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형숙 기자] 고건 전 총리가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고 전 총리는 작년 5월 총리직 사퇴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왔다. 더욱이 각종 대권 차지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면서 인터뷰 신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모든 일정을 내년으로 미뤄왔다.
하지만 10.26, 12.12 당시의 행적을 들어 '난세 때마다 사라지는 처세의 달인'이라는 언론의 지적은 그의 침묵을 깨게 했다.
고건 전 총리는 20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비상계엄확대조치 때 사표를 낸 사람을 가지고 말이야…"라며 버럭 언성을 높였다. '당신은 80년 5·18 때 어디 있었나?'라는 제목의 조선닷컴 기사를 겨냥한 일성이었다.
조선닷컴은 대권주자의 약점을 다룬 기획기사에서 "고 전 총리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3일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1주일간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국가위기 때마다 몸을 숨겼다는 비판이 쏟아진다"고 썼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199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후보 측에서 광고까지 내면서 제기한 '7대 불가사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작년 총리 인사청문회 때도 같은 지적이 나왔으니 고 전 총리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과정을 거쳤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는 "비상계엄확대조치는 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나는 군정에만큼은 동의할 수 없었다"며 "5·17 때 군정에 반대해 사표를 낸 공직자는 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5.17 비상계엄확대를 결정하는 비상국무회의에 배석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회의 참석은 곧 군정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내가 왜 거길 가야 하나"라고 거절한 뒤,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사표를 전했다고 말했다.
"날 찾지 말아달라며 사표... DJ 사면 요청했다가 오해 사"
그는 "5·18 관련 보도도 그랬지만 당시 상황이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직서 외에도 청와대 비서실에 짤막한 편지 한 통을 동봉했다. '이제 정무수석으로서 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사직하고자 한다, 사직 후에는 지병인 신장결석 치료차 입원하겠으니 날 찾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청와대에서 사람을 보내 사퇴 의사 번의를 설득했지만 그는 사표를 제출하게 된 이유와 경위를 설명하고, 소신을 바꿀 수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사표 제출 이후 얼마 안 가 건설부 산하기관의 이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억측"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다시 일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를 거절하는 대신 차선으로 그는 "사표를 수리하고 저를 연구기관에 보내달라"고 제안했다는 것.
그렇게 맡게 된 직책이 국토개발연구원 고문이었다. 당시 고문직은 고 전 총리로 인해 만들어진 자리였고, 현재 퇴계로의 극동빌딩 22층에 작은 사무실이 마련되었다. 그는 "한쪽으로는 남산이, 다른 한쪽에는 수경사 연병장에 정렬해 있는 장갑차가 한 눈에 들어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대학로 그의 개인사무실(고 전 총리는 이곳을 '독서실'이라 칭했다)에 걸려 있는 편액 '남산재(南山齋)'는 그 때 선물받은 것이다.
이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주도로 국보위가 출범한 뒤 며칠동안 국보위원 명단에 '청와대 정무수석 고건'이라고 남아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사표 제출한 것을 모르고 있던 군부에서 내 이름을 당연직으로 포함시켰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DJ와 관련한 비화도 한 토막 소개했다. 정무수석직에 있으면서 그는 국정 자문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자문위원들을 직접 섭외하던 중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는데 김 추기경이 DJ 사면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경찰, 보안사 등 모두 윗선의 눈치를 보느라 DJ를 사면 명단에 넣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김 추기경의 주문을 받은 그는 DJ와 유근일, 두 사람의 사면을 건의했다는 것. 그는 이때의 일이 후일 "고건이 김대중에게 고급 정보를 흘려준다더라"는 소문으로 비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5.18 이후 전두환 군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건 소극적 처신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많다'고 지적하자 그는 "나는 재야가 아니다, 전문행정관료였다. 그리고 당시는 (군정에서) 헌정체제로 돌아온 시점이었다"라며 교통부장관직 등을 수락한 이유를 밝혔다.
"나는 재야가 아니라 전문 행정관료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3일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사실을 밝혔다"며 흥분했다.
그는 10월 26일 저녁 효자동에 있는 '유선'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비상연락을 받았다며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중앙정보부 차장도 나보다 뒤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총무처장관이 공석이었기 때문에 정무수석의 역할이 중요했다"며 "그 날부터 사흘밤을 꼬박 새면서 본관에서 빈소를 차리고, 분향소를 차리고, 영구차를 준비하는 등 국장(國葬)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김종필 당시 공화당 부총재가 직접 그린 영구차 디자인을 현대자동차 측에 연락해 개조·제작했던 일,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북어조림을 제삿상 상식으로 올려놓은 일화 등이었다.
그는 자신이 "박근혜씨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본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3일간 장례준비를 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와전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장례는 육씨네 집안(고 육영수 일가)과 JP측에서 주도했다"며 "큰 영애(박근혜)는 젊은 상주라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지시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인터뷰는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되겠다"며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그는 "첫째 10·26" "둘째 5·17"이라고 사건을 하나하나 꼽으며 작심한 듯 한 시간여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현안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올 연말까지는 정국을 관망하겠다는 자세다. 7명의 대통령을 '모신' 차기 유력한 예비주자면서도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역사가 평가할 일"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 때 인연을 소개하며 "원칙을 지키는 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1998년 서울시장 경선에 한광옥, 노무현씨가 나선 상황인데 DJ가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곤란한 상태였다. 그런데 노무현씨가 나에게 도와주겠다며 화끈하게 포기했다. 그 뒤 노무현씨는 이명박 의원의 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종로 재선거에 나갔고, 그 때 유세에서 노 후보는 '이번에는 종로에서 나가지만 다음에는 제 고향에서 출마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더라. 다음 번 선거에서 낙선이 뻔한 부산에서 출마하는 걸 보면서 원칙을 지키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탄핵 기간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있으면서 겪은 마음 고생도 털어놓았다. 대통령 탄핵 기간, 무리 없이 국정을 추진하는 고 권한대행을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고건 대망론'이 그것. 그래서 대행직을 끝내고 총리도 그만 둔 뒤 미국 하버드대 유학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를 "일찌감치 언론에 흘렸다"고 말했다.
끝으로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을 주장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신중식 의원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였다. 그는 "사실 부담스럽다"며 "(고건 정계개편론은) 그 분의 정치적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박형숙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고 전 총리는 작년 5월 총리직 사퇴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왔다. 더욱이 각종 대권 차지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면서 인터뷰 신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모든 일정을 내년으로 미뤄왔다.
하지만 10.26, 12.12 당시의 행적을 들어 '난세 때마다 사라지는 처세의 달인'이라는 언론의 지적은 그의 침묵을 깨게 했다.
고건 전 총리는 20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비상계엄확대조치 때 사표를 낸 사람을 가지고 말이야…"라며 버럭 언성을 높였다. '당신은 80년 5·18 때 어디 있었나?'라는 제목의 조선닷컴 기사를 겨냥한 일성이었다.
조선닷컴은 대권주자의 약점을 다룬 기획기사에서 "고 전 총리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3일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1주일간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국가위기 때마다 몸을 숨겼다는 비판이 쏟아진다"고 썼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199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후보 측에서 광고까지 내면서 제기한 '7대 불가사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작년 총리 인사청문회 때도 같은 지적이 나왔으니 고 전 총리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과정을 거쳤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는 "비상계엄확대조치는 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나는 군정에만큼은 동의할 수 없었다"며 "5·17 때 군정에 반대해 사표를 낸 공직자는 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5.17 비상계엄확대를 결정하는 비상국무회의에 배석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회의 참석은 곧 군정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내가 왜 거길 가야 하나"라고 거절한 뒤,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사표를 전했다고 말했다.
"날 찾지 말아달라며 사표... DJ 사면 요청했다가 오해 사"
그는 "5·18 관련 보도도 그랬지만 당시 상황이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직서 외에도 청와대 비서실에 짤막한 편지 한 통을 동봉했다. '이제 정무수석으로서 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사직하고자 한다, 사직 후에는 지병인 신장결석 치료차 입원하겠으니 날 찾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청와대에서 사람을 보내 사퇴 의사 번의를 설득했지만 그는 사표를 제출하게 된 이유와 경위를 설명하고, 소신을 바꿀 수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사표 제출 이후 얼마 안 가 건설부 산하기관의 이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억측"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다시 일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를 거절하는 대신 차선으로 그는 "사표를 수리하고 저를 연구기관에 보내달라"고 제안했다는 것.
그렇게 맡게 된 직책이 국토개발연구원 고문이었다. 당시 고문직은 고 전 총리로 인해 만들어진 자리였고, 현재 퇴계로의 극동빌딩 22층에 작은 사무실이 마련되었다. 그는 "한쪽으로는 남산이, 다른 한쪽에는 수경사 연병장에 정렬해 있는 장갑차가 한 눈에 들어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대학로 그의 개인사무실(고 전 총리는 이곳을 '독서실'이라 칭했다)에 걸려 있는 편액 '남산재(南山齋)'는 그 때 선물받은 것이다.
이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주도로 국보위가 출범한 뒤 며칠동안 국보위원 명단에 '청와대 정무수석 고건'이라고 남아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사표 제출한 것을 모르고 있던 군부에서 내 이름을 당연직으로 포함시켰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DJ와 관련한 비화도 한 토막 소개했다. 정무수석직에 있으면서 그는 국정 자문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자문위원들을 직접 섭외하던 중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는데 김 추기경이 DJ 사면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경찰, 보안사 등 모두 윗선의 눈치를 보느라 DJ를 사면 명단에 넣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김 추기경의 주문을 받은 그는 DJ와 유근일, 두 사람의 사면을 건의했다는 것. 그는 이때의 일이 후일 "고건이 김대중에게 고급 정보를 흘려준다더라"는 소문으로 비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5.18 이후 전두환 군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건 소극적 처신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많다'고 지적하자 그는 "나는 재야가 아니다, 전문행정관료였다. 그리고 당시는 (군정에서) 헌정체제로 돌아온 시점이었다"라며 교통부장관직 등을 수락한 이유를 밝혔다.
"나는 재야가 아니라 전문 행정관료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3일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사실을 밝혔다"며 흥분했다.
그는 10월 26일 저녁 효자동에 있는 '유선'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비상연락을 받았다며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중앙정보부 차장도 나보다 뒤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총무처장관이 공석이었기 때문에 정무수석의 역할이 중요했다"며 "그 날부터 사흘밤을 꼬박 새면서 본관에서 빈소를 차리고, 분향소를 차리고, 영구차를 준비하는 등 국장(國葬)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김종필 당시 공화당 부총재가 직접 그린 영구차 디자인을 현대자동차 측에 연락해 개조·제작했던 일,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북어조림을 제삿상 상식으로 올려놓은 일화 등이었다.
그는 자신이 "박근혜씨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본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3일간 장례준비를 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와전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장례는 육씨네 집안(고 육영수 일가)과 JP측에서 주도했다"며 "큰 영애(박근혜)는 젊은 상주라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지시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인터뷰는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되겠다"며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그는 "첫째 10·26" "둘째 5·17"이라고 사건을 하나하나 꼽으며 작심한 듯 한 시간여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현안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올 연말까지는 정국을 관망하겠다는 자세다. 7명의 대통령을 '모신' 차기 유력한 예비주자면서도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역사가 평가할 일"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 때 인연을 소개하며 "원칙을 지키는 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1998년 서울시장 경선에 한광옥, 노무현씨가 나선 상황인데 DJ가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곤란한 상태였다. 그런데 노무현씨가 나에게 도와주겠다며 화끈하게 포기했다. 그 뒤 노무현씨는 이명박 의원의 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종로 재선거에 나갔고, 그 때 유세에서 노 후보는 '이번에는 종로에서 나가지만 다음에는 제 고향에서 출마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더라. 다음 번 선거에서 낙선이 뻔한 부산에서 출마하는 걸 보면서 원칙을 지키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탄핵 기간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있으면서 겪은 마음 고생도 털어놓았다. 대통령 탄핵 기간, 무리 없이 국정을 추진하는 고 권한대행을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고건 대망론'이 그것. 그래서 대행직을 끝내고 총리도 그만 둔 뒤 미국 하버드대 유학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를 "일찌감치 언론에 흘렸다"고 말했다.
끝으로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을 주장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신중식 의원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였다. 그는 "사실 부담스럽다"며 "(고건 정계개편론은) 그 분의 정치적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박형숙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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