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탄핵의 강을 건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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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입력 2024-12-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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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이재호 논설고문]

국민의힘(국힘)에 한마디 하고자 한다. 필자는 경기도 용인에 산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주소는 10년 넘게 경기도다. 경기도엔 필자 같은 사람들이 절대 다수다. 그들과 좌석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1~2시간 출퇴근을 같이 하다 보면 수도권이 왜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 됐는지를 쉽게 안다. 삶의 격차에서 오는 불편함과 소외감 탓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게다. 선거 지형도 수도권이 서울을 포위하고 있는 형국으로 이미 굳어졌다.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의 122석 중 102석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겨우 19석에 그쳤다. 이 참패가 결정적이었다. 국힘은 총 의석수 108석으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집권여당으로서 최악의 총선 결과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애먼 국민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민심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대통령과 국힘은 가장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데서 실패했다. 그런데도 똑똑한 검사 몇 명만 있으면 대한민국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했다니, 오만한 건가, 무지한 건가. 기초부터 다시 쌓기를 권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 한 달이 다 돼가지만 필자는 아직도 집권여당인 국힘이 어떤 입장인지 잘 모르겠다.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만 하더라도 구구절절 따지고 있는데, 한번 물어보자. 임명을 안 하면 대체 어떡하겠다는 것인가. 국힘은 이번 비상계엄을 잘못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지, 잘못은 했는데 탄핵은 안 해야 한다는 것인지, 탄핵을 당장 하기는 어렵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언제쯤 하자는 것인지,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아, 사과도 하지 않아, 잘했다고도 하지 않아. 그럼 어떡하자는 것인가.
 
국힘이 답을 아예 안 준 것은 아니다. 일부 지구당에서 내건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는 플래카드가 답이라면 답이다. 국힘 사람들은 ‘이재명은 안 된다’는 한 문장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구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동안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이 겪어야 했던 국정 혼란과 불안, 경제적 고통이 겨우 야당 대표 한 사람에 대한 견제와 혐오 때문이었는가. 대한민국 집권당의 시야와 사고가 얼마나 좁은지를 자인한 셈이 아닌가. 그러니까 ‘민생도 뒷전이고 국가경제에 관심도 없는 당’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적어도 국민의 미래에 책임을 지는 당이라야 집권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도 유감이다. 국가와 사회가 비정상적인 상황, 비상계엄 상태에서 공직자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상황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이 비상계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잘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그 이면에서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외국 기업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으로 출장가는 직원들에게 “비행기는 뜨느냐” “일 마치면 바로 들어오라”고 지시하기 일쑤였다고 기업 관계자들은 전했다. 환율, 금리, 수출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은 현명한 대처는 아니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27일 한때 1480원을 돌파하며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국정 정상화를 이뤄야 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두 덫에 빠져 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두 갈래의 수사부터 신속히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당사자인 대통령 본인의 거부와 집권당인 국힘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인식이다. 필자는 다시 묻고 싶다. 헌법재판관을 제때 임명하지 않겠다면 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한덕수 전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는 게 헌법정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대통령 추천 몫이 아닌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체 없이 임명할 수 있다고 본다.
 
헌법재판소 자체 사정도 녹록지 않다. 9인 체제로 운영되어야 할 헌재가 6인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그나마 올 4월에는 재판관 2명이 퇴임해 6인 체제가 4인 체제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안건들을 심의할 수는 있지만 선고는 어렵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한 전 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내란 상설 특검’ 후보자를 추천 의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같은 달 27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승계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회재정부 장관에게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을 즉각 임명하라”고 촉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임명할 때까지 탄핵소추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전날 김민석 민주당 의원은 “따박따박 탄핵할 것”이라고도 했다. 민주당이 이번 정부 들어 탄핵안을 발의한 것은 모두 29회에 이른다. 이재명 대표는 “어떤 반란과 역행도 제압하겠다”며 “국민과 역사의 명령에 따라 빛의 혁명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고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면서 “지금은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는 한쪽에선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삶의 변화와 편리함을 만끽하지만 AI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들, 예컨대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 일자리 감소, 빈곤, 고통, 전쟁과 같은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점 앞에서 난감해하고 좌절한다.
 
격변의 시대에 모두는, 아니 누군가는 변화의 속도를 조정해주고 삶을 더 의미 있고 풍성하게 해줄 리더와 적극적인 참여자들이 필요하다. 공직자들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이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탄핵의 단두대에 섰다”는 고위공직자들의 자조 속에서 그들이 내민 어깨에 기대어 모든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대해본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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