡씨. 경남도 지적과장과 대한지적공사 부사장 등을 거쳤다./사진=송호룡씨 제공
울산시 울주군에 사는 60대 할아버지가 찾아온 적도 있었다. 그는 이리 말했다.

"글쎄, 제가 땅을 가진 게 없는데요. 부동산에서 자꾸 저보고 땅을 팔라고 하는 거예요. 대체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할아버지의 말. 이에 호룡씨는 할아버지 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할아버지 부친 명의로 200평짜리 땅이 있었다. 학생처럼 땅을 못 찾을뻔한 일이 또 생긴 거였다.

땅이 제 주인을 찾아가기 어려울 수 있겠단 생각. 이런 일이 찾아보면 더 많을 것 같단 생각. 이는 비슷한 문제를 더 해결하고 싶은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진=뉴스1
호룡씨는 당시 경남도 지사를 찾아가 보고했다. 1993년 봄이었다.

"상속 관계를 확인해서 문제가 없다면, 그 땅이 어딨는지 가르쳐주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지요. 그게 도민들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상 재산 찾아주기를 해보자고요. 도지사님께서 들으시더니 '아이고, 생각 잘했다. 좋은 일이다'라며 흔쾌히 사인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리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이 경남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이후 경남에서만, 지난해 12월까지 30년간 31만7912명에게 184만5346필지(구획된 논이나 밭 등을 세는 단위)를 찾아줬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이달 선정한 '제3회 정부혁신 최초·최고' 사례에 꼽히기도 했다.



심장마비로 세상 떠난 아버지 땅 찾아…학업 이어갈 수 있게 돼


사업 성과가 좋자, 1996년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서 나와 관련 사업을 조사했다. 처음엔 개인정보보호법이 있는데 이리 하는 게 맞느냐는 반응이었다가, 자세히 살펴보더니 잘했다고 했단다.

2001년 하반기엔 전국 시.도로 '조상 땅 찾기' 서비스가 확대됐다. 2012년 하반기엔 전국 시·군·구에서 시행됐고, 2022년 11월부터는 '온라인 서비스'로 클릭 몇 번만 하면 선대의 땅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찾은 조상 땅만 368판 필지에 달한다.

그 안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사진=뉴스1
서울에 사는 대학생 안모씨(23)는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포기할 위기에 처했다. 안씨는 서초구청을 찾아 '조상 땅 찾기'를 신청했다. 경기도 지역 등에 3억원 정도의 아버지 소유 땅이 있는 걸 확인했다. 그 덕분에 중단할까 싶었던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손모 할머니(62)남편이 돌연 숨져 노후 걱정이 태산이었다. 혹여나 싶어 땅 찾기를 해봤고, 선대가 남긴 20억원대 재산을 찾게 됐다. 손 할머니는 "남편이 갑자기 떠나서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몰랐던 재산을 찾아줘 너무 감사하다""주위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겠다"고 했다.



땅 놓고 싸움도…"씁쓸한 기억 많지만, 그래도 찾아주는 게 맞아"


큰 호응에 힘입어, 온라인에서도 '조상 땅 찾기'를 할 수 있도록 서비스가 마련됐다./사진=국토교통부 K-Geo플랫폼 홈페이지
그리 따뜻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란다. 몰랐던 재산이 생기면 으레 그럴 거라 예상했겠으나. 호룡씨가 말했다.

"감명 깊은 것도 있지만, 상속재산을 놓고 형제간 갈등도 참 심하더라고요. 장인 땅이 있다며 숟가락 얹어 보려는 사위도 많았고, 뇌졸중이 와서도 지팡이 짚고 와서 땅을 찾을 거라며 뭐라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찾아주면서도 씁쓸한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별수 없이 그늘이 생길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지요."

땅 박사인 호룡씨는 이를 이른바 '내 땅 병(病)'이라 일컬었다. 그게 뭐냐고 묻자 "이것도 내 땅, 저것도 내 땅, 길을 걷다가도 내 땅이라 하는 병"이란다.
/사진=뉴스1
한 번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 점심 무렵에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초췌하던 모습. 그는 어마어마한 서류뭉치를 꺼내놓고 끓는 속을 꺼내놓았다. 이미 20번 넘게 땅과 관련해 진정한 이력이 있었다. 호룡씨는 이리 말했다.

"어르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게 도리라면 부모는 오래 살아계셔서 효도하는 길을 막지 않는 게 도리입니다. 건강을 생각하셔야 하는데, 어르신께선 수년간 '내 땅 병'에 걸리셔서 고통을 당하고 계시니 안타까워요. 지금 지니고 다니시는 게 '귀신 보따리'이니 모두 불살라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할아버지는 그 말대로, 몇 년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말없이 일어나더니 이후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고.

여러 일들로 회의감이 들었을 법도 한데, 호룡씨는 그럼에도 땅을 잘 찾아주는 게 맞다고 했다.

"그래도 몰랐던 땅을 찾아주는 게 맞단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못 찾아서 애를 먹기도 하고, 있는지도 몰라서 타인이 20년 이상 점유하고 있다가 가져가 버리기도 하니까요."



내 작은 수고로 돕는다면 즐겁다는 '신념'


대한지적공사 부사장으로 일할 당시 송호룡씨 모습./사진=송호룡씨 제공
어찌 보면 수고로울 수 있는 일들. 호룡씨는 공직 생활에서, 이리 사서 고생한 적이 많았단다.

건축법 때문에 여럿이 주인인 토지를 나눌 수 없을 땐 민원이 쏟아졌다. 그 지역 힘 있는 이들로부터 협박까지 받았다고. 전에 있던 공무원들은 대충 넘어가던데 왜 처리하지 않느냐고 했다.

"'네 배엔 칼 안 들어가느냐'며 협박하는 거예요. 그런데 살펴보니 힘 있고 배경 좋은 사람들은 틈을 비집고 해 왔더라고요. 대부분 선량하고 평범한 시민들은 포기하고 있었고요. 안 되겠다 싶었지요."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원칙적으론 안 돼도, 국민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한다는 논리(행정법 하자의 치유)를 떠올렸다. 해결하는 데에 1년 반이 걸렸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에서 나온 감사관에게도 경위를 설명했다. 대단한 일을 했단 칭찬이 돌아왔다. 이후 관련법을 마련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40여년 간의 공직 생활에서, 이리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호룡씨는 대단한 게 아니라 했다. 그저 '용기'를 더 낸 것일 뿐이라고.

"조상 땅 찾기는, 토지대장 전산화 이후에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었거든요.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된다고 제약이 있었을 때, 해줘야겠단 생각을 했던 것뿐이지요. 어찌 보면 그게 '용기'겠지만요."

그런 용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끝으로 물었다. 호룡씨가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내가 힘들어도, 내 작은 수고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즐겁게 하라'는 신념이었지요. 요즘 젊은 공무원들이 딱 법대로만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국민이 원하고 옳은 일이라면 소신껏 밀어붙이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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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치우시는 여사님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소외된 곳을 떠들어 작은 거라도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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