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왕원(王文·44) 인민대 충양연구원 원장이 중국 기자협회가 마련한 자리에서 말했다. 트럼프 발 태풍을 시간으로 상쇄하려는 중국식 사고를 드러냈다.
촉망받는 소장파 전략가인 왕 원장은 앞서 7일 러시아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물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로 함께 중국을 견제하자며 ‘연러항중’을 제안한다면 받아들이겠나.”
왕 원장은 사흘 뒤 푸틴의 발언을 베이징 내외신기자에게 전하며 “겨우 4년”을 덧붙였다. “어떤 러시아 지도자도 미국의 이른바 ‘역외 책략’을 믿고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4년 임기의 트럼프에게 종신 집권도 가능한 푸틴과 시진핑이 휘둘릴 가능성은 작다는 판단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글로벌 지정학의 바탕에는 미·중·러 삼각형이 있다. 트럼프의 등장에 중국은 아픈 과거를 떠올린다. 1950년대 말부터 1972년 닉슨의 방중까지 중국은 미국·소련·인도는 물론 북한과도 대치했다. 육지와 해양 국경 너머가 모두 적이었다. 국가 핵심시설을 서부 벽지로 옮기며 유사시를 대비했다.
지난 4년 중국은 제이크 설리번과 커트 캠벨이 빚어낸 미국이라는 바퀴 중심 허브와 소다자 동맹이라는 바큇살이 촘촘한 신(新)합종전략에 시달렸다. ‘연러항미’의 연횡책으로 버텼다. 이제 트럼프의 미국은 미·중·러 세 다리의 청동솥 무게를 묻는 패권외교를 펼칠 기세다.
중국의 첫 대응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17일 댜오위타이 세미나에서 밝혔다. “2025년은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80주년이자 유엔 창설 80주년”이라며 “대세를 도모하고, 대의를 맡고, 대도를 펼치겠다”고 했다.
중국 외교의 지휘자인 왕이가 승전 80주년부터 앞세운 의도가 주목된다. 지난 70주년 전승절 당시 한국 대통령은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푸틴과 함께 올랐다. 북한은 핵·미사일로 맞섰다. 방어용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는 한·중 관계를 냉·온탕으로 몰고 갔다.
내년 9월 베이징의 천안문 초청장은 한국의 아·태경제협력체기구(APEC) 정상회의에 앞선다. 한국은 ‘겨우 5년’ 대통령을 넘어서는 현명한 답안을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