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美 돌파 전략은…현지 생산 늘려 관세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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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톰’ 앞에 선 정의선 리더십 [스페셜리포트]


지난해 10월 촬영된 현대자동차그룹 미국 신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건설 현장 전경. (현대차그룹 제공)
결국 현대차그룹 파격 인사는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난국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대차 입장에서 트럼프 행정부 최대 리스크는 관세 부과와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 등 2가지다.

관세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수출 물량이 많은 현대차·기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iM증권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이후 보편 관세 10~20%를 부과하고 이를 생산자가 전부 부담한다면, 현대차는 월 2000억~4000억원, 기아는 월 1000억~2000억원가량 부담을 떠안는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최대한 활용해 관세 회피 전략을 편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연산 36만대), 기아 조지아 공장(연산 34만대)에 더해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연산 30만대·기아와 공유)도 지난 10월부터 가동 중이다. 이들 공장을 합하면 현대차그룹 연간 생산능력은 약 100만대에 달한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약 165만대를 판매했다. 현지 공장을 완전 가동할 경우 약 60%의 물량을 현지에서 생산해 관세를 피할 수 있다.

전기차의 경우, 현대차 고유 강점인 ‘혼류 생산’ 체제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혼류 생산은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차 등 2개 이상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익률이 서로 다른 여러 차종을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제조할 수 있어 ‘모델 믹싱’을 통한 영업이익률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경쟁 업체 대비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제조 시스템 강점 덕분이다.

이에 완성차업계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카 생산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유연한 생산 전략을 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관세를 회피하면서 전기차 보조금 철폐·축소에 따른 손익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초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는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설계됐지만, 현대차는 달라진 제반 상황을 감안해 하이브리드를 비롯 다른 파워트레인 차종도 생산할 수 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공장인 이곳에 하이브리드 혼류 생산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협력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차량 개발과 공급망 등에서 GM과 포괄적으로 협력하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 정책 혜택을 일부 누릴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그룹과 GM은 지난 9월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공동 개발, 생산 협력, 차량 생산에 필요한 배터리 원자재와 소재 공동 조달 등에서 협력하겠단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차량 개발과 공급망 등에서 협력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 정책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9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과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 회장이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픽업트럭 공동 개발’이 양 사 협력 첫 성과가 될 전망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11월 초 미국에서 메리 바라 GM 회장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두 회사는 공동 개발한 픽업트럭으로 중남미 시장을 겨냥한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픽업트럭 시장 규모는 2086억달러(약 290조원)로 현대차그룹이 북미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려면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 시장이다. GM은 북미 픽업트럭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전통 강자다. 두 회사는 생산 차량을 배지 엔지니어링(Badge Engineering) 방식으로 판매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현대차가 생산한 자동차에 GM 엠블럼을 붙여 판매하거나, GM이 생산한 자동차에 현대차 엠블럼을 부착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개발비를 줄이면서 신차 출시 효과를 얻는 동시에 상대 판매망도 활용할 수 있다.

중장기 과제로 수출 다변화에도 속도를 낸다. 특히 성장성이 높은 아시아와 중동 지역 등에 각별한 공을 들인다. 현대차는 인도에서 점유율 2위, 베트남에선 점유율 1위를 달린다. 아직 현지 공장이 없는 중동 지역도 수출 다변화를 위한 핵심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차·기아는 중동 최대 자동차 시장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점유율 2위(23%)를 차지하고 있는데, 올해는 1위 토요타(28%)와 5%포인트까지 격차를 좁혔다.

지배구조 재시동 거나

현대엔지니어링 IPO 관심

해묵은 과제 지배구조 정비에 속도를 낼지도 관심사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 → 현대차 → 기아 → 현대모비스’ 등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된다. 정의선 회장이 핵심 계열사 현대차·기아 지배력을 확대하려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려야 한다. 올 3분기 기준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몽구 명예회장이 7.24%, 정의선 회장은 0.3%를 갖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승계 구도 재편 과정에서 지렛대로 쓸 만한 계열사 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기아·현대위아·이노션·현대엔지니어링과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지분 20%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가치가 평가액 기준 약 1조8000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정의선 회장 입장에선 현대모비스 가치가 눌려 있는 가운데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가 올라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로 평가된다. 현대모비스 주가가 최근 수년째 제자리걸음 패턴을 보이자 세간의 이런 관측에 힘이 실렸다. 지난 6월 여의도 증권가에서 정몽구 명예회장 신변 이상설이 확산했을 때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장중 한때 10% 이상 치솟았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시점을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물밑 작업은 ‘정중동’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 과정에서 사업부 분할과 합병, 비주력 계열사 매각 등 여러 거래가 수반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과거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가 주주 반발로 한차례 무산됐던 이력이 있는 만큼, 대주주의 소수 주주 간 이해관계 정렬·일치에 각별한 공을 들일 것으로 관측된다.

일부 정황은 엿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번 인사에서 주우정 기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현대엔지니어링 사령탑으로 옮긴다는 점에 시장은 주목한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를 갖고 있다. 2021년 현대엔지니어링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당시 시장에서는 정 회장이 가진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매각해 상속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봤다. 수요예측에서 기대했던 기업가치를 받지 못해 IPO를 철회했지만 시장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IPO 재도전에 나설 것으로 본다.

이번 인사를 두고 IPO 재개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 배경이다. 일각에선 중장기적으로 금융 계열사를 활용할 수 있단 관측도 내놓는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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