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숙소, 사망자 명부까지... 네덜란드가 모두 비밀에 부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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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2.30. 오후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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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 격추사건, 한국과 네덜란드의 정부가 달랐던 점
 30일 오전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사고 현장에서 유류품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안현주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이륙한 말레이시아 항공이 격추된 것은 2014년 7월 17일. 저는 주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공사님 방 열린 문틈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얼른 검색해보니 큰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격추라니, 전쟁으로 비화되지나 않을까. 이게 무슨 일인가. 대사님은 만찬 약속으로 외부에 계셨고, 공사님 주재 하에 간단하게 회의를 마친 후 영사님과 제가 먼저 공항으로 출동했습니다. 대사님과 서기관님도 저녁 약속을 일찍 끝내셨는지 어땠는지, 부랴부랴 공항으로 오셨습니다.

각국 대사관들은 탑승자 국적 확인을 위해 난리였습니다. 우리는 특히 애가 탔습니다. 초기에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났었던 세월호 참사가 불과 석 달 전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보고할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항에 마련된 상황실에는 탑승객의 가족 외에는 외교관들은 물론 기자들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불규칙하게 이어진 당국의 공식 브리핑에서도 항공사와 확인 중이라며 탑승객의 명단과 국적을 바로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외교관 분들은 항공사의 공식 발표 이전에라도 빨리 파악을 하기 위해 항공사와 공항은 물론 타국 대사관의 인맥 등을 총동원했습니다.

밤 12시 (한국 시간 아침 7시) 경에는 대사님과 한국 언론사의 전화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선후 관계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비슷한 시각에 공항 상황실이 유족들을 위해 모처에 마련된 숙소로 이동하도록 조치되었습니다.

유족 숙소도, 탑승자-사망자 명부도 비밀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사고 브리핑도 유족 숙소에서 할 것 같아 (오로지 한국인 탑승여부에만 관심이 있던) 우리가 따라가려 하니 장소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왜? 언론사의 관심으로부터 유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탑승자 및 사망자 명부도 배포나 확인해주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라서. "결코 유가족이 언론사나 다른 경로를 통해서 가족의 부음을 먼저 접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네덜란드 정부의 공식입장이었습니다.

가슴이 쿵 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던 기억입니다. 사실 뭐가 더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당국이 무조건 잘했다고 판단할 만큼 제가 양국의 문화나 재난 대비 매뉴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실에서 언론을 내보내고자 하는 명분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종편에서 출연자가 다른 이야기를 열심히 떠드는 동안 화면 아래 쪽에서 무심히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흘러가는 자막 속에 가나다 순으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지나가더라도, 그렇게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어하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떠한 대우, 아니 취급을 받았는지 생생하던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유족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원칙은, 방법론에서 어떻게 하느냐를 떠나 제 가슴을 깊이 때렸습니다.

하여 이태원 참사 때 희생자 명단을 언론이 공개하거나 합동 추모의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에 대해 저는 우선 부정적이었습니다. 유족들의 동의 없이 그래도 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시대마다 문화권마다, 또는 참사의 성격에 따라, 장례의 절차나 인간과 망자와 유족에 대한 예의는 여러 형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원칙에 따른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고 있을 가족들이 제일 덜 아픈 방향으로, 그리고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유족들 오열의 현장에 카메라는 없었다

 2014년 8월 3일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항공 비행기 추락 사고 당시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 3번 출국장 앞에서 직원들이 추모 꽃을 정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아래는 여담입니다.

대사님 인터뷰 전에 모 우방국 대사관을 통해 명단을 확보하긴 했었습니다. 거기에 익숙한 한국식 이름 표기는 없었지만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는 애매한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또한 국제 결혼 등의 경우도 있을 테니 영문 이름만으로 국적을 확정할 수는 없기도 했습니다. 성과 이름과 이니셜을 놓고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해 보는 밤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탑승자 가족을 모신 호텔을 알아내어 그곳으로 갔습니다. 딱히 외교관들을 위한 공간은 없어서, 서성이던 중에 대사님은 내일 일정을 위해 귀가하시고, 저와 영사님은 남아서 계속 대책본부의 발표를 쫓기로 했습니다.

밤이 되어서 그런지, 가족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 컨벤션 홀에 외교관들도 들어가서 카페트 바닥에 좀 앉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옆에 보니 일본 대사관 직원이 두엇 있었습니다. 망설이다가 말해줬습니다. 우리가 입수한 명부에 명백한 일본식 이름은 없더라. 하지만 국적은 또 모를 일이니 더 확인해 보시라. 딱히 정보로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확실한 정보는 아닐지 몰라도, 마음 졸이고 있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릴없이 로비에 나왔다가 밤공기를 쐬러 왔다갔다, 들고 갔던 논문 읽다가, 하던 중에 갑자기 웅성웅성했습니다. 추가로 신원확인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상황실에서 나온 이가 원탁에 앉아있는 가족을 찾아가더니, 조용히 문서를 내밀며 (아마도) 이 분이 댁의 가족 맞느냐며 묻는 것인지, 무언가 통보를 하는 것인지 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누가 슬픔의 표현에 동서양의 차이가 있다고 하던가요. 그 이후 보고 겪은 일들을 그 옛 페이스북에 나만보기로 적어두었는데, 오늘은 굳이 꺼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오열의 현장에 카메라 플래쉬는 없었다는 것만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먼저다

 30일 오후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 무안종합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원식 국회의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고기동 행정안전부장관 직무대행 등의 조화가 놓여있다.
ⓒ 안현주

우리는 밤을 새웠고, 이튿날 오후엔가 외교부 브리핑에서 국적을 최종 확인해줄 때까지 안절부절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한국인 희생자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대사관이 비상근무체제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습니다.

사실 그 사고 이전에 저는 외국에서 무슨 사고가 났을 때 한국 뉴스앵커가 "다행히도 한국인 희생자는 없었습니다"라고 하면 울컥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는 화가 납니다.

'다행? 누가 대신 죽어서 다행? 전체 사망자가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날 한국인 희생자가 없었던 것이 우리(대사관 식구들)에겐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편,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 이후 저는 지구촌 어디선가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면 바로 '아이고 저 동네 한국대사관 직원들 비상 걸려 고생이겠구나'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요새는 점점 더 옅어져 가고 있었음을 이 글을 쓰다가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우리'가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졌다가 희미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좁아졌으되 촘촘해졌다가, 요즈음은 성겨진 것일까요? 관념으로서의 세계시민과 체험으로서의 동료의식 사이의 '우리'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어디선가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과 어느 사고에든 '우리'가 아닌, 그래도 또 '우리'인 희생자들도 있다는 것을,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먼저다'는 원칙과 함께, 항상 상기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 (추가) 그리고 혹시 희생자 분들 중에 한국 국적자가 아닌 분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의 유가족에게도 예를 갖춰 소식을 전하는 과정이-항공사든, 한국 외교부나 법무부든-을 통해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이미 있는데 제가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슬로우뉴스(slownews)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글쓴이 최경호씨는 책 <어쩌면 사회주택>의 저자입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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