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콘텐츠 매력 등이 주요 요인으로 풀이
유니폼·굿즈 구입에 먹거리까지 지갑 열어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했고, 지난 2023년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감명 깊게 봤지만 한 번도 농구 경기 '직관'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농구를 택한 이유는 오로지 '슬램덩크' 때문이었다.
2023년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에 따르면 신규 유입고객은 프로스포츠 팬 전체 중 21.5%로 나타났고, 리그별 신규 유입고객 비중은 남자 프로농구에서 31.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어쩌면 '농구' 관련 콘텐츠 때문에 새로운 팬들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이날 경기는 양팀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집중할 수밖에 없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매력적인 농구 경기에 숨이 막혔다. 단순한 듯하지만 어려운 규칙을 완벽히 알지는 못하지만, 농구 경기 직관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원주DB의 알바노 선수에게 빠졌다. 속도와 기술로 경기의 흐름을 가져올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게다가 그는 내가 좋아하는 슬램덩크 속 주인공 송태섭과 같은 '포인트 가드'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경기를 응원하는 것도 재밌었고 직관 특유의 분위기도 좋았다. 중간중간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도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경기 전후로 경기장 밖 유니폼과 인생네컷 부스를 구경하기도 했다.
이날 경기는 치열한 접전 끝에 역전을 당하면서 원주가 패했다. 아쉬웠지만 다음 경기를 기약하기로 했다. 처음 본 농구경기는 짜릿했다.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 꼭 원주 홈경기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왜 MZ들이 입을 모아 프로스포츠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국프로야구가 역대 최초로 올해 '1000만 명 관중 시대'를 열었다. 한 해 누적 관객 수가 1000만 명이 넘은 것은 프로야구가 1982년 6개 구단으로 출범한 지 43년 만에 처음이다.
전통적으로 스포츠 직관은 나이 든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했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스포츠 경기장을 찾는 MZ세대인 20~30대 팬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특히 각종 트랜드에 민감한 MZ 여성 팬들이 두드러지게 늘어난 것이 화제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7월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KBO 올스타전 예매에 대한 성별 및 나이별 성향을 조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이 39.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30대 여성 또한 19.1%로 2030 여성 비율이 무려 전체의 58.7%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올스타전에서 20대 여성 35.4%, 30대 여성 13%로 2030 여성이 48.4%였던 수치와 비교해 약 10%p나 증가한 수준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프로야구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난 5월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발표한 '2023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6개 프로스포츠를 관람하는 관람객 연령대를 조사해 봤을 때, 모든 스포츠에서 20·30대 관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배구와 K리그팬인 박민서(26) 씨는 "여자배구는 런던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4강이라는 결과를 얻은 도쿄대회를 보고 난 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특히 김연경 선수의 엄청난 실력과 인성이 배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프로축구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시안컵을 보고 난 후부터다. 손흥민 선수의 실력을 알게 되고 손 선수가 뛰는 프리미어리그를 챙겨보고 축구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며 "이후 K리그도 보기 시작했고, 실제 경기장에서 관람을 하게 되고 이로써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팬 이정민(27) 씨는 "부모님이 롯데 팬이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경기를 보니 팀에 대한 연고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팀이 좋은 분위기일 때의 쾌감을 느끼며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 야구를 주제로 한 글·이미지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야구 인기를 실감한다"라고 덧붙였다.
엘지트윈스 팬 우승연(25) 씨 역시 가족 덕분에 야구를 접한 뒤 "코로나 시기에 관객이 없는 경기장에서도 열심히 하는 선수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다"라며 야구에 빠진 계기를 전했다.
프로스포츠가 MZ세대의 '취향'을 정조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스포츠 팬들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어봤다.
이정민 씨는 "푯값이 상당히 싸다. 좌석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영화표보다 저렴하다"며 "남녀 구분 없이 야구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친구나 연인, 동아리 인원과 같이 갈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기아 타이거즈 팬 장영서(25)씨는 "경기 당 약 2만 원 정도만 쓰면 경기를 보러 갈 수 있고, 콘서트처럼 시즌에 하는 게 아니라 주6회 경기를 진행하다 보니 쉽게 접할 수 있다"며 "10개 구단이 있으니깐 그만큼 다양한 팬을 접할 수 있고, 야구라는 이유 하나로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구장 안은 제한 사항이 많이 없어서 쉽게 놀러 가기 좋다"며 "게다가 야구장 매장에서 파는 음식도 한몫하는 거 같다. 너무 맛있다"라고 덧붙였다.
우승연 씨는 "야구장의 큰 매력은 응원하는 팀이 달라도 현장에서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하는 것"이라며 "코로나 엔데믹 이후 관중을 받으면서 새로운 응원가, 신나는 응원가가 늘어나고, 스케치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많아지면서 MZ들에게 인기를 끈 듯하다"고 답했다.
■ 원정응원으로 지역 여행까지 즐긴다
특히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발표한 '2023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에 관심 있는 고관여 팬의 절반가량이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관여 팬이란 ''관심 있는 리그 내 지난 시즌 우승팀'과 '응원구단의 선수'를 모두 알고 있으며 유니폼을 보유하고 있는 응답자다. 프로스포츠 팬 전체에서 고관여팬이 58.4%로 나타난 가운데, 20대(25.3%)와 30대(25.8%)를 합치면 전체 고관여팬의 절반 이상에 이른다.
우승연 씨는 "MZ를 위한 마케팅도 늘어나고 구장에서도 젊은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한다"며 "예시로 인생네컷, 10~30대에 인기 많은 캐릭터와 콜라보, 다양한 굿즈, 캠핑존 등 야구장에서 단지 야구만 보는 것이 아닌 다른 재밌는 활동도 하게 되면서 인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답했다.
아울러 우씨는 "현장에서 응원하면서 야구를 보고 싶어 직관하러 간다"며 "종종 가서 유니폼을 구매하고 좋아하는 선수마킹도 하고 야구장에서만 뽑을 수 있는 야구 선수 포토카드를 뽑았다"고 전했다.
장영서 씨는 "이미 유니폼 2개와 야구 재킷 1개가 있다"며 "또 다른 유니폼 하나는 주문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직관을 가기도 하는 장씨는 "(자신은) 굿즈를 많이 사지 않고 절제하는 편"이라며 "인형이나 키링 이런 굿즈는 안 사고 응원봉만 3개 샀다"고 전했다.
이들은 직관 시에는 야구장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꼭 먹으며, 때로는 근처의 식당에서 식도락을 즐기곤 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원정을 갈 때는 해당 지역에서 숙소를 예약하고 경기가 안 열리는 때에는 지역의 맛집과 관광지를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