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3학년 2학기>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03.
이 작품의 수많은 장면 가운데 꼭 하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공장으로 찾아온 담임 선생님과 창우가 면담을 끝내고 난 다음의 장면. 성민(김성국 분)과 다혜(김소완 분)와 함께 옥상 한구석에서 그가 사 온 햄버거를 먹으며 공단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컷이다. 이 장면으로 인해 영화 <3학년 2학기>의 모든 이야기는 개인의 것이 아닌 전체의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세 사람이 바라보는 공단 내부만 하더라도 이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 청년이 몇이나 될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업무 강도가 높다거나 개선되지 못한 근무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육체적 어려움은 참을 수 있다(그래서도 안되지만). 병역 특례나 대학 추천 입학 등의 달콤한 말로 학생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고, 가장 기본이 될 작업의 안전보다는 속도나 비용 절감에 훨씬 더 치중하는 분위기. 실습이라는 이유로 법으로 규정된 최저 임금조차 지급하지 않는 노동 구조는 이제 막 사회로 나와 걸음을 시작하는 이들의 고개를 짓누르고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된다. 자신의 내일을 쥐고 있는 어른에게 이들이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04.
"사람이 일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거 생각도 못 했어."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선배 수호의 죽음은 영화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단번에 쏟아낸다. 조금 전 이야기했던 공단 내 수많은 지붕 아래에 감춰진 진실이다. 회사의 에이스로 인정받으며 병역 특례를 받는 것은 물론 연계 대학까지 진학하며 모두의 자랑처럼 여겨지던 그의 죽음이다. 영화는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며 선제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산업 현장의 현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기 시작한다. 수호의 죽음 역시, 정확한 이유가 명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대화를 통해 회사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고 산업재해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 정도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철야 그라운딩 작업 도중 팔을 다치는 창우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 지점을 위해 이전의 장면들로부터 벌써 몇 번이나 복선을 깔아두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왔다. 현장실습을 나온 고등학생에게 철야 근무를 시키는 일, 안전한 작업을 위한 보호구를 마련하지 않는 일, 심지어 사고 이후 조 과장이 보이는 느긋하고 대수롭지 않은 태도는 이 사회가 청년들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집합체다. 현장 검증을 위해 교육청에서 나온 노무사의 일정에 맞춰 다친 창우를 회사로 부르고, 깁스 지지대를 풀게 만들며, 사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은근한 압박을 주는 장면은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을 정도다.
마주앉은 노무사를 대하는 성민과 창우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는 그래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회사가 지금까지 감춰왔던 여러 문제를 밝히고 퇴사해 버리는 성민과 실질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창우다. 물론 창우의 경우에는 이사를 앞둔 가족이 필요로 하는 자신의 취업 장려금 문제를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책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을 고발해야 하는 성민의 협의(俠義)도,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나설 수 없는 창우의 가책(呵責)도 이제 막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짊어져야 할 상황이나 감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이런 상황에 밀어 넣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