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실화해위원장에 임명된 박선영 제부이기도
법조계 "헌재, 내란죄 수사 상황 고려할 수 밖에 없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주심을 맡게 된 정형식 재판관은 현재 6인의 헌법재판소(헌재)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윤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다. 판사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취임했으며, 보수 성향이 강한 재판관으로 알려졌다. 최근 진실화해위원장에 임명된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의 제부이기도 하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이 사건의 주심을 전산 추첨 방식으로 정했는데, 추첨 결과 정 재판관으로 뽑혔다. 6인의 헌법 재판관 중에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현재 다른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는 재판관 1명을 제외하고, 4인의 재판관을 상대로 전산 추첨을 했다.
"왜 주심 공개 안하냐"…기자들 질문에 헌재 '난색'
헌재가 16일 오후까지 주심을 공개하지 않자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지명한 정 재판관이 주심을 맡게 되면 '윤 대통령에게 유리해지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이날 헌재 브리핑에선 '왜 주심을 공개하지 않느냐'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주심이 누군지 공개하지 않았냐'는 기자들 질문이 빗발쳤다.
주심은 판결문에 해당하는 탄핵심판 결정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탄핵심판 공개 변론 과정에서 증인에게 직접 질문을 하기도 하는 등 탄핵 심판의 흐름을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문 권한 대행은 "변론 기일은 재판장의 주재 하에 헌법재판관 전원이 참여해 진행되기에 주심 재판관이 누구인지가 재판 속도나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사건에서 정 재판관의 역할은 사실상 문서 송부, 사실조회 신청 등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주무' 재판관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취지다.
주심 재판관, 사건 실체 드러내는 데 핵심 역할하기도
과거 대통령들에 대한 탄핵심판을 담당했던 주심 재판관들은 어땠을까. 노 전 대통령은 헌정사 최초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탄핵심판을 받았는데, 주심은 주선회 재판관이었다. 당시 선고는 7인 이상이 출석했으나, 6인 이상이 인용하지 않았기에 '기각' 결정이 났다. 노 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파면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는 취지에서다.
2004년 당시 재판부는 소수 의견 공개 여부를 놓고 선고 전날까지 논의를 한 끝에 비공개를 결정했다. 주 재판관은 선고 뒤 '찬반 숫자를 알려달라'는 질문엔 "죽을 때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재판관들끼리 약속했다"며 "그것을 밝히면 법 위반으로 탄핵될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 최초로 탄핵소추안이 인용돼 파면을 받았는데, 주심은 강일원 재판관이었다. 강 재판관은 여야 합의로 임명된 만큼, 정치적 중립성을 띄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또 조곤조곤하지만 날카로운 질문과 의견제시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선고는 8인이 출석해 전원 인용 의견을 내 '파면'으로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가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 심리와 결정문 작성은 강 재판관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국민에게 올리는 보고서인 만큼, 누구나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 재판관 의중이 크게 반영됐다고 알려졌다.
주심 지정, 무작위 배당했지만…결과에 따라 논란 가능성 有
헌재는 문 대행이 주재한 재판관 회의를 통해 변론준비절차 회부와 수사 기록 송부 요청 등을 결정했는데, 이 같은 재판관 회의를 향후 매주 2회씩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후 최종적으로 사건의 결론을 내기 위한 평의에서는 재판관들이 우열 없이 각자 의견을 제시하며 경우에 따라 반대·보충 의견을 결정문에 적는다.
이번 주심 지정이 원칙에 따른 무작위 배당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만약 헌재가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면 재판의 공정성이나 결론의 타당성과 무관하게 진보 진영으로부터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대로 탄핵 소추를 인용할 경우 윤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데다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정 재판관이 주심을 맡아 내린 결론인 점에서 보수 진영도 승복하고 수긍할 것이기에 사후 논란을 진화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형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형사 사건의 쟁점은 없었다. 반면 윤 대통령은 내란죄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헌재에서 탄핵 심판에만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언론에서도 내란죄 관련자들의 진술을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만큼 완전히 이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