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소음에도 "입주 축하"…아랫집 노부부가 꽃다발을 건넸다[인류애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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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07. 오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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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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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한 예쁜 집에 어울릴까 싶어 사보았어요'
쪽지와 꽃다발 두고 간 아랫집, 보기 드문 이웃 간의 정(情)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리모델링한 예쁜 집에 어울릴만한 꽃이 뭘까, 궁리하고 상상하며 골랐을 그 따뜻한 마음./사진=이나씨 제공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2년 전 겨울이었다. 이나씨(가명) 부부가 외출하려 현관문을 열었을 때였다.

문 앞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곱게 접힌 쪽지와 함께였다.

'이게 뭘까' 하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나씨는 꽃다발과 쪽지를 가지고 집에 다시 들어왔다.

쪽지를 펴보았더니 이리 적혀 있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지만 그 사이로 봄 내음이 사알짝. 리모델링한 예쁜 집에 어울릴까 싶어 '아네모네' 꽃을 사보았답니다. 입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랫집 노부부가 선물한 거였다. 이사 온 걸 축하한다며.

이나씨는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한 달 넘게 걸린 리모델링 공사…떡 돌리며 일일이 만났다


봄에 피는 꽃을 선물한 이나씨의 아랫집 노부부. 곱게 쓴 쪽지도 함께./사진=이나씨 제공
이 이야기를 우연히 온라인 카페에서 봤다. 이나씨가 올린 원글 제목은 이거였다. '아랫집에서 쪽지를 붙였어요.'

그걸 보자마자, 층간소음 항의 내용이겠구나 싶었다. 아랫집과 주고받는 쪽지는 보통 그런 게 되었으므로. 짐작하지 못한 전개에 뭉클해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리 따스한 이웃이라니.

글로 담고 싶어 남겼으나, 2년이 지난 뒤에야 확인했다며 이나씨에게 답장이 왔다. 다행히 내 기사 독자라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형도 : 이리 따뜻한 이웃이라니, 꼭 기록하고 싶었지요. 당시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이나 : 다른 집에 살다가 아파트에 이사 올 때였어요. 오래 잘 살고 싶어서 입주하기 전에 리모델링 공사를 했거든요. 한 달 넘게 걸렸어요. 코로나19 기간이라 다들 집에 많이 계실 때라, 정말 죄송했지요.

형도 : 저 그거 겪어봐서 아는데, 공사 소음 장난 아니지요(웃음). 그래서요.
이나 : 집집마다 직접 다니면서 뵙고 떡을 돌렸어요. 윗집과 아랫집엔 선물을 따로 더 드리고요. 이런 거 해주신 분이 처음이라고, 떡 잘 먹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사 오면 떡 돌리는 것도, 이젠 꽤 드문 일이 되었다./사진=이나씨 제공
돌렸다는 떡 사진을 봤다. 곱게 포장된 상자 겉면에 편지도 붙여 놓았다. 인테리어 공사로 불편 드려 죄송하다고, 긴 시간 동안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좋은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그 또한 평범치는 않다고 여겼다.

형도 : 저희 동네서도 공사한 적 있는데, 사인만 덜렁 받고 갔었는데요. 떡을 돌리시다니 정성스럽고 좋네요.
이나 : 엄마가 이런 걸 중시하셨거든요. 요샌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엘리베이터 타도 인사도 안 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하고 싶더라고요. 서로 조금만 다정하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이었어요.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단 말도 있잖아요.



공사 소음에도 환영한단 쪽지와 꽃다발…"감사하고 죄송했어요"


쪽지만큼은 여전히 냉장고에 붙여 두고 잘 간직하고 있단다. 소중한 걸 소중히 여기는 마음. 둘다 좋다./사진=이나씨 제공
이나씨와 그런 얘길 나누며 공감했다. 지금은 낯설지만 예전엔 다 그랬었다며. 비 오는 날 전 부치면 엄마가 말했었다고. "옆집에도, 옆옆집에도 드리고 오거라." 고소한 접시 들고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면 며칠 안 가서 또 맛있는 음식이 선물처럼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실로 희귀한 일이 됐기에. 물음을 이어갔다.

형도 : 아랫집이면 공사 소음이 더 크게 들렸을 텐데, 그런데도 꽃다발과 쪽지를 주시다니요.
이나 : 너무 감동 받았어요.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럽더라고요. 얼마나 시끄러우셨을까 내내 마음 쓰였는데, 그걸 보듬어주신 거잖아요. 진짜 유니콘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요.

형도 : 유니콘 같은 이웃이긴 합니다. 정말 그렇네요.
이나 :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고 하잖아요. 이런 좋은 분과 이웃이란 게 감사하더라고요.
화병에 담긴 아네모네 꽃./사진=이나씨 제공
형도 : 꽃다발은 댁에 잘 두신 거지요. 풍성하고 예쁘더라고요.
이나 :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5일 정도 기분 좋게 봤어요. 볼 때마다 '아, 예쁘다, 감사하다' 하면서요. 그 기간만큼은 기쁘게 잘 지냈던 것 같아요.

형도 : 꽃다발 받으신 다음에 대화를 좀 하셨을까요.
이나 : 제가 말주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꽃시장에 꽃 사러 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꽃다발을 만들어서 아랫집에 드렸어요. 그랬더니 '어머, 내가 꽃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하시면서 정말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때 파를 다듬고 계셨는데, 파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하시면서요(웃음).



수술한 뒤엔 "소고기라도 사줘야겠다"며…서로 좀 더 다정한 세상이기를


이웃과 꽃 선물을 주고 받는 다정한 마음./사진=이나씨 제공
이나씨와 이야길 나누며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걸 깨달았다. 무표정한 채 살아가는 게 익숙한 세상이지만, 그게 좋아서는 아닐 수도 있겠다고. 조금만 먼저 손을 내밀어도 이리 따뜻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형도 : 그 이후로도 2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신 거지요.
이나 :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게 대부분이긴 하지만, 늘 먼저 말 걸어주시거든요. 참 좋은 것 같아요.

형도 : 주로 어떤 얘기 나누곤 하세요.
이나 : 몇 주 전에 수술할 일이 있었어요. 그러느라 일을 쉬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사모님께서 무슨 일이냐면서 "소고기라도 사줘야겠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늘 그리 따뜻하게 말씀하세요.
이사온 걸 환영한다며 노란색 쪽지를 붙이고 간 또다른 이웃./사진=이나씨 제공
형도 : 말씀만이라도 참 다정하네요.
이나 : 남편이 탔을 때도, 아랫집 사장님께서 물으셨대요. 아기는 없냐고. 그래서 저희는 아직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우리는 애들 뛰는 건 전혀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생각해도 괜찮아요" 하셨다고요. 인품이 참 좋은 분들이지요.

형도 : 어떤가요. 이웃과 그리 지내는 기분은요.
이나 : 잠깐잠깐 인사 나누고, 서로 얘기하고 작은 대화라도 나누는 게 참 좋아요. 미국 여행 갔을 때 그랬거든요. 모르는 사람이랑 길 가다 마주치면 "하이" 하고 친절하게 인사해주고요. 서로에게 조금만 더 다정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사회 분위기도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2021년 여름, 고독사 한 노인의 집을 특수청소하는 모습. 왼쪽이 기자, 오른쪽이 특수청소부 김새별씨./사진=남형도 기자
그 말을 듣고 3년 전 여름에 했던 취재 생각이 났다. 특수청소 체험이었다. 홀로 살다 숨진 어르신의 집을 치우는 일. 고독사한 지 2주 만에 발견됐다. 기름과 피와 구더기가 진하게 섞여, 냄새가 집 밖으로 뛰쳐나온 뒤에야 그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단 걸 알았다. 들어가니 벽과 장판이 다 오염돼 다 뜯어내야 했다.

그 당시에, 특수청소부에게 고독사를 방지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물었을 때, 그가 이리 대답했었다.

"이사 오면 집집마다 떡이라도 돌려야 해요. 이웃 간에 그렇게라도 서로 알 수 있게요. 다른 방법은 없어요. 그게 유일한 대책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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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치우시는 여사님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소외된 곳을 떠들어 작은 거라도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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