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에프앤에프·휠라코리아 등 의류·식량 기부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이재민 등 재난 발생 현장에 지원
튀르키예 말라티아 지역에 거주하던 아흐메드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상황이 급박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두고 나왔다. 가족과 함께 컨테이너 촌에 왔는데 너무 좁고 상황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제빵사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아흐메드 씨는 지진으로 팔을 다쳐 더 이상 빵을 만들 수 없게 됐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컨테이너 촌의 지진 피해 가정 모두가 어려움에 처했다. 지속적인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슬픔에 빠진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한국이 팔을 걷어붙였다.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는 국내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현지에 긴급구호팀을 파견해 구호 물품 배분 및 쉘터(대피소) 지원에 나섰다.
단체는 현지 정부와 협력해 피해 상황과 주민 필요 물품 리스트를 확인했다. 이후 협력 기업들과 물품 후원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그리티·무신사·에프앤에프·휠라코리아 등 21개 협력 기업은 삶의 보금자리가 무너져 혹한의 추위를 겪던 이재민들을 위해 지난해 260억 원 상당의 방한용품, 의류, 식량 등을 기부했다. 기부 물품들은 튀르키예 8곳과 시리아 3곳에 배분돼 약 8만680명의 이재민에게 전달됐다.
아흐메드 씨는 “형제의 나라 한국이 준 소중한 관심과 후원이 실제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마음에도 희망을 줬다”며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튀르키예 아디야만 지역에서 지진을 경험한 케난 씨는 “역사상 가장 추운 겨울일 때 지진이 닥쳤다. 사람들은 옷과 식량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옷을 선택할 정도였다. 밤에는 옷을 겹겹이 입고 잤다. 친구들과 재킷을 나눠 입기도 했다”며 “한국이 보내준 질 좋은 겨울 의류에 너무 감사했다. 특히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색상의 패딩을 받고 정말 좋아했다”고 전했다.
기부 물품들이 제대로 쓰이지 않거나 버려지는 걸 막기 위해 지역별로 사전 수요 조사를 진행했다. 현지 협력 기관 직원 알리 씨는 “기존에 있던 담요를 시리아 지진 피해 지역에 배분했는데 수혜자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았더니 그들이 담요를 덮지 않고 불쏘시개로 사용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 뒤로는 더욱 확실히 수요를 기반으로 한 물품 배분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민들을 존중하고자 기존의 단순 직접 배분이 아닌 ‘바우처(쿠폰) 지급형 배분’을 실시했다. 굿네이버스는 가족 구성원 수와 장애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알맞은 양의 바우처를 지급했다. 바우처를 받은 이재민들은 ‘상점형 배분 창고’에서 바우처를 내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수혜자 성별·연령대를 고려한 대상 맞춤형 배분도 이뤄졌다. 현지 자원봉사자 무스타퍼 씨는 “후원 기업에서 보내준 속옷과 잠옷 등을 모아 ‘신혼부부 키트’를 만들어 지진 피해 지역의 갓 결혼한 부부에게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의류 질이 상당히 좋아 수혜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지진 발생 당시 도시가 전부 파괴돼 피해자들이 속옷을 구매하거나 갈아입을 여유가 없었다 보니, 속옷을 보내준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굿네이버스는 지진 피해 현장을 다시 방문해 배분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협력 기업들에 결과를 공유했다. 물품 기부를 통한 현장의 변화를 경험한 기업들은 추가 기부 및 정기 후원을 결정했다. 무신사·에프앤에프·휠라코리아 등 3개 기업은 올해 약 150억 원을 후원했다.
루마니아 협력 기관 담당자 코넬료 씨는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지속돼 여전히 물품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며 “시간이 지나며 전쟁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지원도 줄었지만, 굿네이버스는 안정적으로 계속해서 물품을 지원해 현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 잠비아의 취약 계층에도 물품을 후원했다. 2022년 11월 잠비아 정부와 협력해 동계 의류 배분 사업을 시행했다. 무신사가 동계 의류 6억 원 상당을 기부했다.
의류 배분에 나선 잠비아 교육부 담당자는 “잠비아에는 겨울이 없지만, 건기에는 밤새 떨 만큼 추운 날씨가 이어진다”며 “아프리카는 덥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동계 의류 지원이 항상 부족했는데, 이번에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나눔이 이뤄져 매우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남수단 재건지원단 한빛부대와는 ‘인도주의적 공여 물자 배분 협력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한빛부대는 의류, 신발, 학용품 등 후원 물품이 남수단 취약 계층에 전달되도록 4년간 해상 운송을 지원한다.
굿네이버스는 생활이 어려운 무국적 고려인들을 위해 후원 캠페인을 펼치며, 무신사가 후원한 4억 원 상당의 의류를 전달하기도 했다.
단체는 유엔 인도적지원 물류센터(UNHRD, United Nations Humanitarian Response Depot) 콘퍼런스에도 참석하며 국제 사회와 인도주의적 협력을 강화했다. UNHRD는 재난 발생 지역에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구호 물품을 비축해 둔 창고다.
김한결 굿네이버스 물품후원팀장은 “튀르키예 긴급구호 이슈를 계기로, 양질의 물품을 대규모로 후원하려는 움직임이 대형 의류 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해졌다”며 “특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공시 의무화에 따라 자원의 선순환을 촉진하는 방안으로, 물품 기부를 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굿네이버스는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돕는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전문적인 사회복지사업과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활발히 펼치면서 기부 물품을 국내외 필요한 곳에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물품 배분 사업으로 사회적 임팩트를 극대화하고 있다”며 “물품 기부를 희망하는 기업과 함께 다양한 국내외 배분 사업에 대한 ‘콜렉티브 임팩트’를 만들어 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