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고른 건 늘 맛이 없지?”…성경에 200번 이상 언급된 이 술, 고르는 법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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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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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와인을 고르는 모습. 이번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와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001년 프랑스 보르도 대학에서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이뤄졌습니다.

심리학 박사이자 평소 직접 와인을 양조하는 교수 프레드릭 브로셰가 와인 전문가 54명에게 와인 두 잔을 주고 그 맛을 비교해보라고 한 것인데요. 당시 참가자들이 받아 든 잔에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각각 담겨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먼저 레드 와인에 대해 ‘강렬하다’, ‘녹진하다’, ‘으깬 과일(자두) 향이 난다’ 등의 후기를 남겼습니다. 레드 와인을 평가할 때 종종 사용되는 표현들입니다. 반면 화이트 와인에 대해서는 ‘가볍다’, ‘상큼하다’, ‘산뜻하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사실 두 와인은 모두 같은 병에서 나온 화이트 와인이었습니다. 잔 하나에만 식용 색소를 소량 첨가해 레드 와인처럼 보이게 한 것이었죠. 인간의 감각이 시각 중심이라는 점, 또 그 시각 때문에 선입견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실험이었습니다.

성경 속 언급만 200여번, 그 시작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에서 참관객들이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번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와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평소 와인을 즐기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첫 잔을 따라 맛보자마자 “아, 괜히 샀다” 하셨던 경험이 한 번쯤 있으실 텐데요. 오늘은 그런 여러분의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정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와인(Wine)은 기원전 5000~6000년경 중동 지방에서 처음 마시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우크라이나 남동쪽에 있는 지금의 조지아 지역에서 처음 포도주를 마셨을 것이란 추측도 사학자들은 하고 있는데요.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습니다.

사료(史料)를 살펴보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신에게 포도주를 봉헌했고, 기원전 3000년께 이집트에서 장례식 때 포도주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최후의 만찬’을 비롯한 성경 속 여러 구절에도 포도주가 200번 이상 등장합니다.

최초의 와인은 우연히 발견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포도나무 아래 웅덩이에 포도가 떨어져 자연 발효된 것을 사람이 맛봤을 수도 있고, 수확이 끝난 후 통에 방치됐던 포도가 발효·숙성돼 와인이 됐을 것이란 추측도 있습니다.

와인이 체계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건 로마 제국 시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는 한때 아르메니아에서 칼라브리아까지 이르렀던 거대한 영토에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종교 행사는 물론, 일상 속 식사나 사교 행사에서도 와인을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기후가 따뜻하고 땅이 비옥한 프랑스산 와인은 과거에도 으뜸으로 꼽혔는데요. 로마의 황제 도미티아누스(재위 81~96년)는 이를 맛본 뒤 “로마의 와인산업을 위협할 것”이라며 프랑스 내 포도나무를 베어내고 양조장에 불을 지르란 지시까지 내렸을 정도입니다.

‘구대륙’은 뭐고, ‘신대륙’은 어디야?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에서 참관객들이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렇게 시작된 와인의 원산지는 오늘날 ‘구대륙(Old World)’과 ‘신대륙(New World)’으로 구분됩니다. 구대륙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을 의미하고, 그보다 늦게 와인을 재배하기 시작한 미국과 호주, 칠레 등을 신대륙이라고 표현합니다.

브랜드나 제품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마니아들은 구대륙 와인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와인과 자동차를 모두 사랑하는 한 수입사 임원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한다는 의미겠죠.

차이점을 조금 쉽게 표현하자면 구대륙 와인은 클래식 정장이고, 신대륙 와인은 비즈니스 캐주얼룩입니다. 구대륙 와인이 대개 좀 더 절제된 스타일인데 향이 아무리 좋아도 튀지 않고, 얌전한 느낌을 줍니다. 이 때문에 입문자가 온전히 즐기기에는 쉽지 않은 편입니다.

‘빈티지(포도를 수확한 해)’를 중시하는 구대륙 와인과 달리 신대륙 와인은 ‘가성비’가 강점으로 꼽힙니다. 구대륙의 포도나무를 더 넓은 땅에서 효율적으로 키워내는 까닭인데요. 대개 일조량이 높은 지역에서 생산돼 알코올 도수가 조금 높고 묵직한 맛을 내는 편입니다.

원산지도 중요하겠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와인의 색 아닐까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포도를 압착한 뒤 그 껍질과 줄기를 제거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색이 달라집니다. 껍질을 활용하는 게 레드 와인입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 껍질은 으깨고, 줄기는 제거하는데 와인에 따라 가끔 줄기를 그대로 남겨두기도 합니다. 으깬 고형물과 포도즙, 씨 등을 발효조에 넣으면 효모(이스트)가 발효를 개시합니다. 껍질과 씨에서 풍미와 빛깔이 충분히 우러나면 여러 번 압착해 고형물을 걸러냅니다.

고형물을 걸러낸 원액은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 탱크에 담아 숙성합니다. 7~14일간 알코올 발효 과정을 거치면 여과하고, 다시 한번 추가 숙성을 진행합니다. 제품에 따라 적정한 시기라고 판단될 때 병에 담아내 제품화합니다.

화이트 와인은 이 모든 단계를 똑같이 진행하되, 초반에 포도를 압착하는 단계에서 껍질과 씨, 줄기를 모두 제거하는 게 차이점입니다. (이쯤에서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이 궁금하신 분도 계실 텐데 이건 추후 별도 코너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내 입맛에 맞는 와인, 품종을 보자!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에서 참관객들이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와인 마니아가 아닌, 입문자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제조법은 대체로 비슷한 편입니다. 그러나 어떤 포도를 사용하는지, 발효 단계에서 온도가 어떤지, 얼마나 오래 숙성하는지, 또 어떤 용기에 담아 숙성했는지에 따라 와인의 맛은 크게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같은 산지에서 난 똑같은 품종으로 와인을 빚더라도 늘 ‘그 맛’을 내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2013년에 만든 와인이 맛있더라도, 이듬해 작황이 별로라면 2014년산은 얼마든지 별로일 수 있습니다. 와인에 정답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 주류 수입사 관계자는 “유독 국내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정답을 찾으려고 하니 와인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며 “와인은 그 특유의 제조법 때문에 매년 공산품처럼 일관된 맛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답도 없는 술을 왜 먹느냐. 차라리 소주를 먹겠다, 하이볼을 마시겠다 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술도 음식이고, 그 취향은 제각각일 테니 제가 정답을 드릴 순 없습니다. 다만 포도를 따져서 와인을 택하시면 오답률을 좀 낮출 수 있습니다.

예컨대 늦게 수확해 푹 익은 포도는 강한 단맛을 내 디저트용으로 안성맞춤입니다. 또 곰팡이의 일종인 보트리티스에 감염돼 수분이 쪽 빠진 포도도 당도가 높아 진한 맛을 냅니다. 모스카토, 세미용 등을 추천해 드리는데 여름철에는 리슬링도 좋습니다.

과일 향은 짙었으면 좋겠는데 단맛은 또 금방 물려서 별로라면 피노 그리지오, 알바리뇨, 소비뇽 블랑 등이 적합합니다. 앞서 리슬링을 말씀드렸는데 리슬링 중에도 단맛이 적고 과일 향이 우아하면서 산뜻한 제품이 많습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이 가장 유명합니다. 과일 풍미가 강하면서도 좀처럼 가벼운 맛이 없어 소고기나 돼지고기, 미트볼에 모두 잘 어울립니다. 평소 카베르네 소비뇽이 무겁다고 느끼셨다면 석류나 라즈베리 향을 내는 피노 누아 종류도 좋습니다.

피노 누아는 돼지고기는 물론, 오리고기, 토마토 베이스 소스 등에 모두 잘 어울립니다. 또 쉬라즈(쉬라)라는 품종도 있는데요. 이 품종은 걸쭉한 스튜, 그릴에 구운 고기 등과 조합이 훌륭합니다. 입문자들이 즐기기에는 가장 무난한 품종일 것 같네요.

아, 와인을 두고 제가 ‘무겁다’고 표현했는데요. 같은 액체더라도 혀에 닿았을 때 질감은 다 다른 법이죠. 물과 우유를 마셨을 때 식감을 떠올려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유처럼 입안에 머무는 질감을 ‘무겁다’, ‘바디감이 높다’고 흔히 표현합니다.

맛 없으면 어때, 중요한 건 ‘자신감’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에서 참관객들이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백과사전처럼 여러 품종을 주욱 늘어놓았습니다만, 사실 가장 좋은 건 매장이나 식당 등에서 직원에게 추천받는 것입니다. 단맛을 원하는가, 어떤 식감을 원하는가, 어떤 음식과 먹을 것인가. 이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이름부터 어려운 포도 품종을 공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추천에 따라 와인을 드신 다음에는 라벨 사진을 한 장 찍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맛있었다면 그와 비슷한 와인을 또 찾을 때 도움이 될 것이고, 별로였다면 이제 그 품종은 마실 일이 없어야 하니까요. 아쉬웠던 점을 간단히 메모해보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값이 비싼 와인이라고 더 맛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소개했던 보르도 대학의 브로셰 교수는 또 같은 종류의 와인을 비싼 병, 저렴한 병에 담은 뒤 실험자들에게 건넨 적도 있는데요. 분명 같은 와인인 데도 비싼 병에 담긴 와인이 더 맛있다고들 평가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잔을 ‘스월링(Swirling)’ 해보고 싶은데 와인이 너무 어려워 좌절감을 느끼셨던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건 뭔가 부끄럽고, 배워보자니 유튜브 등에서 설명하는 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초보자들은 와인을 어떻게 접하면 좋을까. 호주 남서부에서 평생 와인을 빚어온 부부를 만나 인터뷰하며 이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너무 어려운 술이라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마셔라. 즐길 수 있으면 된 것”이라고 답하시더군요.

맞습니다. 모르는 음식도 누가 먹어보라고 추천하면 부담 없이 즐기는 데 술이라고 딱히 더 어려운 게 있을까요? 와인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어떤 도전도 할 수 없습니다. 한병씩 과감하게 자신의 취향을 발굴해 나가시길 응원합니다.

저는 다음 주에 주당들을 위한 와인, ‘주정강화와인’ 이야기를 준비해오겠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ㅇ술 잡학사전, 클레어 버더(Clare Burder), 문예출판사, 2018

ㅇ그랑 라루스 요리백과, 라루스 편집부, 시트롱마카롱, 2021

누가 따라주니 그저 마시기만 했던 술. 그 술을 보고 한 번쯤 ‘이건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했던 적 있으신가요? 매주 금요일, 우리네 일상 속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술 이야기를 전합니다. 술을 기록하는 사람, 기술자(記술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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