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둔덕' 논란에 말바꾸기 급급한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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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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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지적 나올 때마다 오락가락 답변... 전문가들 "기계 결함·무리한 운항 등 조사할 것 산적한데"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보잉사 관계자,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참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로컬라이저(방위각시설)가 있는 둔덕 위에 올라 사고 기체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무안공항 활주로 인근 '콘크리트 둔덕'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이틀째 기본적인 위법성 여부도 밝히지 않은 채 말을 바꿔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콘크리트 둔덕 설치가 법 위반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규정을 확인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홍락 국토부 공항정책관은 '국토부 규정에 반하지 않나', '국토부 고시에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설치돼야 한다고 돼있지 않나'라는 질문에 "관련 규정간 관계를 확인하고 답변하겠다", "확정되는 대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는 무안공항 내 콘크리트 둔덕이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했던 국토부가 불과 하루 사이 말을 바꾼 것이다.

앞서 국토부는 전날 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져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되었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공항시설법상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나, 이는 착륙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등의 '내'에 위치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라며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져와 같이 종단안전구역 '외'에 설치되는 장비나 장애물에 대해서는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즉각 반박이 나왔다. 국토부가 고시한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를 보면, 정밀접근활주로의 경우 방위각제공시설(로컬라이져)이 설치되는 지점까지가 '종단안전구역'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무안공항 활주로는 정밀접근활주로로 지어져, 로컬라이져가 세워진 콘크리트 둔덕 역시 '부러지기 쉬운 재질'의 규제가 적용되는 구역 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로컬라이져(방위각 시설)란, 비행기가 활주로에 똑바로 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안테나다. 그런데 다른 대다수 공항과 달리, 이번에 참사가 벌어진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져는 가로 40미터, 높이 2미터, 두께 4미터의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설치돼있었다.

참사 당시 랜딩기어(착륙 바퀴)를 내리지 못한 채 무안공항 활주로에 비상착륙한 제주항공 여객기는 이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면서 179명이 숨졌다. 참사 이튿날인 30일 주로 해외 전문가들로부터 이 콘크리트 둔덕의 위치와 재질이 이번 참사를 키운 요인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토부는 전날에도 이미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국토부는 30일 오전 브리핑에서는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정해진 규격은 없다"고 했다가, 같은 날 오후 브리핑 땐 "근거 규정과 해외 규정을 파악 중"이라고 말을 바꿨다. 또 30일 밤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는 자료를 냈다가, 또 다시 31일 브리핑에서 "관계 규정을 확인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날 이에 대한 취재진 질문이 이어지자 김홍락 정책관은 "영어로 하면 (규제를 받는 구역의 범위가) '인클루딩'(including)이냐 '업투'(upto)냐는 것인데, 확인해서 답변하겠다"고도 했다.

조사할 문제 산적한데 '업투'냐, 인클루딩'이냐 따지는 국토부

 국토교통부 김홍락 공항정책관(오른쪽)이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무안 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주종완 항공정책실장.
ⓒ 연합뉴스

당장 국토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규정을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문교 전 하이난항공 기장은 YTN에 출연해 '국토부는 콘크리트 시설이 종단안전구역 '내'에 설치된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책임 범위를 희석화시키기 위한 내용도 들어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기장은 "공항 활주로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동체착륙 등 비상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비행기보다 더 강력한 시설물 같은 게 있을 경우 이번과 같은 커다란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라며 "공항 내 활주로 주변 설치물들은 만약 항공기가 부딪힌다 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재질 또는 구조로 돼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강조했다.

참사 이후 무안공항 외에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 등 국내 다른 공항에도 활주로 인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국토부가 책임 소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토부가 밝힌 대로 국내 다른 공항 활주로 주변에도 콘크리트 둔덕이 있었다면, 승객 안전을 위해 즉시 없애고 다른 소재로 바꾸는 게 상식"이라며 "이렇게 큰 참사를 겪고도 국토부가 그저 '시정 조치를 하면 우리 책임을 시인하는 게 된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규정 논란과 별개로, 콘크리트 둔덕이 공항 안전을 해친다면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 질문에 "위험하다는 전제 하에 말씀하시는데, 사고 조사 결과를 봐야 될 것 같다"라며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면서 여러 가지 향후 진행 상황을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 관제사와 조종사간 교신 내용, 제주항공의 무리한 운항 스케줄로 대변되는 저비용 경영이 사고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지 등 참사 원인과 관련해 조사할 부분이 산적한데 국토부가 참사 초기 규정 해석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영근 전 항공대 항공우주기계공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는 여러 복합적인 실패가 겹쳐졌을 때 발생한다"라며 "제주항공을 비롯한 LCC(Low Cost Carrier, 저가항공)가 안전에 비용을 투자하기 힘들다는 근본적 한계를 노출한 점은 없는지, 애초에 왜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아직 기초적인 조사조차 안 됐는데, 콘크리트 둔덕 관련 규정 논란이 길어지는 것은 답답하다"고 했다.

장 전 교수는 "사고 후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생존자 2명과 관제사 2명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보잉사 관계자,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참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로컬라이저(방위각시설)가 있는 둔덕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국토부에 따르면, 기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에 더해 미국 합동조사 인원 8명도 이날부터 사고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소속 1명,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소속 3명,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 소속 4명으로, 첫날부터 콘크리트 둔덕 쪽을 둘러봤다고 한다.

국토부는 참사 당일 수거한 블랙박스 중 음성기록장치(CVR) 분석에는 돌입했지만, 일부 부품이 소실된 비행기록장치(FDR)에 대한 분석은 시작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참사 직전 조종사와 교신한 관제사 2명에 대한 면담도 진행했다고 했는데, 그 내용까지는 현재 밝힐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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