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암 완치 기념여행 간 잉꼬부부도…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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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2.31. 오전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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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둘러보는 유족… 마르지 않는 눈물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사흘째인 31일 오전 참사 현장인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에 한 유가족이 산산조각 난 사고 항공기를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다. 백동현 기자


■ 희생자들 애절한 사연

“3년간 암투병 남편 돌봤는데”

친구 “21살 아들 어떡해” 울먹

환갑 ‘효도여행’ 부부도 참변

아들 “내가 죽음 내몰아” 오열

계모임 10명·목포 선주들…

단체 우정여행이 ‘비극’으로


“사고 발생 10시간 전에 ‘오늘 밤 비행기 탄다’고 연락했는데…암 극복 후 부부 골프 여행을 간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부부끼리 골프 여행을 갔다가 변을 당한 오모(48)·박모(53) 씨 부부의 20년 지기 친구 A(48) 씨는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을 찾아 연신 울먹였다. 오 씨 부부는 몇 년 전 시부모님 상을 치렀고, 남편 박 씨가 3년 정도 암투병을 하다 완치된 뒤에는 함께 운동과 여행을 즐기는 사이 좋은 부부였다고 한다. 아내 오 씨는 항암에 좋다며 아침마다 토마토와 케일을 갈아서 남편에게 주는 등 ‘수행비서’처럼 극진히 남편을 챙겼다고 한다. A 씨는 “여행을 떠나기 전 오 씨가 ‘남편과 함께 태국 골프 여행을 간다’고 자랑했고, 태국 가서도 ‘내일이면 입국’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했는데,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사고 당일 소식을 듣고 29일 오 씨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가 꺼져 있었다. 29일 일요일 오후 3시 ‘○○아 자니, 일어나면 연락해’라고 카톡을 보냈지만 ‘1’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21살짜리 아들도 있는데 아들은 어떻게 하냐”며 “아들이 1살 때부터 우리 집과 가깝게 지내 조카와 같은데, 부모 없이 남은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번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에서 희생된 이들은 대부분 오 씨 부부처럼 단체로 여행을 간 이들이었다. 계모임 회원 10명이 첫 단체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함께 참변을 당한 사연도 있다. 계모임 회원 B 씨의 처남 이모(68) 씨는 “매제는 대기업 출신으로 은퇴 후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었다. 여동생한테도 자상해 한 번도 싸우지 않고 40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는데, 이렇게 떠나니 여동생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목포 토박이’ 선주들끼리 연말 모임으로 갔다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16년간 목포 지역에서 직원 10명 정도를 두고 조선업을 하던 사장 이모(63) 씨의 동생 이모(59) 씨는 “30년간 조선업에 종사하며 자기 회사도 차리고 정말 성실하게 일하던 가장인데, 매일 함께 바닷일을 하던 사람들과 목숨을 잃으니 너무 허망하다”며 “슬하에 첫째 딸(35)과 둘째 아들(33)을 뒀고 아들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아빠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냐”고 토로했다.

부모님 환갑을 맞아 보내드린 ‘크리스마스 효도 여행’에서 변을 당한 부부의 외동아들 C(31) 씨는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9월이었는데, 그때 시간이 안 돼서 연말에라도 겸사겸사 다녀오시라고 선물해 드렸는데,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죄책감이 너무 많이 든다”며 “부모님이랑 붙어 있으려고 일부러 직장도 본사가 아닌 목포로 발령해 달라고 했는데, 사고가 나니 전라도 지역에 남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망자 179명 중 첫 빈소가 마련된 31일 오전 광주 서구의 한 장례식장은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지역 중소 여행사 사장으로 손님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가 변을 당한 채모(67) 씨의 영정 사진 앞에는 유족이 지쳐 쓰러져 있었다. 채 씨의 시신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돼 사고 당일인 29일 제일 먼저 신원 확인이 된 12명 중 한 명이었다. 채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내와 만나 결혼생활을 이어오며 슬하에 아들 하나를 뒀던 가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떠난 바로 다음 날인 26일 태어난 손녀도 보지 못한 채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오전까지 빈소가 마련된 희생자는 채 씨 포함 4명으로 광주 3곳, 서울 1곳이다.

무안=김린아·김유진·정지연 기자

광주=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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