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月 시총 회전율, 9·10월엔 한 자리
12월 개인 月 거래액 11.6조…美 등으로 ‘투자 이민’ 가속도
9월 이후 外人 코스피서 19.7조 순매도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국내 주식... 파이팅!”
방송인 데프콘이 지난달 11일 채널A에서 방송된 예능 ‘탐정들의 영업비밀’에서 오른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한 말이다.
방송 중 데프콘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사람들이 잘 사귀지만, 우리에겐 해당 안된다”면서 “SNS 메시지를 확인하면 모르는 사람이 돈 빌려달라고 하는데, 전 돈을 빌려줄 만한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위와 같은 말을 불쑥 내놓았다.
최근 국내 증시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데프콘이 수익을 거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란 점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나왔다. 그만큼 최근 국내 증시에 투자 중인 개미(소액 개인 투자자)들이 수익을 거두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 국내 증시를 움직여 온 엔진의 동력이 어느 때보다 약해진 모양새다. 글로벌 주요 증시 랠리 속에서도 유독 소외된 모습을 보였던 국내 증시를 향한 투심이 야화하며 코스피 회전율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내려 앉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증시는 윤석열 대통령 발(發)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 장기화란 정치 리스크에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이란 대외적 압력까지 더해진 국면이다. 수출 증가세 감소와 이에 따른 경제 둔화 우려가 커지며 국내 증시 펀더멘털까지 흔드는 문제는 ‘거래 절벽’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21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으로 올해 코스피 연간 상장주식 회전율은 187.05%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수치는 한국거래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값이다.
코스닥 연간 상장주식 회전율을 살펴봤을 때도 올핸 425.58%로 지난 2014년 기록한 399.39%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였다. 코스피·코스닥 합산 연간 상장주식 회전율도 295.40%로 코스닥과 마찬가지로 2014년(270.30%)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상장주식 회전율은 일정 기간의 거래량을 상장주식 수로 나눈 값이다. 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투자자들의 주식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 ‘손바뀜’이 활발하게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 회전율이 역대급 최저치에 머물렀다는 것은 투심이 어느 때보다 식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올해 월별 시가총액 회전율을 살펴보면 주가가 연중 최고점을 찍고 하강 곡선을 그리며 지지부진한 모습을 피하지 못했던 올 하반기 들어 수치가 확연히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코스피 지수의 종가 기준 연중 최고점은 지난 7월 11일 2891.35포인트다. 전날 코스피 지수는 2404.15로 장을 마치면서 겨우 2400 선을 지켜낸 바 있다. 최고점 대비 16.85%나 떨어진 수준이다.
시가총액 회전율은 일정 기간 총 거래대금을 평균 시가총액으로 나눈 값으로, 상장주식 회전율과 함께 증시에서 주식이 얼마나 활발하게 거래됐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코스피에선 지난 9월 시가총액 회전율이 8.79%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고, 10월엔 9.17%로 한 자릿대 수치를 이어갔다. 코스닥에서도 9월 31.13%로 연중 최저점을 찍은 시가총액 회전율은 10월에도 32.54%로 크게 회복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지난달엔 코스피 10.20%, 코스닥 41.85%로 반등하는 듯 했지만, 전날 종가 기준으로 12월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 회전율은 각각 7.10%, 30.02%로 다시 부진에 빠진 분위기다.
코스피가 장중 2,400선이 붕괴된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31.78포인트(1.30%) 내린 2,404.15, 코스닥 지수는 16.05포인트(2.35%) 내린 668.31로 장을 마쳤다. [연합] |
개인 투자자는 올해 국내 증시에서 유독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 모습은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나 홀로 부진을 떨쳐내지 못했던 하반기 더 두드러진 상황이다.
코스피에서 개인 투자자의 수급은 역사적 저점을 찍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KRX 정보데이터시스템을 활용해 월별 코스피 거래액 중 개인 투자자 비율을 분석한 결과 12월엔 43.08%로 지난 2019년 3월(40.70%) 이후 5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 앉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투자자의 코스피 월별 일평균 거래액을 분석했을 때도 12월엔 11조6180억원으로 올해 연중 최저치였고, 작년 11월(11조3325억원)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작은 수치였다.
개인 투자자의 미국, 일본, 유럽 등 해외 증시를 향한 ‘투자 이민’이 본격화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월별 해외 주식 시장 일평균 거래액은 지난 9월 2조6043억원에서 10월 3조1075억원, 11월 4조5055억원까지 급증했다. 특히, 12월 들어선 지난 16일 기준 해당 수치가 3조9749억원으로 4조원대에 육박한 가운데, 해외 증시에 투자액이 코스피 거래액의 33.1%까지 늘어난 것으로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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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에 대한 투심이 약화 추세를 보이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투자자는 전날 종가 기준으로 12월 한 달에만 코스피에서 3조5893억원 규모의 순매도세를 보였다. 9월 이후로 범위를 넓히면 순매도액은 19조7061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신승진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최근 반도체 수출 부진 우려와 미국 통상 정책 불확실성으로 투자자들의 저가 매수세가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까지 변동성 장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예상보다 더 ‘매파(긴축 선호)’적인 금리 정책을 시사한 점도 국내 증시엔 불리한 국면이란 평가도 나온다. 연준은 내년 기준금리 인하 횟수로 당초 예상인 4차례보다 2차례 줄어든 2차례 인하를 시사하면서, 3차례 인하를 예상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다.
[AP, 게티이미지뱅크] |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 내년 3차례 인하로 기대감을 낮췄으나 그보다 더 매파적 결과가 도출됐다”며 “이번 결과로 내년 1월 금리동결이 유력해졌고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 시장의 부담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증시가 이미 저평가 상태란 점에서 내년엔 반등의 기회도 찾아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경기 침체가 아닌 상황에서 금리인하 사이클은 유효하고 물가 상승은 일시적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코스피는 저평가 상태이고 기관 매수세도 강력하게 유입되고 있어 반등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