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와 코스닥이 급락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표시돼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67.58포인트(2.78%) 내린 2,360.58,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34.32포인트(5.19%) 내린 627.01로 마감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폐기된 후 첫 거래일인 9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40원선 턱밑까지 오르고 코스피 지수 2370선이 붕괴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 주간 정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달러당 17.8원 뛴 1437.0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간거래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0월 24일(1439.7원)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환율은 6.8원 상승한 1426.0원에 개장한 뒤 점차 상승 폭을 키워 오전 11시 41분께 1438.3원까지 치솟았다.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불성립되자 불확실성이 시장의 투자심리를 억누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가결될 때까지 매주 탄핵안을 상정하겠다고 예고했으며, 이번 주에도 탄핵안을 발의하고 14일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장기화 여부가 금융시장 변동성을 좌우할 전망이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사태가 빠르게 수습될 기대가 낮아지고 있어 원/달러 환율은 1390~1450원에서 레벨을 높여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지속되고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고착화한 현 상황에서는 이런 정치적 리스크가 더 부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도 “정국 불안 장기화는 국내 증시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재료”라며 “원화 위험자산 매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 연구원은 “이번 정치적 불안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악재라고 진단한다”며 “원/달러 환율 단기 상단을 1450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당국 개입 경계감이 상승 폭을 제한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NH투자증권은 이날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50원으로 유지하면서, 당국의 개입 의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부 정치 리스크와 연동해서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있지만, 환율 방향을 바꿀 재료는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연말·연초, 내년 1분기에 이런 상황이 지속하더라도 연간으로는 환율이 1300원대 초중반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증시에서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나란히 연저점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67.58포인트(2.78%) 하락한 2360.58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이날 35.79포인트(1.47%) 내린 2392.37로 출발해 장중 2360.18까지 내려 지난해 11월 3일(2351.83) 이후 1년 1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4.32포인트(5.19%) 하락한 627.01에 장을 마치며 4년 7개월여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탄핵 불발 이후 정국 불안정성이 오히려 강화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핵심 정책 실행 동력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고 있다”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개인투자자가 코스피에서 8899억원, 코스닥에서 3020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지난 6일까지 포함하면 이틀간 양대 국내 증시에서 개인 순매도액 규모는 무려 1조95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모두 매수 우위를 보이며 각각 3091억원, 7922억원 순매수했다.
이날 장 마감 시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은 2246조1769억원으로 계엄선포 이튿날인 4일 이후 144조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업종별로 보면 철강 및 금속(-10.02%), 건설업(-5.64%), 화학(-4.98%), 전기전자(-1.30%) 등 대다수 업종이 내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총 1272개로 지난 8월 5일 ‘블랙먼데이’(1357개) 이후 가장 많았다.
계엄사태 이후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시장을 위축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날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 이코노미스트가 낸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 보고서는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하지만, 리스크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과거의 정치적 혼란은 성장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분석했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앞선 두 사례에서 한국 경제는 2004년 중국 경기 호황과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했다”며 “반대로 2025년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들과 함께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도 전날 보고서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더 불안정한 위기를 막더라도 “정치적 마비는 이미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 역시 지난 5일 보고서에서 내년 1분기 한국을 방문할 중국인 관광객이 83만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