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코 프로젝트, 생소한 이름을 가진 이 작전은 일제강점기 말 진행된 첩보 작전이다. 미국 CIA의 전신인 OSS(전략첩보국) 주도 하에 일본의 정보를 캐내는 냅코 프로젝트에는 19명의 요원이 참여했는데, 이 요원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암호명 A, B, C 등의 알파벳 순서를 딴 이름으로 작전에 참여했다. 요원들의 정체가 알려진 것은 광복 후 시간이 훌쩍 지난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요원들 가운데에는 제약 기업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도 있었다. 작전 당시 유일한 박사는 '암호명 A'라 불렸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일한 박사의 냅코 프로젝트가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라는 이름의 뮤지컬로 탄생했다. 영화 <실미도>의 각본을 쓴 김희재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작품을 구상했다.

독립운동가의 당연하지 않았던 선택들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공연사진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공연사진(주)올댓스토리

유일한 박사는 뮤지컬 속에서 '유일형'이라는 인물로 재탄생했다. 유일형은 이미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였으나, 일본 식민주의가 점령한 한국 땅에 들어와 은밀히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런 유일형이 독립운동가 '베로니카'를 만난 이후 조금씩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끝내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뮤지컬은 담고 있다.

어쩌면 뻔한 드라마가 되었을 수도 있는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매력적인 이유는 당위의 논리를 배제했다는 데 있다. 이제껏 독립운동을 다룬 몇몇 작품들은 당위의 논리를 쉽게 채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시대에 태어났으니 당연히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주인공의 영웅 서사를 극대화하는 효과도 있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단면적으로 축소하기도 한다.

당위를 강조하다 보면 개별적인 이야기는 사라지고, 주인공의 고뇌는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 당위성을 뒤로하고, 개인의 특수성과 선택에 초점을 두면 잊혀졌던 이야기가 다시 살아난다. 여기서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장점이 드러난다.

유일형이 하는 선택과 행동에 앞서 '왜'라는 질문이 먼저 제시되고, 이로써 선택의 이유들이 소명된다. 유일형 앞에 나타난 베로니카의 환영이 유일형으로 하여금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호메리 여사는 보편적 박애의 가치를 일깨우는 식이다. 비단 유일형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편 조선총독부 형사과장 '야스오'의 선택에도 나름의 이유를 부여한다. 야스오는 본래 '보웅'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선인이었으나, 일본 관료 '곤도'의 양아들로 입양된다. 이후 야스오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고, 양아들이라는 지위는 온전한 아들로 인정받는 데 걸림돌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야스오는 곤도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그 몸부림은 일본을 향한 과도한 충성으로 나타난다.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공연사진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공연사진(주)올댓스토리

다양한 인간 군상과 선택할 수 없는 무언가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선택의 과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유일형은 자신이 제공한 진통제가 자살 특공대에게 쓰이는 것을 알게 되자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이를 책임지고자 고뇌하는 인물이다. 전쟁에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대사와 대비되어 유일형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동시에 유일형은 이미 가진 게 많음에도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유일형의 선택을 존중하는 부인 호메리 역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헌신을 택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들은 당연하지 않은 헌신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한다.

작품은 이처럼 각 개인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그에 따른 선택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있음도 함께 보여준다. 제국주의의 확장, 전쟁 등은 개인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이다.

넘버 '꿈꿀 수 있게' 중 병실의 환자와 의료인은 상황에 따라 전쟁터의 사람들로 변한다. 또 넘버 '멈출 수 없어'에 등장하는 제약 회사 직원들은 순식간에 자살 특공대의 소년병들로 변한다. 이런 장면들은 일련의 당사자성을 자극한다. 이런 시대에 참혹한 일을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고,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공연사진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공연사진(주)올댓스토리

한편 올해 첫 선을 보인 창작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2025년 2월 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유일형 역에 유준상·신성록·민우혁, 야스오 역에 고훈정·이창용·김건우, 유일형의 친구 황만용 역에 정상훈·하도권·김승용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다.
공연 뮤지컬 스윙데이즈암호명A 유일한 충무아트센터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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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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