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곧 절망과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 아픔이 크면 클수록 사람은 희망을 꿈꾸기 마련이고, 실제로 그것은 현실로 다가올 때도 있다. 가장 큰 절망의 순간에서 희망을 잠시나마 꿈 꾼 사람들 이야기가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에 담겨 있다.
지난 11월 27일 개봉한 해당 작품은 이제 막 개봉 2주차를 지났지만 상영관을 찾아 보기 힘들다. 극장산업 침체로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될 성싶은 대중영화에 스크린 몰아준 탓이다. 4일 기준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전국의 단 24개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본 실관람객들의 반응은 호평 이상이다. CGV 에그지수(실제 관객의 만족도 지표) 97%에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관람 평균 평점 8.56이다. 결코 밝지 않은 이야기지만, 서사의 힘과 배우들 연기가 관객들을 설득한 셈이다.
작은 어촌마을에서 벌어지는 실종사건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관련 이미지.
㈜트리플픽쳐스
영화의 배경은 구체적 지명을 알 수 없는 동해의 작은 어촌 마을이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영국(윤주상)은 시종일관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성격이다. 15년 이상 함께 한 선원 용호(박종환)를 못 마땅해하는 것 같지만 실상 가족처럼 여기고 그의 베트남인 아내 영란(카작)과 홀어머니 판례(양희경)를 그 누구보다 아끼는 속정 깊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배경이 중요한 건 영국과 판례가 살고 있는 해당 마을이 쇠락 위기에 몰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화에 직접 설명되진 않지만 마을 청년 회장으로 사람들의 신임을 받던 형국(박원상)은 갑자기 서울로 떠난 뒤 배신자 낙인을 받는다. 단순히 노령 인구만 남아서도 아니다. 어촌계를 형성해 서로 교류하고 품앗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작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마을 노인을 비롯해 사소한 일에도 서로에게 생채기 내는 말들을 주고받는 이들이 등장한다. 정서적으로도 이미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주요 사건은 용호의 실종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용호와 영국이 작당모의 하고 사망 사건으로 위장한 뒤 보험금을 타내는 과정이 그려진다. 미스터리 요소로 숨겨둘 법도 했지만, 감독은 그런 사건보단 등장인물 간 관계의 긴장감과 영국과 그 주변 인물 간 긴장감을 십분 강조하는 선택을 했다.
용호의 사망으로 판례와 영란이 받게 될 보험금은 4억 원이 넘는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사실 가지고도 수군거린다. 아들을 돈과 바꿀 수 없다며 바락바락 악을 지르는 판례, 영국의 설득과 강요에 결국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영란의 모습은 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여러 단면을 상징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말을 툭툭 내뱉는 영국이 달갑지 않다가 어느 순간 확 마음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얼굴 맞대고 지낸 이웃들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의아해 하다가 영화 중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쇠락해버린 이웃들보다 영국은 용호와 그 가족의 미래가 중요했고, 기꺼이 범죄에 해당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용호의 보험금을 타게 된 영란은 마을 사람들에겐 증오의 대상이 된다. 그 뒤에서 영국과 판례는 두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안도감을 공유한다.
동해안 떠돌며 썼던 시나리오가 영화로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관련 이미지.
㈜트리플픽쳐스
절망 끝에 선 두 사람은 돈도 잃고 아끼던 며느리 혹은 딸 아이 같던 존재도 잃었다. 이것은 더 큰 절망일까. 가라앉을 듯 가라앉지 않는 배처럼 이들의 삶은 바다 위에 겨우 떠 출렁거리며 또 이어질 것이다.
2022년 첫 장편 <불도저에 탄 소녀>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박이웅 감독은 2년 만에 신작을 개봉하게 됐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 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10여년 전 무작정 동해안을 떠돌며 썼던 시나리오를 수정해 만든 지금의 영화는 현재 한국 사회의 단절과 분절의 현실을 뼈아프게 전한다.
영화의 제목은 성석제 작가의 단편 소설에서 따왔고, 해당 소설은 문병호 작사, 권길상 작곡의 '바다'라는 동요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가사는 희망차고 밝은데 멜로디는 묘하게 서글펐다던 박이웅 감독은 그 정서를 영화에 오롯이 표현해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관련 정보 |
제목 : 아침바다 갈매기는(The Land Of Morning Calm)
각본 및 감독 : 박이웅
출연 : 윤주상, 양희경, Khazsak, 박종환
제공 및 제작 : ㈜고집스튜디오
배급 : ㈜트리플픽쳐스
공동배급 : ㈜고집스튜디오
러닝타임 : 113분
관람등급 : 12세이상 관람가
개봉일 : 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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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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