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은 완치율이 90%에 이르는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다. 다만, 암세포의 성장 속도가 느린 경우가 많아 10년 후에도 재발 또는 전이되기도 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올리비아 허시(핫세)도 2008년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다가, 2018년에 다시 재발했다. 이렇듯 치료 뒤 관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병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끔찍한 암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조선대병원 외과의 김권천 교수는 ‘자기 삶 돌아보기’라고 단언한다.
30년 넘게 수천 명의 유방암 환자를 치료해왔으며, 2021년 한국유방암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 교수는 “좋은 치료제와 수술로 암을 이겨냈더라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면 암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랜 세월 다양한 환자들의 치료 과정은 물론, 그 이후 경과도 지켜봐온 그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암 재발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방암은 한국 여성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다. 2021년 기준 연령표준화 발생률은 연간 10만 명당 68.6명으로 집계됐다.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40대가 가장 많을 정도로 젊은 사람도 많이 걸린다. 흔히 늦어진 초혼 연령과 출산, 서구화된 식단, 운동 부족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김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별 진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환자마다 다른 ‘암에 걸린’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만나면 일단 물어본다. 왜 스스로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나? 사연은 다르지만 대부분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는다. 남편과의 불화, 자식에 대한 걱정, 버거운 직장생활, 원만하지 못한 대인관계 등에서 얻은 마음고생이 병을 불러왔다고 말한다. 암 환자라고 해서 특별한 생활을 하다 온 것은 아니다. 모두 일상을 살다가 병이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살아온 일상은 도대체 어떤 일상이었을까? 환자의 삶을 제대로 뒤져봐야 뭐가 잘못됐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질문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제대로 원인을 찾은 사람들은 치료 효과와 예후도 더 좋았다.”
김 교수는 이런 대화를 기반 삼아 환자들에게 남편성 유방암, 대인성 유방암, 직장형 유방암 등 각각 다른 진단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요소를 제대로 파악해 적절한 해결책을 찾자는 취지였다.
“스트레스는 암 환자의 가장 큰 적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에게 스트레스 요인을 최대한 제거하라고 조언한다. 남편이나 자식을 위해 너무 애쓰지 말라는 이야기도 자주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환자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암을 불러왔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으면 암은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다.”
인터뷰 내내 김 교수는 생활 관리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암 치료에서 병원 비중은 50%, 환자의 생활 관리가 50%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어떤 사람이 맨날 음주운전, 과속운전을 잘한다고 하자. 이런 사람은 언젠가 대형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차 사고가 나면 공장에서 수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리를 아무리 잘해도 운전 습관이 안 바뀌면 사고는 또 난다. 암 환자는 이전까지 지내온 일상에 문제가 있었기에 암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생활습관은 바꾸는 게 맞는 거다.”
그렇다면 암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떻게 생활을 변화시켜야 할까? 김 교수는 모든 생활의 중심에 ‘세로토닌’을 놓으라고 추천한다.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은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로만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는 신체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이다. 세로토닌은 소화, 심혈관 건강, 면역 반응 등 다양한 생리적 기능에 관여하며, 균형 잡힌 세로토닌 수치는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다.
세로토닌은 뇌뿐 아니라 소화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전체 세로토닌의 약 90%가 장에서 생성된다. 이 물질은 음식물이 장을 따라 이동하도록 돕고, 유해 물질이 섭취될 경우 구토를 유발하는 방어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또한 세로토닌은 장내 미생물과 면역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지원해 건강한 장 환경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은 건강과 관련한 대부분의 것을 조절한다. 심지어 잠을 잘 자게 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의 재료도 세로토닌이다. 그렇다면 이런 세로토닌은 언제 나오느냐?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행동 습관을 지속하면 나온다. 좋은 사람과 행복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자연 속에서 산책할 때, 건강에 좋은 채소와 과일을 먹을 때, 잠을 잘 잘 때, 운동할 때 세로토닌은 풍부해진다. 반면 스트레스 받고 힘들 때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누구를 미워할 때도 안 나온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이 들면 몸은 전쟁에 돌입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온다. 뇌도 피곤하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제대로 안 된다. 이 때문에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 행동만 해도 건강은 절로 챙겨진다.”
김 교수는 환자들의 세로토닌 분비를 돕기 위해 마음 습관에 대해 자주 조언한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진료 현장에서 만난 유방암 환자 대부분이 너무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천성이 착하고 좋은 분이 많았다. 잘 참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다가 병을 만난 분들이었다. 정말 안타까웠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환자들에게 ‘삶의 태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정말 열심히, 착하게, 희생하며 사신 것 같네요’라고 말을 건네면 환자가 눈물을 왈칵 쏟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환자가 눈물을 쏟게 했던 일상생활을 완전히 바꾸고, 자신을 아끼고 돌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독려한다.
자신을 아끼며 운동하고, 잠을 잘 자고, 채식을 늘리면 병은 더 멀어진다. 암을 겪었던 환자라 해도 일반인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어쩌면 암을 겪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너무 애쓰며 살아온 환자분들,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질 때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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