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중국 이어 글로벌 시장 위기
R&D 투자 늘리고 혁신 보여줘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두 번이나 접히는데 이렇게 얇다니, 감격스럽다.”
지난 10일 화웨이의 세계 최초 3단 폴더블폰 ‘메이트XT’를 본 중국인이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다. 실제로 신제품은 화면을 모두 펼치면 10.2인치로 태블릿PC 크기인데 두께는 3.6㎜, 무게는 306g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갤럭시Z 폴드6’의 화면은 7.6인치, 두께는 5.6㎜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폴더블폰을 내놓은 원조 삼성보다 더 크고 더 얇은 폴더블폰을 더 빨리 내놓은 것이다.
가격도 1만9,999~2만3,999위안(약 380만~450만 원)에 달하는데 사전 판매 예약은 접수 6시간 만에 100만 대, 12일엔 500만 대도 돌파했다. 인공지능(AI) 기능과 카메라 버튼을 장착한 애플의 ‘아이폰16’ 공개에 일부러 맞춰 출시일을 정한 것도 주목된다. 이젠 삼성이 아닌 애플과 맞짱을 뜨겠다는 각오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에선 삼성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3명 중 1명은 삼성폰을 들고 있었다. 시장점유율 20%에 육박하는 1위였다. 애플과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레노버, ZTE 등 현지 업체도 넘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은 보이지도 않는다. 점유율이 1% 밑으로 추락하며 10위 밖으로 밀린 게 5년 전이다. 이후 판매량은 워낙 적어, 통계에서 확인도 안 된다.
애국 소비 열풍이 강한 중국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삼성폰이 몰락한 이유는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삼성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를 애플에 내줬다. 올해 들어 정상을 탈환하긴 했지만 문제는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다. 2분기 점유율을 보면 삼성(19%)이 1위지만 2위 애플(16%)의 뒤를 3위 중국 기업 샤오미(15%)가 바짝 추격했다. 4위와 5위도 중국 기업인 오포(9%)와 비보(9%)다. 국가 기준으로 보면 이미 중국은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화웨이까지 합치면 격차는 더 커진다.
잘나가던 기업이 위기를 맞는 건 무엇보다 위기감이 사라지는 데서 비롯된다.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긴장감을 갖고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는데도 1위가 된 다음엔 나사가 풀리고 강박증을 잃어 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외계인을 납치해 칩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듣던 ‘반도체 제국’ 인텔도 2분기 2조 원이 넘는 적자로, 56년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아이폰 칩 공급 제안을 거절하고, 단기 재무제표상 성과만 좇다가 연구개발(R&D) 인력을 줄인 게 패착으로 분석된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팔던 폭스바겐 그룹이 창사 87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공장까지 폐쇄할 정도로 어려워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연기관 차량의 기술력에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전기차 시대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삼성전자가 전 세계 자회사에 감원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효율성 향상을 위한 일상적인 인력 조정이란 설명이 나왔지만 그만큼 위기란 얘기다. 이재용 회장이 2030년까지 1등을 공언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마저 1위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판국이다. 인력 조정으로 겉으로 보이는 숫자만 맞추는 과정에서 다시 핵심 R&D가 위축되는 건 아닌지도 우려된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늘 위기를 강조했다.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도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일갈했다. 살벌한 기업 현장에선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정신병자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집착하는 강박증을 가져야만 겨우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항상 깨어 있고 계속 변해야 산다. 졸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