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게이트’핵심인물 사업가 박동선 씨 별세
미국의회 로비혐의로 청문회
한·미관계 2년간 뒤흔들어
“아랍 등에 넓은 인맥 보유
최근까지 애국정신 강조”
89세로 타계한 박동선 파킹턴코퍼레이션 회장에 대해 그와 교우했던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20일 이렇게 추모했다. 박 회장은 최근 지병이 악화해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 입원했다가 19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과 미국 외교 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이다. 코리아 게이트는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지는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100만 달러의 현금을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에게 전달하는 매수 공작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박 회장은 이로 인해 미국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의회 공개 청문회에 출석했다. 미국 닉슨 공화당 정권에 이어 카터 민주당 정권까지 주한 미군 감축을 추진하자 안보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 정권이 박동선 등을 시켜 미국 의회에 불법 로비를 했다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이었을 뿐이며 한국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미 관계를 2년간 뒤흔들었던 코리아 게이트는 돈을 받은 의원 1명이 유죄 판결을, 7명은 의회 차원 징계를 받으면서 일단락됐다.
그 사건을 통해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박 회장은 1935년 평남 순천 태생으로 서울에서 고교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산 쌀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사업을 한 그는 1960년대 워싱턴에서 사교 활동을 활발히 하다가 코리아 게이트의 당사자가 됐다. 그 시절에 그를 만났던 배우 최지희 씨는 생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2011년 12월 16일 자)에서 박 회장이 ‘첫사랑’이었다며 평생 애증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이후 일본이나 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2005년에는 이라크로부터 돈을 받고 불법 로비를 벌인 혐의로 미국 검찰에 기소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건강 등의 이유로 감형을 받아 2008년 9월 석방됐다.
석방 후 귀국해 무역 컨설팅 회사인 파킹턴코퍼레이션을 운영했다.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으나,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서전 중문 번역판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기도 했다.
차(茶)를 즐기고 문화를 사랑했던 그는 한국차인연합회 이사장 등을 맡으며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우했다. 자신의 매형인 백낙환 전 백병원 이사장의 동생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서로 존중하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작년 11월 양방언 음악가 콘서트 등을 계기로 문화일보 기자를 두 차례 만났을 때, “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민간 외교 활동을 해 왔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지성인들은 자신보다도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를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며 “현재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잘 헤쳐가고 있으니 우리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했다.
고인과 가까이 지냈던 박재섭 인제대 명예교수는 “차인연합회장 등으로 장례를 추진했으나, 유족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고인의 장례는 큰 조카인 박양재(캄보디아 선교사) 씨가 상주를 맡아 치른다.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1일 오후 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