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가 창건한 금오산 천년고찰
동쪽 바다 향해 일출 감상하기 최적
좁은 석문 지나 가파른 계단 오르면
수평선 밑 아름다운 낙조도 한눈에
남해의 끝자락,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향일암은 원래 일출 명소로 더 유명하다.
이곳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때 ‘원통암(圓通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됐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윤필대사가 ‘금오암(金鼇庵)’으로 개칭했다. 조선시대 숙종 때 인묵대사가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 그때부터 ‘향일암(向日庵)’으로 부르게 됐다.
대부분 올라갈 때는 계단을, 내려올 때는 언덕길을 이용한다고 한다. 공영 주차장에서 향일암까지 멀진 않지만 경사가 가팔라 가는 데 힘에 부칠 수 있다. 해를 보기 위한 수양이라고 마음먹으면 버틸 만은 하다.
등산객의 잔소리를 벗삼아 15분 정도 긴 계단을 오르면 등용문 밑에 여의주가 등장한다. 소원을 이뤄주는 돌이라고 해 사람들의 손때로 표면이 번들거린다. 여의주를 지나면 금방 향일암이 나온다. 깎아내릴 듯한 절벽에 오롯이 서 있는 사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 고요한 자태를 뽐낸다. 향일암은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로도 유명하며, 유독 자라 조각이 많다. 일출 보는 방향으로 자라상이 줄지어 푸른 여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향일암 관리인은 “이 계단을 오르면 ‘오죽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와 ‘오죽계단’이라는 별명이 있다”며 “하지만 이를 참고 오르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일몰이 기다린다”고 설명했다.
일몰을 보러 계단을 오르니 그 이름처럼 ‘죽겠다’는 말이 수시로 나온다. 가쁜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벅차 주변 풍경은 둘러볼 여유도 없다. 날이 추운데도 금세 몸은 열기로 후끈해진다. 지치고 지칠 때쯤 드디어 바위 꼭대기가 등장한다. 오후 5시11분.
남해의 수많은 섬을 산처럼 끼고 저 멀리 해가 저물어간다. 남해의 끝에서 마주하는 일몰은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노을은 예전부터 많은 시인의 훌륭한 글감이었다. 기형도 시인은 노을을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이라 했고, 나태주 시인은 “하느님 나라에도 얼굴 붉힐 일”이 노을이랬다. 바다 끝으로 천천히 내려앉는 붉은 태양은 우리에게 건네는 수고의 한마디 같다. 즐거이, 또는 힘겹게 살아낸 올해가 저무는 해 속에 따스히 녹아내리고, 마침내 찬란한 여운으로 남는다. 향일암에선 일몰제와 일출제를 이달 31일∼2025년 1월1일 연다. 향일암에서 지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