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방법 안 가리고… 1차대전후 사교계 사로잡은 여성 6인[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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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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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벌

시안 에번스 지음│정미현 옮김│열린책들


전쟁은 비극적 사건이지만 원래의 것이 사라진 자리에 늘 새로운 것을 싹 틔운다. 도덕주의와 위선, 합리주의와 미신이 혼란스럽게 공존했던 ‘빅토리아 시대’는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으로 끝난 듯하지만, 진정한 시대의 종언은 1914년부터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앗아간 것 중 하나는 귀족들의 사교계였다고 책은 말한다. 그리고 문화사학자인 저자는 그 빈자리를 새롭게 차지한 6명 여왕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미국 태생의 낸시 애스터, 에메랄드 커나드, 로라 코리건. 그리고 영국 태생의 마거릿 그레빌, 이디스 런던데리, 시빌 콜팩스가 그 주인공이다. 가문과 남편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이 나온 신문 기사를 모으던 이들은 계급도 출신지도 달랐으나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결혼이라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적극 이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다리를 사용한 후부터는 오직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물건부터 남자와 관계, 권력에 이르기까지 얻고자 하는 것을 향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가문의 부를 활용하고 못난 남편을 정치인으로 밀어 올리기도 했다. 이것들이 비교적 전통적인 수단이었다면 다른 남성과의 염문을 퍼뜨리거나 정치 공작에 나서는 일에도 능했다. 그 결과 낸시는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이 돼 26년간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디스는 도발적인 뱀 문신을 발목에 새긴 채 사회 운동에 매진했다. 수많은 여성을 마침내 투표의 자리에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의 세밀한 묘사는 신화처럼 들리는 여섯 여성의 성공에 너무나도 인간적인 냄새를 불어 넣는다. 그들은 서로 만든 추문에 휩싸이기도 하고 극강의 남성 편력을 보이며 대립하기도 한다. 이런 지점들은 이 책을 단순한 페미니스트 성공 전기로 읽히지 않도록 만든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여성 선구자들의 이야기가 페미니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가. 심지어 ‘여왕벌’들은 스스로 일군 재력과 부를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기꺼이 내놓았다. 가부장제에 빌붙어 이룬 성공이라는 비판과 이기적인 여성일 뿐이라는 매도를 벗어던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단편적 과정과 수단만으로 페미니즘의 진정성을 부정할 수는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선구자의 삶이 반드시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생아와 이혼녀, 늙음과 추함을 넘어 일단 나아가라는 주문이 될 수 있다. 496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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