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대출 규제로 매매 거래가 급감한 가운데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며 환율·금리 변동 등 금융 시장까지 타격을 받을 경우 집값도 급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8년 전 탄핵 정국 당시와 비슷하게 집값 하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2월 매매 거래 ‘뚝’
그렇지 않아도 최근 주택 시장은 부진한 흐름을 보여왔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3725건으로 9월(3126건)에 이에 두 달 연속 3000건대에 머물렀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월 9206건까지 늘었으나 8월 6490건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대출 규제가 더해진 9월에는 거래량이 반 토막 났다. 11월 거래량은 12월 11일까지 신고된 자료 기준으로 2590건이다. 실거래 신고 기한이 30일가량 되는 점을 감안해도 매매 거래가 뚝 끊긴 모습이다.
경기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경기도 내 아파트 매매 거래량(분양권·입주권 포함)은 7월 1만7570건으로 최대를 기록한 이후 9월 1만1776건, 10월 1만1401건으로 줄었고 아직 실거래 집계가 끝나지 않은 11월에도 6698건(12월 12일 기준) 수준에 그친다.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인기 지역에서는 최근까지도 신고가 행진이 이어졌지만 서울 전역, 수도권,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경기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까지 강화된 여파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탄핵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적 불안이 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서다. 이미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경기가 더 고꾸라지면 부동산 시장 역시 반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아파트값은 서울을 포함한 전국에서 단기간 하락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던 12월에는 실거래 아파트 매매 가격이 전국은 0.33% 떨어졌고 서울은 0.6%로 하락폭이 더 컸다. 11월까지 전국은 0.16%, 서울은 0.23%씩 오르다 하락 전환했다. 해를 넘겨 2017년 1월에도 아파트값은 전국이 0.31%, 서울은 0.28% 내리 내렸다. 이번 탄핵 정국에도 비슷한 모습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배경이다.
이런 분위기 속 상당수 전문가는 내년 상반기 말까지 서울을 포함한 전국 집값이 상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매경이코노미 설문에 응답한 전문가 13명 중 3명이 ‘집값 하락’을, 5명은 ‘1% 미만 약보합’ 전망을 내놨다. 전문가 3분의 2가 이례적 ‘약세’를 외친 셈이다. 올 3분기까지만 해도 집값 전망이 대체로 긍정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채상욱 포컴마스 대표는 “2016년 말 탄핵 정국과 유사한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집값이 3% 이상~5% 미만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 미만 하락’을 전망한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경기 침체 우려, 올 상반기 집값 단기 급등 피로감, 대출 규제와 겹치면서 투자 심리가 꺾였다”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기 전까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집값 단기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반면 탄핵 정국 자체는 시장에 단기적인 충격만 주며, 그 충격 또한 미미하다는 의견도 적잖았다. 결국 집값에는 금리와 대출 규제, 공급 이슈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본격화한 2월부터는 아파트값이 차츰 오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2017년 한 해 동안 전국 아파트값은 1%, 서울은 10.6%가량 올랐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내집마련 수요는 여전히 많고 공급은 부족한 만큼, 주택 시장은 잠시 관망세를 유지하다 대출 금리가 내리는 시점부터 매매 거래가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전문가들은 윤석열정부가 내놨던 주택 공급 정책들이 동력을 잃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열정부는 임기 내 주택 270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도심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올해 1·10 대책, 8·8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올 1~10월 누적 인허가 물량(24만4777가구)은 연간 목표 물량(54만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19% 줄었다.
공공주택 인허가도 속도를 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지난 11월 발표한 서울 서초구 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한 5만가구 공급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1기 신도시 재건축(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2027년 착공을 목표로 최근 선도지구를 발표했는데, 이 역시 일정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부동산 대책을 뒷받침할 주요 법안의 국회 통과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가뜩이나 공사비가 올라 시름하던 건설 업계 역시 급등한 환율에 원자잿값 추가 인상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다주택 규제 대비…경·공매 노려야
혼란스러운 시국 속 전문가들은 다주택자와 실수요자 모두 부동산 자산을 리밸런싱(재조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 다주택자는 똘똘한 한 채, 내집마련 실수요자는 틈새시장 공략이라는 전략이 제시된다.
현재로서 다주택자가 가장 먼저 고민할 부분은 자산을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탄핵 정국 이후 어떤 결말이 나든 다주택자 규제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의힘이 여당 지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부동산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기는 쉽지 않아졌다”며 “탄핵이 성공해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에도 과거 문재인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정책이 상당 부분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런 규제 강화 기조에서 다주택자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이른바 ‘똘똘한 한 채’로 자산을 압축하는 것이다.
똘똘한 한 채는 자산 가치가 높은 핵심 지역 주택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전략이다. 즉,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해봐야 양도세 중과, 보유세 등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으니 가치 높은 한 채에 집중하자는 얘기다. 서울 강남권 등 인기 지역 신축 아파트가 흔히 얘기하는 ‘똘똘한 한 채’에 해당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국내 주택 시장의 특성상 지역과 단지에 따른 입지 우열이 명확하고 당분간 신축의 희소성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며 “우수 입지의 신축 위주로 수요자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내집마련 실수요자가 이런 높은 가격대 아파트를 구매할 여력이 안 될 경우에도 대안은 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실거주 가능한, 인기 지역의 구축 중대형 아파트’를 눈여겨보라고 권한다. 이런 아파트는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 호재가 있으면서 대지지분이 상대적으로 높을 확률이 높다. 어수선한 정국과는 상관없이 가치 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품이라는 취지다.
또한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일수록 지금 같은 어수선한 시국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강화된 대출 규제에 따른 매수 심리 위축으로 많은 사람이 매수를 주저하는 상황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싸게 나온 급매물과 경·공매 물건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도 있어서다.
특히 첫 집 마련을 앞두고 있다면 이 과정에서 정책 금융상품을 적극 활용해볼 만하다. 주택도시기금 대출이나 보금자리론과 같은 상품은 실수요자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줄여주고 시장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한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금리 인하와 정부의 지원 정책이 실수요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책 금융상품이 적용 가능한 주택을 물색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경기 불황으로 경·공매 물건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에도 주목하자. 경·공매 정보제공 업체 지지옥션 ‘10월 경매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9월(2933건)보다 19.1% 증가한 349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월별 기준으로는 2020년 11월(3593건) 이후 3년 11개월 만에 최다 진행 건수다. 이런 상황에선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하는 ‘틈새 저가 매수’가 가능하다. 이런 틈새 저가 매수에 성공했다면 어느 정도 안전마진을 확보한 셈이고, 시장 변동에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경·공매로 관심 가질 만한 유망 지역으로는 광명시 같은 수도권 뉴타운 개발 지역과 용인, 인천 등 AI·반도체가 핵심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지역”이라는 게 윤 대표 조언이다.
자금 여력 부족하면 ‘중저가 아파트’
탄핵 정국에도 청약 시장은 ‘열기’
물론 자금 여력만 충분하다면 신축이든 구축이든 서울 강남권, 한강변 입지가 최고 선택지다. 이들 아파트는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졌던 지난해 말~올 초가 투자 적기였고 이후 가격이 큰 폭으로 뛴 상태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투자 기회를 놓친 실수요자라면 지금이라도 가격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중저가 아파트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좋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연구소장은 “경기도 주요 지역 중소형 아파트는 최근의 대출 규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조언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역시 눈여겨볼 만한 투자 지역으로 거론된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 중 하나인 1기 신도시 재건축은 ‘2027년 착공’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내세웠지만 이번 탄핵 정국으로 일정 지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12월 중 발표 예정이었던 1기 신도시 이주계획과 광역교통대책을 연기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재건축은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크며, 다른 주거 상품에 비해 정치적 변수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향후 정국에서도 1기 신도시 재건축 방향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며 “여당은 지금처럼 그대로, 민주당은 다음 총선 여파를 생각해 지금 같은 방향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탄핵 정국 아래 침체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도 서울 주요 입지의 아파트 청약은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 혼란 속에서도 청약 시장은 여전히 실수요자들에게 매력적인 셈이다. 특히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용산구의 청약 열기가 뜨겁다. 분양가상한제는 새 아파트 분양가를 땅값, 건축비 등을 더해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12월 10일 1순위 청약받은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츠카운티’는 일반분양 71가구 모집에 3만4279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482.8 대 1로, 가장 인기를 끈 타입 전용면적 84㎡D의 경쟁률은 826 대 1에 달했다. 향후 3년간 아파트 공급 물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지라 내집마련을 원하는 수요자들에게 청약은 가장 좋은 선택지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내집마련 실수요자들은 청약과 급매물 매수 등 ‘투트랙’ 전략으로 나서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9호 (2024.12.18~2024.12.2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