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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그림이냐 오리냐… 내 생각이 객관적 답이라는 착각을 버려라[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입력 | 2024-12-23 22:57:00

토끼-오리 그림으로 착시 설명한 美 심리학자 조지프 재스트로
“사물을 눈 아닌 머리로도 본다”
한순간도 자신의 주관 못 벗어나
타인은 틀렸다 비난하는 건 경솔




1899년 미국 심리학자 조지프 재스트로(아래 사진)가 착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 ‘토끼-오리 그림’. 보는 이에 따라 토끼로도 오리로도 보일 수 있는 그림을 통해 그는 “인간이 눈으로만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머리로도 본다”며 상대주의적 관점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주관을 배제하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을 왜 다르게 보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우리는 흔히 ‘팩트 체크’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인간의 주관을 배제한 사실 그 자체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타인의 생각이 틀렸다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관을 배제한 순수한 사실, 객관적 세계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과학철학사에 나오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만약 길을 가다가 X-Ray 사진이 하나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흑백사진을 본 사람의 반응은 어떠할까? 흑백그림에는 특정 환자의 건강정보가 들어 있지만 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의학적 지식의 깊이에 비례해서 정보가 다르게 해석된다. 일반인은 전혀 알 수 없지만 의대생이라면 어느 정도 환자의 건강과 질병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 경험이 더 풍부한 의대 교수라면 더 정확한 상태를 설명할 수 있으며, 세계적인 명의라면 다르게 읽어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똑같은 사실에 대해 다른 여러 가지 관점과 설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순수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가설을 통해서 본다. 과학자들도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하게 사물을 관찰하지 않는다. 뛰어난 과학자일수록 나름의 독창적인 이론이 있다. 이것을 관찰의 이론의존성이라고 부른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끌어냈지만, 그 이전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떨어지는 사과만 바라봤다. 그렇게 관찰만 한다고 해서 법칙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해 토머스 쿤은 과학자들의 다른 이론들이 어떻게 경쟁하게 되는지를 과학적 혁명의 구조로 설명한다. 특정 시대마다 지배적인 과학이론(패러다임)이 있는데, 점점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다 보면 다른 패러다임과 경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게 되는 과정이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다. 토머스 쿤은 서로 경쟁하는 과학자들의 이론은 ‘공약불가능(incommensurate)’하다고 말한다. 경쟁하는 과학자들의 생각은 공통분모가 전혀 없을 정도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거의 문제풀이를 그대로 이어받지 않고 전혀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루어진다. 과학은 지식 축적의 과정이 아니라 과거에는 없던 창발적인 관점의 탄생으로 발전한다. 새로운 이론이 경쟁에서 이기면 과거의 이론은 과감하게 폐기될 수 있다. 그러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바뀌고도 일반 사람들이 지동설을 믿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구가 자전을 하면 현기증이 느껴질 것이고, 제자리를 뛰어도 자리가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념을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굳이 과학의 세계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도 확증편향이라는 것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객관적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 선입견, 편견, 믿음, 지식에 갇혀 살면서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다.

좋은 예로는 ‘토끼-오리’ 사진이 있다. 토끼-오리 그림은 1892년 독일 잡지에 처음 실린 이후 1899년 미국 심리학자 조지프 재스트로가 착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그는 “인간이 눈으로만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머리로도 본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으로 채색하여 본다.

니체는 이러한 주관과 객관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우리는 모든 사물을 인간의 머리를 통해 바라본다. 우리는 머리를 제거할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느낀다. 그러한 과정에서 선택, 왜곡, 과장 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의 생각으로 채색되지 않는 순수한 세계는 없는 것일까? 니체는 덧붙인다. “비록 ‘모든 머리를 제거하고 남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상상할 수는 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세상은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이라는 관찰자가 모두 사라지면, 그 대상을 알 수 있는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객관세계를 말하려면 자신의 머리를 제거해야 되는데, 정작 그렇게 되면 세계를 판단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각자 자신의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주관의 세계는 각자의 관심, 지식, 성격, 욕망 등으로 다르게 구성된다.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일은 당연한 결과이며 오히려 생각이 같다면 이상한 일이다.

소설 ‘어린 왕자’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이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히 모자로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보아뱀’으로 인식된다. 이렇게 진실을 쉽게 가릴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순간도 자신의 머리(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각자 자신의 생각 안에서 살아가는 타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건 공감을 얻기 힘들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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