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스무아흐렛날/ 면사무소 호적계에 들러서/ 꾀죄죄 때가 묻은 호적을 살펴보면/ 일곱 살 때 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의 붉은 줄이 있지/ 돌 안에 백일해로 죽은 두 형들의 붉은 줄이 있지….’ 구재기 시인의 ‘으름넝쿨꽃’이라는 시. 곁에 머물다 사라진 사람들은 호적에서 붉은 줄로 그어지는데, 형들은 갓난쟁이 때 돌도 못 넘기고 죽은 모양이다. 시인은 호적의 붉은 줄이 일찍 죽은 가족들의 ‘혼을 모아 쭉쭉 뻗어나가는’ 으름넝쿨꽃을 닮았다고 읊조린다. 그 마음이 애잔하지만 꽃은 그렇게 붉은 상처의 위로가 된다.
저기 나오는 백일해는 그 옛날 천연두니 결핵이니 홍역이니 하는 질병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백일 동안 지속되는 기침’(百日咳)이라는 이름대로, 이 병에 걸리면 10주 이상 끔찍한 기침과 함께 온갖 병증에 시달렸다.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전염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어서 전염성이 매우 강했다. 한국에서는 1960~70년대 초등생 누구나 한번은 걸리는 병으로 여겨졌다. 백신이 없던 그 시절, 아이(특히 영유아)를 잃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저런 전염병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인간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길러 고기를 쉽게 얻는 대가로 치명적인 감염병을 얻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백일해는 돼지와 개에서 왔다. 그 밖의 각종 전염병도 동물의 몸에 살던 세균과 바이러스들이 돌연변이를 거쳐 사람에게 건너와 병을 일으킨 것. 인간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비하면 이 지구상에 한참 늦게 출현한 존재다. 그러니 이들 입장에서는 인간이 곧 불청객이다. 세균과 바이러스의 변화 속도를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거기 맞서기보다는 똑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 잘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발작성 기침을 동반한 백일해가 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근래 들어 전 세계적 확산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 심상치 않다. 국내에서도 지난 4월부터 환자가 증가하면서 6, 7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뉴스다. 올 들어 이달 6일까지 7000명 가까운 환자가 발생해 지난해보다 24배나 늘어난 상황. 코로나 사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지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감염병 재발은 인류에게 던져진 숙제를 성찰할 기회이기도 하다. 치료와 퇴치가 중요하지만 공존의 지혜를 찾는 일도 소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