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도 정치도 살아서 움직인다. 그리하여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가리란 기대를 판판이 깨뜨린다. 단련하지 않는 인간이 쇠락하듯이, 돌보지 않는 문명은 병들게 마련이다. 민주주의며 자유주의란 대단한 이념과 체제 또한 마찬가지여서, 닦고 가꾸지 않으면 본래의 영광을 찾을 길 없다.

지난 밤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발동했다. 계엄령이 무엇인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특별히 발동하는 긴급한 조치다. 정부는 군경을 동원해 국회를 사실상 폐쇄하려 시도했고 포고령에 따라 언론과 집회 또한 통제하겠다 발표했다. 윤석열이 사유로 제시한 검찰과 행정부 인사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이 과연 그만한 사유인가.

계엄령 발동이란 촌극이 채 두 시간이 이어지지 못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 정치가 다시 이 나라 복판에 비상계엄을 허락했지만, 한밤 중 모여든 이들이 투표를 거쳐 계엄해제를 이뤄냈던 것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하고 분명한 역량을 간직하고 있단 증좌다.

계엄령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한단 것이다. 인류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마련한 제도, 즉 법률에 의하여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을 계엄령은 가치 있게 다루지 않는다. 영장 없이 체포하고 수색하며 군을 자국민에게 대응하도록 한다. 전시와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란 계엄의 요건은, 달리 말하면 매우 특수한 경우에 있어서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존속이 어느 개인의 인권보다 앞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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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계엄령... 현실이어선 안 되는

영화 속 계엄령이 포고된 상황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좀비다. 연상호의 연작 <부산행>과 <서울역> 가운데선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떼 출몰로 국가가 비상사태에 놓인 상황이 펼쳐진다. 통제되지 않는 좀비들의 공격에 시민들은 무방비로 당한다. 끝없이 달려드는 좀비 앞에 경찰이 든 무기들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결국 계엄이 선포되고 군부대가 동원되어 좀비를 맞아 싸우기에 이르는 것이다.

김성수의 <감기> 또한 마찬가지. 감염되면 죽는 치명적 바이러스에 대응해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병이 퍼져나가는 분당 일대를 격리해 고립시킨다. 압도적 치사율을 가진 질병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지역을 탈출하려 시도한다. 시민들을 상대로 군이 발포까지 하게 되는 영화 속 장면은 계엄이란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해외 영화로는 <월드워Z>를 들 수 있겠다. <부산행>과 마찬가지로 좀비떼가 출몰하며 국가가 계엄을 선포하는 게 영화의 시작이다. 군의 통제 하에 시민들은 자유롭게 지역을 옮길 수도 없다. 좀비 가득한 지역에 고립돼 예고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까지 한다.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가히 전 세계적 사태를 그리고 있으므로, 계엄이 선포된 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가 마찬가지다. 영화 속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평택 미군기지의 상황을 보자면, 한국 또한 계엄이 선포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많은 작품이 계엄령 상황을 다루고 있다. 전쟁은 기본이고 좀비떼 출몰과 특이 전염병 창궐 등이 각기 계엄의 이유가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상하는 가운데 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개별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 그것이 계엄령인 것이다.

비정성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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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이 낳은 비극, 대만의 38년

그러나 영화 속 가장 아픈 계엄은 위와 같은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정성시>, 대만 영화인 중 첫 손 꼽는 허우 샤오시엔의 유명한 걸작이 또한 계엄을 다루고 있다. 대만은 계엄령과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큰 상처를 가진 국가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건 대만의 계엄령이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38년 간 계속됐기 때문(시리아가 이후 48년 간 계엄을 지속하기까지 가장 길게 이어진 계엄)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기 때문이다.

<비정성시>는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시작된다. 51년 동안 이어진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는 날이었으니 기쁘지 않았을까. 대만에서 손꼽는 항구도시 지룽의 부자 임아록에겐 더욱 경사스러운 날이었는데, 그건 그 집안에 장손이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아록에겐 네 아들이 있다. 맏아들은 그와 함께 장사를 하는 문웅이고, 둘째 문상은 의사로 일하다 일본군 군의관으로 징병돼 필리핀 전선에 갔다가는 소식이 끊겼다. 셋째는 문량, 중국으로 건너가 일본군을 상대로 장사를 벌였다던가. 귀머거리에 벙어리, 겹장애를 안고 태어난 막내 문청은 사진관에서 밥벌이를 한다.

영화는 임아록 가문에 닥친 불운을 비춘다. 영화의 제목인 '비정성시(悲情城市)'는 슬픔의 도시란 뜻, 이제 일본으로부터 벗어나 바로 서게 된 이 나라에 어찌 슬픔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글 서두에 밝힌 것과 같이 역사도 정치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일제의 지배가 끝났다 해도 약속된 땅 같은 미래는 어디에도 없다.

일제가 물러난 뒤는 대륙에서 들어온 국민정부가 대만을 통치한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바로 그다. 대륙에서 각지 군벌은 물론, 급속히 세를 넓혀가는 공산당과 상대해 제일의 자리를 지켜야 했던 국민당은 '국부천대'라 불리는 대륙에서의 탈출이 있기까지 대만을 안정적 후방기지로써 활용한다.

비정성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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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의 민중 학살, 이어진 탄압까지

말이 후방기지이지 대만에 대한 국민당의 통치엔 문제가 적잖았다. 무엇보다 대만과 대륙을 그 출신부터 철저히 구분한 작업이 뿌리 깊은 차별을 낳았다. 같은 한족임에도 정부와 관계된 모든 요직을 대륙에서 온 소위 외성인들이 차지했고, 명과 청대에 이주해온 본성인들은 배제되기 십상이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산업시설 또한 외성인들에게만 불하됐다. 한국의 경우엔 적산을 불하받기 위해 관료며 정치가에게 뒷돈을 대는 작업이 공공연히 이뤄져 문제가 되었다면, 대만은 아예 출신부터 장벽으로 작용했다 보아야 옳을 테다.

대만에서 식민통치를 겪은 이들을 일제 부역자로 싸잡아 보는 시선 또한 적잖았다. 일제의 통치가 무려 반세기 가량 이어졌고 유화적 통치에 상대적으로 반감이 적은 건 사실이었으나 부역자란 비난은 가혹한 것이었다.

뿌리 깊은 차별이 곳곳에서 사회를 병들게 했다. 일자리와 경제적 불평등이 낳은 불만이 이른바 2.28 사태라 불리는 1947년의 항쟁으로 옮겨 붙게 되는 것이다. 봉기한 민중들이 국민당군에 의해 무려 2만여 명 이상 학살당하는 이 사건 뒤 1차 계엄령이 발동된 걸 기화로, 1949년 재차 발동된 계엄령은 국부천대 이후 대만으로 도망온 장제스 정권에 의해 38년 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1989년 작 <비정성시>의 제작은 이 같은 계엄이 끝난 직후 기획돼 촬영에 돌입한 것으로, 사실상 대만 계엄을 다룬 첫 번째 문제작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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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엄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이룬 대만의 부호 임아록의 집안이 겪는 온갖 고통이 영화 가운데 현실감 있게 등장한다. 본성인과 외성인에 대한 차별은 귀머거리며 벙어리인 문청에게 일본어와 대만말로 말을 걸어 대답하지 못한다며 해를 입히려는 본성인들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 친구 관영은 2.28 사태 수습위에 참여했단 이유로 붙들려 총살을 당한다. 임아록의 네 아들이 하나하나 역사와 무관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고초를 겪고, 마침내 1945년의 광복이 덧없이 퇴색되는 것이다.

계엄은 이 모든 비극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작용한다. 조국의 독립과 대륙의 수복을 부르짖던 군이 그 총칼로써 제 민중을 해하는 일을 계엄이 가능케 한다. 무려 38년의 계엄 동안 관영처럼 끌려가 죽고 다친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아록처럼 제 가장 가까운 이를 잃어야 했던 이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국가를 개별 인간 앞에 세운다는 건 그래서 쉽게 허락돼선 안 된다.

영화는 소통하지 못한 두 세대의 분열과 용서하지 못한 두 세력의 찢어짐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비온 뒤 무더기로 솟아나는 새싹들처럼 자그마한 희망 한 가닥 피어내는 걸 잊지 않는다. <비정성시>는 그 결과로써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된다. 대만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첫 사례라 해도 틀리지 않은 이 작업이 계엄이 해제된 직후 등장했단 건 또 얼마나 유의미한 일인가.

참담함을 넘어 민망하기까지 한 윤석열의 2시간 30여분의 계엄에도 희망을 갖게 되는 건 그에 분노하고 일어난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여기 영화로써 계엄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정성시 부산행 감기 계엄령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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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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