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대통령에게 가장 힘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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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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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란 책에서 "사람이 지위가 높아질수록 제일 하기 힘든 일이 뭘까"라는 질문에 "입 다물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고 보니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 서울시장은 그에 못 미쳐도 남 못지않은 지위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경청'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최 교수는 이를 입증할 만한 일화를 소개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때에 생태동물원 일을 자문한다면서 최 교수를 부른 적이 있었다. 만남을 끝낸 뒤, 이 전 대통령은 최 교수를 배웅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최 교수만 만나면 아이디어가 샘솟고 너무 좋아. 앞으로 종종 만나세." 그러나 최 교수의 대답이 뜻밖이다. "저를 더는 부르지 마십시오. 오늘 한 시간이 넘도록 저는 10분도 채 떠들지 못했습니다." 최 교수가 말을 시작하면 몇십 초 만에 이 전 대통령이 말을 가로채 장황한 강의를 쏟아낸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이 전 대통령은 최 교수를 한 번 더 부른다. 대통령이 된 뒤에 그를 사회통합위원회의 민간위원에 선임한 것. 그러나 그때 역시 대통령의 긴 강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나중에 최 교수가 역대 대통령을 거의 모두 지켜본 이를 만나 "대통령은 왜 말이 많나요"라고 물었더니, 대통령은 예외 없이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주변에서 "당신이 옳다"는 아부를 많이 듣게 되니 말이 늘어나는 것이다.

최 교수는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할 때 '이를 악물고 듣기'를 경영 십계명 중 하나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야 듣기 싫은 얘기를 들을 수 있고, 조직의 문제도 파악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실천한다면, 허심탄회한 직언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꽉 막힌 국정의 해법도 어쩌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여당 대표로부터 독대를 요청받았는데,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논란을 포함해 이를 악물고 듣기로 작정한다면, 독대를 못 할 이유도 없을 듯싶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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