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아이가 장애인이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아도, 장애 등록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장애 등록은 단순히 하나의 절차를 넘어서 지원과 돌봄, 보험 문제 등이 엮여 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만 2세 이상부터 장애인 등록이 가능하며, 등록돼야 의료비를 지원받는다. 그런데 장애 판정 시기의 제한으로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부모들의 장애 등록을 미루고자 하는 경향으로 발달장애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도 많다. 장애 등록, 꼭 해야 하는 걸까. 해야 한다면 언제가 좋을까.
장애 등록을 망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내 아이를 장애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김모(36·경기 수원시)씨는 “부모의 심정으로는 장애 등록을 하는 순간 내 아이에게 장애인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다. 최모(39·서울)씨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발달장애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들었는데, 장애 등록을 해버리면 혹시나 나중에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나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이유다. 결국 ‘돈’이 가장 큰 문제다. 발달장애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장애다. 반복적인 관찰과 검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 달에 수백만 원에 달하는 치료 비용이 든다. 물론 장애 등록을 하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건강보험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소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발달장애(F)코드 진단을 받은 경우 사보험 회사에 비급여 항목 실비 청구가 어렵다. 보험사에서는 큰 금액의 치료비가 지속해서 나오다 보니 지급을 거절하는 것. 가능하면 치료 횟수를 늘리고 싶은 부모들은 아무래도 실비의 규모가 더 크다 보니, 결국 발달장애(F)코드 진단과 등록을 망설이게 된다는 입장이다. 이전부터 의료계에서 하루빨리 발달장애 환아 관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시행해 이들의 성장과 건강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장애 등록을 했을 때 실질적인 지원은 뭘까. 발달장애의 경우, 지적·자폐성 장애로 진단 받아 주소지 관할 읍면동사무소에 진단서를 제출하면 국민연금공단의 심사를 거쳐 장애인 등록이 완료된다. 장애인 복지카드를 발급받아 다양한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의료비 지원 ▲재활 치료(물리치료, 언어치료 등) 지원 ▲주차비 할인 ▲각종 교통비 혜택 ▲세금 감면 ▲발달재활바우처 ▲공공시설 입장료 할인 ▲각 자치단체의 프로그램 등이다. 규모는 장애 정도와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지며, 해당 기관에 따로 신청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만약 전문의료기관에서 아이가 또래보다 많이 늦어 적극적인 중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 경우라면, 장애 등록을 미루는 게 답이 아닐 수 있다. 차라리 하루빨리 등록을 해 치료에 필요한 혜택과 생활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부모들도 많다. 장애 등록은 낙인이 아닌, 오히려 아이를 보호하는 장치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안모(40·인천)씨는 “자폐 진단 후 잘한 것 중 하나가 장애 등록을 빨리 신청한 것”이라며 “안도감은 물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특수교육의 경우는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다. 장애인과 특수교육대상자(이하 특교자)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 노바프렌즈 최정길 대표(교육학 박사)는 “특교자 선정은 교육적으로 도움이 필요한지가 핵심 관건이다”며 “장애 등록을 안해도 교육청에 신청해 절차에 따라 선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장애 등록을 한 발달장애아는 특교자 선정에 더 유리할 순 있다. 특교자는 교육청 바우처, 방과후 대체 교육비 지원 등 혜택이 있다. 따라서 장애 등록에 부담이 있거나, 지능이 좋은 자폐아, 경계선에 있는 아이는 특교자만 신청하기도 한다. 백석대 특수교육과 김주혜 교수는 “지적장애 등 정도가 심한 발달장애라면 특교자 신청을 권한다”며 “통합 교육이 힘들 수 있고, 교육 치료 서비스도 과거보다 개선돼 훨씬 유익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에 아이를 더 잘 이해하고, 중재해줄 수 있는 특수교사가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어 “아이가 경계선에 있어 고민 된다면, 특교자 신청은 언제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입학 후라도 전문가와 상담해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빠른 치료… 전문가와 상담해 결정을
장애 등록을 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부모의 선택이다. 각자의 상황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다만, 답답한 마음에 온라인상의 무분별한 정보나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기보다는 전문가와 상담하길 바란다. 가천대길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어떻게 해야 아이가 앞으로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아이를 최적으로 도와줄 방법에 대해 전문가와 의논해야 한다”며 “부모가 중심을 잡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길 대표 역시 “나의 걱정이나 욕심으로 아이를 판단하지 말라”며 “앞으로 정상 발달 범위에 들어갈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한다면, 장애 등록을 하지 않고서도 발달을 지원해주는 바우처 등이 있기 때문에 전문의 소견에 따라 적절한 중재와 지원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애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빠른 치료다. 발달장애의 결정적 골든 타임은 만 1~2세로 보고되지만, 국내에선 3~4세에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지수혁 교수는 “영유아 발달검사나 임상적 소견으로 장애가 확실히 예견되면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며 “초기에 적절한 언어, 맞춤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 예후가 굉장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배승민 교수는 “아이들의 뇌 발달은 정해진 시기가 있어 늦으면 어떤 치료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며 “발달 초기에 치료하면 아이가 나아갈 방향을 더 손쉽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발달장애아 부모는 이러한 고민과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리적으로 피폐하고,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 배승민 교수는 “발달장애아 육아의 긴 여정에서는 부모의 정신·마음 건강이 아이 케어보다도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며 “스스로 최적의 건강 상태를 먼저 만든 후에 가족을 보살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