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흰 눈 위에 검은 발자국만 남기고-영화 캐롤과 사울 레이터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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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지혜의 영화와 영감
전세계 영화제 77개 부문 수상
세계적 찬사를 받은 퀴어 영화 <캐롤>
친숙하고 편안함을 주는 사진가
'사울 레이터(Saul Leiter)'
전세계 영화제 77개 부문 수상
세계적 찬사를 받은 퀴어 영화 <캐롤>
친숙하고 편안함을 주는 사진가
'사울 레이터(Saul Leiter)'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백화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더구나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한 이곳은 매장을 채운 손님들과 고객을 응대하는 점원들의 들뜬 말소리로 가득하다. 점원 테레즈(루니 마라 Rooney Mara)는 매장을 둘러보다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고객을 발견한다.
큰 키에 우아한 얼굴, 품위 있고 부유해 보이는 여자는 무얼 골라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서 있다. 그 얼굴이 그 표정이 테레즈의 마음에 잠시 머문다. 테레즈(루니 마라 Rooney Mara)는 캐롤(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이 두고 간 장갑을 발견하고 장갑을 돌려받으며 감사의 인사로 캐롤이 점심을 사게 되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1950년대 뉴욕. 이혼 소송 중이고 딸을 남편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캐롤과 다정한 남자친구가 있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느끼고 있던 테레즈. 두 사람은 만남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상대방에게 끌리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시대적인 상황과 개인적인 상황 모두 두 사람에게 절대 호의적일 수 없다. 더구나 캐롤은 남편과 이혼소송과 함께 양육권을 놓고 분쟁 중이니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벅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어쩔 수 없었던 캐롤은 테레즈와 둘만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토니 헤인즈 감독의 <캐롤>.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과 루니 마라(Rooney Mara)가 주연을 맡아 섬세하고도 저릿한 사랑을 그려낸 이 영화는 칸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고 두 주연배우의 호연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원작 <소금의 값 price of salt>를 원작으로 한 <캐롤>은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데 흰 눈이 덮인 크리스마스 시즌의 맨해튼을 그려내 아련함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영화 <캐롤>의 이러한 장면들은 사울 레이터(Saul Leiter)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토드 헤인즈 감독은 장면의 모티브를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서 얻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흩뿌리는 눈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캐노피 안쪽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캐노피 canopy, 1958> 이라든가 흰 눈을 배경으로 노란색 자동차와 빨간 우산의 색감이 도드라지는 <빨간 우산 red umbrella, 1955), 검은 외투에 빨간 우산을 들고 흰 눈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발자국 footprints, 1950>,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집배원을 찍은 <집배원 postmen, 1952> 등은 캐롤과 테레즈가 처음 만났던 때, 흰 눈이 세상을 덮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 속 장면들은 그대로 영화의 장면과 이어지고 사진 속 시대인 1950년대 역시 그대로 영화 속 시대가 된다. 그래서일까. 영화 <캐롤>의 장면들과 사울 레이터의 사진 속 장면들이 묘하게 쌍둥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시너지는 우리를 1950년대 뉴욕으로 데려가는 데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테레즈는 사진을 찍는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카메라가 들려 있다. 흰 눈이 덮인 도로에서 저 멀리 서 있는 캐롤을 카메라에 담는다. 캐롤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시선이 렌즈에 담기고 캐롤을 향해 초점이 맞춰지는 테레즈의 마음이 셔터에 가 닿는다.
카메라에 조심스럽게 피사체를 담아내는 행동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함께 좋은 사진이 된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 찍힌다는 말은 옳지 않다. 똑같은 피사체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찍는다 해도 촬영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에 따라 가장 좋은 모습과 가장 이상한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캐롤을 필름에 담는 테레즈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모습은 그래서 캐롤을 향한 테레즈의 마음을 보여준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고요하다.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지만 시끌벅적하지 않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1950년대 뉴요커들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사람들,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혹은 그들의 일부분이 1950년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보인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는 일상이 담겨 있다. 유명한 명소가 아니라 그 자신이 살아가는 동네를 찍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어딘가 친숙하고 친밀함이 담겨 있고 익숙하고 편안한 공기가 실려 있다. 사울 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 그의 말처럼 사울 레이터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친밀한 동네를 자신의 시각으로 담아내면서 단순하고 담백하면서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좋은 사진을 남긴 것이다.
테레즈의 사진에 담긴 캐롤 또한 테레즈의 시각과 마음이 담겨 있기에 그 사진 한 장은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테레즈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며 자신의 시각을 담아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영화 <캐롤>에서 이렇게 카메라가 중요한 오브제가 되는 것처럼 노래 또한 작지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차를 타고 캐롤의 집으로 가면서 듣게 되는 곡인데 바로 <you belong to me>이다. 아직 두 사람의 마음이 향방을 알지 못하던 때, 장갑에 대한 인사로 테레즈를 집으로 초대하고 함께 캐롤의 차를 타고 가던 그때, 라디오에서 흐르는 이 곡은 어쩌면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암시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이 곡, <you belong to me>는 다른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한데 영화 <캐롤>에서 아주 짧게 흐르는 이 노래는 충분한 복선과 암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 스태포드(Jo Stafford)의 목소리로 알려진 이 노래는 많은 가수가 불렀고 사랑스럽고 따스한 가사는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당연히 영화에서도 여러 번 쓰였는데 역시 사랑에 빠진 커플을 위한 노래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니 영화 <캐롤>에서 이 노래는 두 사람, 캐롤과 테레즈의 마음이 어떻게 될지 어디를 향하게 될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Carla Bruni - You belong to me]
사울 레이터의 또 다른 말을 인용해 본다.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스쳐 지나간 것들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포착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해 주는 것이 사진이다.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화 한 편을 보고 감동을 하고 사랑에 관해 사람에 관해 사람에 관해 새삼 깊이 느껴보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스쳐 지나간 것들을 되돌아보고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빨간 우산을 쓰고 하얗게 눈 덮인 거리를 걸어가며 검은 발자국을 남기는 사진 <발자국 footprints, 1950>처럼 캐롤의 마음에는 테레즈의 발자국이 남았고 테레즈의 마음에는 캐롤의 발자국이 남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흰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말이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캐롤>, 사울 레이터의 사진 한 장과 꼭 닮은 영화 <캐롤>. 크리스마스 시즌,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도 같은 뉴욕의 겨울 풍경, 사진을 찍는 테레즈 그리고 이 노래, you belong to me. 이런 질료를 가진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캐롤(CAROL) 메인 예고편]
신지혜 칼럼니스트•멜팅포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원작 <소금의 값 price of salt>를 원작으로 한 <캐롤>은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데 흰 눈이 덮인 크리스마스 시즌의 맨해튼을 그려내 아련함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영화 <캐롤>의 이러한 장면들은 사울 레이터(Saul Leiter)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토드 헤인즈 감독은 장면의 모티브를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서 얻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흩뿌리는 눈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캐노피 안쪽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캐노피 canopy, 1958> 이라든가 흰 눈을 배경으로 노란색 자동차와 빨간 우산의 색감이 도드라지는 <빨간 우산 red umbrella, 1955), 검은 외투에 빨간 우산을 들고 흰 눈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발자국 footprints, 1950>,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집배원을 찍은 <집배원 postmen, 1952> 등은 캐롤과 테레즈가 처음 만났던 때, 흰 눈이 세상을 덮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 속 장면들은 그대로 영화의 장면과 이어지고 사진 속 시대인 1950년대 역시 그대로 영화 속 시대가 된다. 그래서일까. 영화 <캐롤>의 장면들과 사울 레이터의 사진 속 장면들이 묘하게 쌍둥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시너지는 우리를 1950년대 뉴욕으로 데려가는 데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테레즈는 사진을 찍는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카메라가 들려 있다. 흰 눈이 덮인 도로에서 저 멀리 서 있는 캐롤을 카메라에 담는다. 캐롤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시선이 렌즈에 담기고 캐롤을 향해 초점이 맞춰지는 테레즈의 마음이 셔터에 가 닿는다.
카메라에 조심스럽게 피사체를 담아내는 행동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함께 좋은 사진이 된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 찍힌다는 말은 옳지 않다. 똑같은 피사체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찍는다 해도 촬영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에 따라 가장 좋은 모습과 가장 이상한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캐롤을 필름에 담는 테레즈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모습은 그래서 캐롤을 향한 테레즈의 마음을 보여준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고요하다.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지만 시끌벅적하지 않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1950년대 뉴요커들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사람들,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혹은 그들의 일부분이 1950년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보인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는 일상이 담겨 있다. 유명한 명소가 아니라 그 자신이 살아가는 동네를 찍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어딘가 친숙하고 친밀함이 담겨 있고 익숙하고 편안한 공기가 실려 있다. 사울 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 그의 말처럼 사울 레이터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친밀한 동네를 자신의 시각으로 담아내면서 단순하고 담백하면서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좋은 사진을 남긴 것이다.
테레즈의 사진에 담긴 캐롤 또한 테레즈의 시각과 마음이 담겨 있기에 그 사진 한 장은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테레즈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며 자신의 시각을 담아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영화 <캐롤>에서 이렇게 카메라가 중요한 오브제가 되는 것처럼 노래 또한 작지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차를 타고 캐롤의 집으로 가면서 듣게 되는 곡인데 바로 <you belong to me>이다. 아직 두 사람의 마음이 향방을 알지 못하던 때, 장갑에 대한 인사로 테레즈를 집으로 초대하고 함께 캐롤의 차를 타고 가던 그때, 라디오에서 흐르는 이 곡은 어쩌면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암시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이 곡, <you belong to me>는 다른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한데 영화 <캐롤>에서 아주 짧게 흐르는 이 노래는 충분한 복선과 암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see the pyramids along the nile
watch the sunrise on the tropic isle
just remember darling all the wile
you belong to me
나일강에 있는 피라미드를 볼 때
열대의 섬에서 해 뜨는 것을 볼 때
항상 기억해줘요.
당신은 내게 속해있다는 것을.
see the market place in old Algiers
send me photographs and souvenirs
just remember dear you dream appears
you belong to me
오래된 알제리의 시장에 가면
내게 사진과 기념품을 보내주세요.
꿈을 꿀 때 기억해줘요.
당신은 나의 사람이라는 것을.
조 스태포드(Jo Stafford)의 목소리로 알려진 이 노래는 많은 가수가 불렀고 사랑스럽고 따스한 가사는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당연히 영화에서도 여러 번 쓰였는데 역시 사랑에 빠진 커플을 위한 노래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니 영화 <캐롤>에서 이 노래는 두 사람, 캐롤과 테레즈의 마음이 어떻게 될지 어디를 향하게 될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Carla Bruni - You belong to me]
사울 레이터의 또 다른 말을 인용해 본다.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스쳐 지나간 것들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포착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해 주는 것이 사진이다.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화 한 편을 보고 감동을 하고 사랑에 관해 사람에 관해 사람에 관해 새삼 깊이 느껴보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스쳐 지나간 것들을 되돌아보고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빨간 우산을 쓰고 하얗게 눈 덮인 거리를 걸어가며 검은 발자국을 남기는 사진 <발자국 footprints, 1950>처럼 캐롤의 마음에는 테레즈의 발자국이 남았고 테레즈의 마음에는 캐롤의 발자국이 남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흰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말이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캐롤>, 사울 레이터의 사진 한 장과 꼭 닮은 영화 <캐롤>. 크리스마스 시즌,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도 같은 뉴욕의 겨울 풍경, 사진을 찍는 테레즈 그리고 이 노래, you belong to me. 이런 질료를 가진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캐롤(CAROL) 메인 예고편]
신지혜 칼럼니스트•멜팅포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