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2천명 증원의 근거로 내세운 KDI 보고서의 해석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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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9.09. 오전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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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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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별로
미래 부족한 의사 수
예측이 크게 달라져
의대 정원 꼭 늘리되
증원 규모는 유연한 대응
필요하다는 방증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자고 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KDI 보고서가 수록된 연구 보고서 책자 표지.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면서 내세운 근거가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시나리오별로 장래 의사가 얼마나 부족하게 될지 예측한 것이다. 이 보고서가 수록된 ‘2021년 장래인구 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연구의 책임을 맡았던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일할 사람이 없다’라는 책을 통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KDI 보고서를 해설했다. (의료 파트의 주저자는 권정현 KDI 연구위원이다.)

이 교수는 장래 의사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 추계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것부터 설명한다. “의료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강, 선호, 의료제도, 의료기술 등의 요인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현재로서 잘 알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의사의 일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장래 의사 공급 역시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매년 몇 명의 의사가 일을 그만둘 것인지, 의사들이 일하는 시간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의사들의 생산성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등 의사의 실질적인 총노동 투입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의 변화를 정확하게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별로 장래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예측이 들쭉날쭉하다. 이철희 교수는 책에서 2050년까지 많게는 3만명, 적게는 8500명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는 계산을 제시했다.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대 증원 규모 역시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이 가운데 ‘기본 시나리오’를 선택해 그에 맞는 의대 증원 규모를 제시한다.

기본 시나리오는 “최근의 연령별 의사 인력 분포 자료에서 얻은 의사의 노동시장 이탈 위험률이 유지되고 90세까지 노동시장에 남은 의사들은 이 나이에 모두 이탈한다는 가정을 도입해” 추계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2020년대 말부터 의사 부족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여 2050년까지 약 2만 2000명의 의사 공급이 추가로 필요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교수는 그 수요를 채울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7년 동안 의대 정원을 매년 5%씩 확대하여 현 정원보다 약 1500명 많은 4500명으로 늘린 후 그 수준을 유지한다면 대체로 기본 시나리오에서 도출한 장래 의사 인력 부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의대 증원 정책이 시행되면 2050년까지 활동 의사 인력 규모가 약 14만 6000명이 되어 정원이 변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거의 2만 명가량 늘어난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데 기본 시나리오가 맞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장래 필요한 의사 수가 기본 시나리오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이 교수도 책에서 이렇게 썼다. “다른 시나리오는 장래 의사 인력 규모 전망치를 기본 시나리오에 비해 낮게 전망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도출된 의사 인력 부족 규모가 더 커진다. 예컨대 65세 이상 의사의 생산성이 낮다는 가정을 도입한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2050년까지 추가로 필요한 의사 수는 3만 명을 넘는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를 앞에 놓고,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의사 수를 늘리는 게 옳을까.

국민 건강만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맞다는 주장이 나올 것만 같다. 예상보다 의사가 더 많이 부족해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가 부족해 뇌수술이나 심장 수술을 외국에 나가서 받아야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로서는 일단 의사 수를 최대한 늘리고 싶을 것이다. 2020년대 말부터 의사 부족 규모가 빠르게 증가한다고 하는데, 지금 당장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전문의를 배출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당장 의대 정원을 크게 늘려야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야당과 의료계는 의대 증원 2000명을 결정한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지만, 그의 선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선의를 인정하는 게 모든 협상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 다수의 국민까지도 놓친 게 있다. 의사들의 반발 수위다. 전공의 1만명이 지난 2월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의료 현장을 이탈했다. 의료 공백이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아프면 안 된다”고 서로 안부를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추석 연휴가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의사의 대치 국면에 국민 건강이 볼모로 잡혀 있다.

진정 유능한 정부라면 이런 상황에 대비해 플랜 B, 플랜 C까지 수립해야 한다. 그 플랜 중에는 의대 정원의 유연한 조정도 포함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장래 필요 의사 추계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맞는다는 방증 아닐까 싶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장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의사들도 공감하기를 바랄 뿐이다. 증원 규모는 그다음 문제라고 해도.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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