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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변화 거부한 尹부부… 보수도 더 이상 인질처럼 매일 수 없다

입력 | 2024-11-14 23:21:00

변화 가능성 제로(0)임이 확인된 尹
이제 국힘 당원·보수 지식인들 나서서
尹 변화 압박하고 정권 재창출
토대 마련 위한 보수 재건 운동 벌여야



이기홍 대기자


2년 반 동안 실망을 거듭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마지막 반전의 전기(轉機)를 기대했을 것이다. 지지율 10%대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은 데다 마침 임기 반환점이므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쇄신의 다짐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윤석열 대통령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말 이 사람은 안 바뀌겠구나’ ‘변할 의지도, 자신을 변화로 이끌 내적 역량도 없구나’…. 실낱같은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마저 다 고개를 돌리고 포기한다. 성공한 대통령을 기원하며 애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않던 이들은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라며 입을 다문다.

지난달 2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면담부터 지난주 기자회견까지의 짧은 기간에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에 대해서도 암담한 전망을 하게 만드는 특질들을 드러냈다.

첫째, 내재적 관점으로만 자신을 바라볼 뿐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켜 보는 훈련이 전혀 안 돼 있음을 드러냈다. 끝없는 자기합리화와 장광설이 그래서 나온다.

둘째, 그의 ‘와이프 퍼스트’ 철학은 일반인의 가족 감싸기와는 완전히 다른 초(超)상식의 수준임이 드러났다. 소설·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세속의 도덕가치 시선 판단을 뛰어넘는 절대적 차원의 결속이다.

윤 대통령이 진짜로 김 여사의 행태를 고 육영수 여사가 가정 내 야당 역할을 했듯 “여보, 회의에서 너무 화내지 마세요”라고 조언하는 그런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내가 정권 최고 실력자 행세를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아내로서의 조언’이라고 규정했다면 이는 국민 기만이고, 육 여사에 대한 모독이다.

대통령 부부는 변할 의향이 없다. 포화가 거세니 잠시 웅크린 것이다. 김 여사가 그간의 권력 행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뉘우치고 앞으로는 정말 아내로서의 역할만 충실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직접 사과하러 나왔을 것이다.

처참한 성적표에 관중은 떠나고 전광판은 꺼졌지만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다. 트럼프 당선으로 격랑에 휩싸인 국제 무대로 달려갔는데 반짝 반등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효과만으로는 길게 가지 못한다. 길게 보며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할 외교안보 현안에서 성급하고 성과에 안달을 내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

업보(業報)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난다. 업보는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어쩌기 힘든 운명적 굴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의 면담 다음날 부산 범어사 방문에서 “업보로 생각한다”고 했는데 김 여사 문제처럼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데도 안풀고 있는 일을 업보라 칭하긴 곤란하다. 한국의 보수 진영에게 ‘윤석열 정권’이라는 존재가 던지는 고민이야말로 업보라 할만하다.

“우리 대통령”이라고 옹호하다가는 공멸하기 십상인데,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싫든 좋든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인 채 정권 재창출이라는 고지를 올라야 한다.

그 험난한 등정을 위한 필수 선결 조건은 정권의 남은 임기 동안 김 여사 문제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법 수정안을 냈으니 여당도 위헌성과 정략적 이용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며 국면을 주도해야 한다. 특검 대상도 도이치모터스와 명품백, 그리고 용산 이전 과정에서의 김 여사 관련 특혜 여부로 집중해야 한다. 명태균 관련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추진해도 늦지 않다.

김 여사로선 억울한 누명과 가짜뉴스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잘못이 있다면 지금 처벌 받는 게 낫다. 지금 피하면 다음 정권에서 몇 배 더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천지가 무너져도 검찰 포토라인에 못 서겠다면 조용히 아프리카 등 제3세계로 가서 임기말까지 봉사 활동하라. 여사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한 국민이 다시 윤 정권 지지로 돌아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보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 탄핵의 경험 때문에 보수는 그동안 사실상 윤 대통령 부부에게 인질처럼 매인 형국이었다. 좌파에 정권이 넘어가선 안 된다는 걱정 때문에 어떡하든 설득해 끌어안고 가려 했다. 하지만 이러다간 초가삼간 마지막 칸까지 다 태워 먹을 수 있다.

한동훈 대표는 그동안 민심을 전달하려 노력했으나 최근엔 현상 유지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윤석열 아류’가 된다. 윤 대통령의 방향을 바꿔주는 역할을 하면 국민이 다시 쳐다보겠지만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보수진영은 주체적으로 정권 재창출 운동에 나서야 한다. 이를 주도할 동력은 국힘 당원과 지식인들이다. 하루빨리 부인 문제를 정리하고 정상궤도로 돌아와 달라는 당원들의 뜻이 서명운동을 비롯한 조직적 내부 혁신 운동으로 분출돼야 한다.

대학, 싱크탱크, 단체 등의 온건 보수 지식인들도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쇄신을 거부하면 아예 보수진영에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압박을 해야 한다. 야당·좌파의 정략적 이용 가능성을 엄중히 경고하면서 대통령의 변화를 끌어내는 보수 내부 혁신운동이다. 보수진영 원로와 중진, 잠룡들은 개인적 이해타산을 떠나서 다음 세대 보수 리더들이 등장할 토양을 마련해줘야 한다.

내가 뽑았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얽매일 건 없다. 보수가 뽑았어도 잘못하면 보수가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보수의 새로운 터전이 열릴 수 있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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