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 권고 미이행 항소 부분은 기각
피해자 "정부, 40년 전 논조 못 벗어나"
전두환 정권 때 이른바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강요당해 1심에서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받은 피해자들이 정부의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민사8-1부(부장 김태호)는 고 이종명 목사 유족과 박만규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29일 "원고들에게 각각 9,000만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구체적인 판결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 목사 등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ROTC) 후보생이었던 1983년 9월 육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고문과 구타를 당한 뒤 동료들의 동향을 감시·보고하는 프락치로 활동했다. 전두환 정권은 '녹화(綠化)사업' 명목으로 학생운동 가담자 등을 강제징집한 후 이들을 비밀정보원 삼아 군과 학교의 움직임을 감시하게 했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5월 조사에 착수해 그해 11월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명단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 발표를 근거로 피해자들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진실화해위 조사만으로 책임 입증이 어렵고,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국가는 이미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하면서 역사적 진실 규명과 피해 회복을 선언했고, 이는 국가배상의 방법도 수용하겠다는 취지였다"며 "이제 와 새삼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피해자분들께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항소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1심 선고 후 세상을 떠난 이 목사 유족과 박 목사는 진실화해위가 권고한 국가 사과, 인권침해 재발 방지, 피해 사실 조사기구 설치 등을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다며 항소했다.
박 목사는 이날 선고 직후 취재진에게 "정부는 진실화해위 결정 권고에 대해 아무것도 이행하지 않았고, 소송과정에서도 진실화해위 결정만으로는 입증이 부족하고 원고들의 권리가 소멸됐다는 주장을 계속해 소송 내내 괴로웠다"면서 "정부 태도는 여전히 40년 전 논조에서 벗어나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