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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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박 탄핵 결정문의 고언
“87년 제왕적 대통령 혁파만이
탄핵의 국가 손실 복구할 희망”
차기 주자들,‘새 공화국’ 약속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20년 1월 3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권력기관 개혁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84%의 박수를 온전히 자신과 진보 이념 지지로 착각한 문재인 정권은 곧바로 ‘승자 독식’의 저주에 빠져들었다. 탈원전을 시작으로 이념의 착시였던 소득주도성장, 징벌적 부동산 중과세, 북핵만 굳혀 준 유화 일변도의 대북 정책 등으로 치달았다. 이어진 국회 180석의 절대 과반, ‘정권의 시녀’란 비판이 끊이지 않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로 3권을 모두 장악한 제왕의 오만과 독주였다. 문재인 케어를 제외하곤(수가·재원 등 논란이 이어지지만) 기억나는 개혁 성과의 기억은 뭐가 있었나. 지금도 무죄 판결이 이어지는 적폐 수사와 묻지마 진보 독식 인사로 나라를 반으로 갈라친 포퓰리즘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문 정권의 불통·독선에 대한 모든 불만이 뭉쳐 정권을 넘겨받은 윤석열 대통령 역시 그 어리석음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빨리 큰 나무가 빨리 죽듯 인간·국민·민주주의 존중의 근본이 없던 8개월 속성 대통령은 결국 조기 괴사를 맞게 됐다. 한 해병이 숨졌는데 수사단장이 처벌을 받게 만든 대통령의 ‘격노’와 ‘일방 명령’은 지난주 그 수사단장의 무죄로 귀결됐다. 0.73% 신승에도 모든 걸 쟁취하려던 ‘제왕 놀이’는 결국 계엄령 선포라는 ‘정치적 자살’로 스스로를 이끌고 말았다.
대통령 체포와 저항, 거야의 릴레이 탄핵 등 극한 소모 속의 우리는 지금 다시 2017년과 마주 서야 한다. 난국 해결의 정답은 8년 전의 그 탄핵결정문 전문에 이렇게 담겨 있었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그로 인한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 최근 한국의 언론학 교수·학자 420명이 낸 시국선언문의 성찰과도 일치한다. “지금의 사태가 민주주의 제도의 붕괴가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할 시간임을 선언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고통이 있다. 그냥 한탄과 괴로움으로 끝나는 것과 이를 이겨내면 더 나아질 미래 희망이 있는 것. 헌재는 박근혜 탄핵 결정문에서 그러니 파면의 국가적 손실을 압도하려면 이렇게 미래의 희망을 함께 준비하라고 국민과 정치권에 제언했었다. 아뿔싸, 그때는 지나쳐버리고 말았지만….
2023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우선 87체제의 혁파였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지위를 부여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권자 국민으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집권화였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전문적이고 복잡다기한 현대 국가의 방대한 정책 과제를 대통령 개인의 역량에만 맡기는 건 비효율.” “그러니 각종 폐습과 이전투구 정쟁을 부른 제왕적 대통령제는 협치와 투명·공정한 권력 행사가 가능한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할 개혁이 필수다.”
결정문은 특히 “헌법의 이런 제왕적 권력구조가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문제와 결합해” 결국 탄핵을 초래했다고 적시했다. 역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예측이 힘든 한 개인의 자질에만 기대선 안 되니, 제왕적 권력구조 폐지가 탄핵 너머의 갈 길이라 결론지었다.
당시 헌재는 구체적 선택지들도 제시해 주었다. ▶이원집정부제(대통령은 외교안보, 총리가 내치), 의원 내각제 또는 책임총리제 등의 실질화 ▶투명하게 선정된 비례대표제의 확대로 비례성 강화 ▶국민소환제 도입으로 국회·단체장의 폭주 견제 ▶장관과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국세청장 등의 국회 과반 동의제 도입 ▶비대한 청와대 축소 ▶대통령 사면권의 제한 ▶국민통합 위한 상원 등 국회 양원제 ▶지방으로의 과감한 권한 이양 등이었다. 최근에는 대통령 결선투표제로 대통령의 ‘투표자 과반’ 정당성을 요구하자는 의견도 활발하다. 1차~2차 결선투표를 거치며 정책 중심의 다양한 연대를 시도하는 연정(聯政)의 문화도 쌓아보자는 취지다.
좋은 역사가 반복되면 흥하고, 나쁜 역사가 거듭되면 망하기 마련인 게 국가다. 우리는 8년 만의 두 차례 대통령 탄핵이란 최악의 역사를 맞을 처지다. 반도체 ‘초격차’로 앞서 가던 나라가 심각한 ‘국가 격차’의 나락으로 추락할 위기다. 1인이 다스리는 나라는 더 이상 공화국(共和國)이 아니다. 이 고통 속에서 패배주의를 버리고 이뤄낼 목표는 단 하나. 제왕 대통령 아닌 국민이 주인인 새 민주공화국이다. 차기 대선주자들 모두 탄핵을 뛰어넘는 이 시대정신에 승복하라. 대통령 체포 막겠다며 관저에 원형 철조망까지 등장할지 8년 전에 우린 왜 몰랐을까.
최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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