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서도 ‘민심은 천심’
지난 5일 방문한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외제차 본사 안에서는 젊은 남녀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펼쳐 든 붉은 현수막에는 ‘B사는 당장 차 값을 환불하라. 내 어머니의 목숨 값’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외제차 대리점에 낸 계약금을 환불해달라고 시위를 벌이는 것이었다. 이들 중 한 명은 어머니가 갑자기 입원했는데 수중에 치료비 낼 돈이 없다면서 괜히 차를 계약했다고 푸념했다. 중국에서 이런 크고 작은 시위가 올해 유독 많았다. 홍콩 기반 노동 단체 중국노동회보(CLB)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전역에서 719건에 달하는 집단행동이 일어났다.
중국 대도시에선 끔찍한 묻지 마 살인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나며 사회 분위기가 흉흉하다. 지난달 11일 광둥성 주하이시에서 일어난 차량 돌진 사상자가 78명에 달했다.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무차별 범죄 가운데 피해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달 16일엔 장쑤성 이싱시의 한 직업학교에서 칼부림 사건으로 8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지난달 말에는 급기야 가장 안전하다고 자부하던 베이징에서도 학교 앞에서 난동 사건이 일어나 5명이 다쳤다. 중국 공안부는 결국 ‘동계행동(冬季行動)’이란 대규모 범죄 예방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인들이 왜 갑자기 참을성이 없어진 걸까. 일련의 사건들은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삶이 피폐해진 국민들의 분노가 쌓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은 닥쳐올 ‘트럼프발(發) 태풍’에 대비해 ‘기술 돌파’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매진해왔지만, 결국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는 진리를 거스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나랏님 탓보다는 서로 싸우거나 ‘자해’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불길이 얼마나 커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중국 지도부는 앞만 보고 가다 넘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듯하다. 경제 성장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첨단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해서 미국의 기술·공급망 봉쇄에 대비하고 국가 경제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는 여전하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사회 불안정이 커지며 안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11~12일 베이징에서 개최한 내년 경제 방향을 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中央經濟工作會議)에서는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 완화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과학기술 혁신과 함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내수 회복도 꼽았다. ‘급한 불’인 경제 회복에 당분간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셈이다. 지난 9일에는 중국이 14년 동안 유지해온 ‘온건한(보수적) 통화 정책’ 기조를 ‘다소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의 귀환을 앞두고 중국인들의 군기를 잡으려 했던 지도부가 어쩔 수 없이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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