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최근 K팝을 이끄는 걸그룹 에스파와 손잡고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냈죠. 세기말 트렌드를 대표하던 기업이 20여년 만에 당시의 감성을 들고 다시 나타난 겁니다. 지난 20여년간 아이리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이리버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애플이 2005년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을 무기로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아이리버의 경쟁력이 약해집니다. 아이팟에 아이튠즈 음악 서비스가 연동되는 음원 시장이 열리면서 아이리버의 새로운 모델은 해외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리버는 미국 전역에 사과 씹는 광고를 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하면서 애플에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EBS가 2014년 방영한 다큐멘터리 ‘패자부활전 하프타임’에서 정석원 당시 아이리버 마케팅실 상무는 “음악 중심 생태계가 아니라 제품에만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이리버는 그렇게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진 듯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템으로 기사회생합니다. 바로 고급 음향기기입니다. 아이리버는 당시 고화질 TV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걸맞은 오디오를 누리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발견합니다. 국내를 넘어 일본∙유럽 등 해외에서도 프리미엄 오디오 시장이 커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이리버는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아스텔앤컨(Astell&Kern)’을 만들고, 2012년 10월, 첫 고음질 음향기기 모델 ‘AK100’을 출시합니다. 음향기기는 MP3 제조사로서 노하우를 쌓은 아이리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죠. 대형 오디오 장비로만 들을 수 있었던 고음질 음악을 스마트폰 크기의 휴대용 기기로 감상할 수 있게 되자 70만 원대라는 다소 비싼 가격에도 소비자들은 호응했습니다. 출시 3개월 만에 100억원 매출을 냈고, 적자의 늪에 빠졌던 아이리버는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음향기기 제조에만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아이리버는 음악 시장 전체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SM엔터테인먼트가 협력 차원에서 아이리버의 지분을 가져가면서 아이리버는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는 것은 물론, 최근까지 SM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만든 응원봉과 굿즈 등 MD 상품 제작도 맡았습니다.
드림어스컴퍼니가 전자 기기 시장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닙니다. 아이리버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MP3∙이어폰∙CDP 등 음향 가전과 함께 제습기∙무선충전기 등 생활가전을 만들고 있죠. 김준환 드림어스컴퍼니 아이리버 사업유닛장은 “과거 아이리버는 MP3에만 집중했는데, 소비자의 일상에서 쓰이는 라이프 스타일 디바이스 브랜드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비크닉’ 유튜브 채널의 ‘B사이드’에선 아이리버의 근황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뤄봅니다. 음모론적인 질문으로 브랜드의 의도를 파헤쳐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