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병원 아빠 침대 옆에 있던 모니터 혈압, 산소수치, 맥박 등 환자의 상태를 숫자로 알려주는 모니터기게 당시에는 저 화면의 숫자들을 어떻게 읽는지도 몰랐었다. 읽을줄도 모르니 더 무섭고 두려워 했었다. |
ⓒ 김은영 |
아빠는 2018년 직장에서 작업 중 자발성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골든타임인 5분 만에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 옮겨간 병원은 로컬 작은 병원이었고 그마저도 다행이다 했는데 며칠 뒤 다발성 뇌경색이 추가로 와 버렸다. 그로 인해 아빠는 64세라는 젊다면 젊은 나이에 중증 뇌졸중 환자가 되었다.
"뇌졸중". 한자를 풀면 말 그대로 뇌(뇌 腦) 졸(마칠 卒) 종(가운데 中). 즉, 뇌가 갑자기 멈춤, 혹은 죽었다는 상태를 말한다.
뇌졸중은 골든타임 안에 수술을 해야 하니 받아주는 병원에 가야 한다는 얘기에 급하게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아빠를 옮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옮겨간 로컬 병원은 정말 동네에서 아프면 가는 내과, 소아과 같은 병원이었다. 뇌출혈 이후 뇌경색. 출혈과 막힘. 이 정 반대 양상의 병변을 여기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을 한다. 그때라도 위험하니 전원은 안 된다고 말리는 의사의 말을 무릅쓰고 서울의 메이저 병원으로 아빠를 옮겼다면 어땠을까? 지켜보는 것만 말고 약을 조절해서라도 약을 쓰지 않았을까? 아니면 뇌경색이 오기 전에 알아챌 수 있지 않았을까?
보호자들의 고민 :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
병원에서는 급박한 순간 보호자의 선택을 꽤 많이 요구한다. 그 선택으로 환자의 예후가 결정되기에 나 같은 후회는 아마도 수많은 보호자들이 할 것이다. 초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니 병원에서 마냥 받아준 걸 다행으로 여겼던 걸 후회했다. 그러나 뇌라는 곳은 워낙에 다양한 변수가 나오는 기관이기에 아무리 서울의 명의 라도 모든 걸 다 알 수 있지 않고,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곧 알게 된다.
첫 번째는 몰라서 못 갔다지만, 이제부터 몰라서 못 가는 병원은 없다!라는 마음으로 방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뇌졸중 재활 환자에게 A 대학병원이 꿈의 병원이라는 걸 알았다. 그 큰 병원에 재활병동 건물이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재활과로 제일 규모가 크고 투자도 많이 하는 병원. 의료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첨단 로봇 재활기구까지 아주 명성이 자자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입원 연락을 받았고 병원 입원 이튿날 기도실을 찾아 동생과 휠체어에 앉은 아빠와 셋이 손을 잡고 기도를 했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아빠는 입원 한 달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대발작으로 심박수가 200을 찍으며 온몸을 덜덜 떨었고 급기야 사지가 뒤틀렸다. 2주 뒤 아빠의 원인 모를 발작은 가까스로 잡혔으나, 이미 이전의 아빠가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 A 병원에 있었잖아.' 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보호자는 여전히 있다. 그만큼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환자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남들에게 아무리 좋은 곳이어도 나에게는 최고의 병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누가 자랑을 해도 그러려니 한다.
발병 초기엔 한국의 내로라하는 메이저 병원들은 다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건 2년까지만 가능한 일. 발병한 지 오래된 환자는 상급병원, 특히 대학병원에서는 환영받기 힘들고 그만큼 입원 치료를 받기가 힘들다. 가족이 보기에는 치료할 게 많은 중증 환자인데, 병원 입장에서는 급성기 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말 그대로 '돈 되는 환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발병 3년 차가 되면서부터 대학병원 입원은 언감생심, 종합병원에서도 눈칫밥을 먹는다. 상급 병원에는 계속해서 돈이 되는 급성기 신규환자들이 입원하고 우리처럼 발병일이 오래 된 환자들은 더이상 할 검사도 치료할 수술도 없기 때문이다.
메뚜기 입원에서 얻은 교훈
종합병원, 시립병원, 요양 재활병원 이 3곳을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을 메뚜기처럼 옮겨 다녔다. 마지막으로 오게 된 '정말 가도 괜찮을까?' 했던 요양병원에 정착한지 10개월 째다. 있어보니 왜 한국에 요양병원이 많아지는지 알 것 같다.
연차가 오래된 아빠는 종합 병원에서는 받을 수 있는 재활치료도 이제는 많이 없다. 다행히 내과적으로도 큰 이상이 없는 환자다 보니 치료와 처방을 해주는 의사보다는 아빠를 매일 보고 만져주는 치료사들이 더 중요하다.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재활 치료가 비슷하다면 1~2달만 입원이 가능한 상급병원보다는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있는 요양병원이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훨씬 안정적인 환경이기 때문이다.
설이 지나고 아빠는 종합병원에 잠시 입원을 할 예정이다. 요양병원에 전원 오기 직전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입원해서 재활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감염의 위험때문에 한달에 한번 교체해야 하는 콧줄과 달리 뱃줄은 깨끗하게 관리가 되었다면 6개월~1년 사이 1번만 교체를 하면 된다. 이번에 기간이 되어서 뱃줄을 교체하고 그 김에 전체적으로 한번 싹 검사를 하기로 했다.
▲ 사설구급차 속의 아빠 전원 날에는 정신없이 이삿짐을 이고지고 사설 구급차에 탄다. 아빠도 긴장을 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내 손을 꽉 잡고 누워 있는다. 나는 기사님께 빨리 안 가도 되니 안전하게만 가달라고 얘기를 한다. |
ⓒ 김은영 |
요양병원에서는 갑자기 열이 나거나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 이상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는다. 상급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처럼 1달에 1번 정기적인 피검사, 소변검사 등을 하지 않기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환자의 혹시 모를 이상증세를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그 동안 못한 여러 가지 검사를 다 하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 검사를 마치고 우리는 미련 없이 다시 요양병원으로 갈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전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예전에는 이렇게 매번 옮겨 다니는 생활이 언제쯤 끝이 날까 하는 막막함에 불 꺼진 병실 안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과정들이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병원의 간판과 의사의 이름에 매달리지 않는다.
간병하는 일상 속에서 우리와 비슷한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보면서 인내와 사랑의 깊이를 배우고,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감사하는 법을 익혔다. 아빠 역시 병원을 옮기는 날이면 말로 표현을 하지는 못하지만 내심 긴장을 하는지 구급차 침대에 누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손을 꽉 잡는다. 그런 아빠의 미세한 표정의 변화와 손끝의 온기에서 나는 또다시 에너지를 얻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오늘도 우리는 담담히 부녀의 여정을 이어간다.
"아빠 잘할 수 있지? 힘내, 나 아빠 옆에 있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NS에도 실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에 꼽는 서울의 대학병원과 예약잡기도 힘든 유명한 의사만 찾아가면 중증 환자라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최고의 병원과 의사가 내 환자에게도 최고는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