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수괴 윤석열 시민체포단 긴급행동’이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군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모형수갑을 들고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법원이 집회금지 통고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열리는 관저 앞 첫 합법집회다.
권우성
윤석열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후 각 분야에서 '윤석열 지우기'가 점차 속도를 내는 양상입니다. 윤석열 정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 됐던 정부 부처에 균열이 표면화되고, 관망적 태도를 보이던 사법부도 위법적인 윤석열표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정치권에선 헌재에서 윤석열 파면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될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정부내 각 부처의 태도에서 감지됩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9일 "김건희 여사의 종묘차담회는 국가유산의 사적 사용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건희가 지난 9월3일 서울 종묘 망묘루에서 외부인들과 차담회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자 국가유산청이 '공식적 행사'라며 두둔했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판단이 미숙했다"고 사과했는데, 12·3 내란 사태가 영향을 줬을 거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권 수호의 첨병 노릇을 하던 통일부, 국정원 등도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활동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는데, 그간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수 없다며 전단살포를 묵인했던 기존 태도와는 딴판입니다. 국정원도 윤석열이 계엄령 선포의 이유중 하나로 꼽았던 중앙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 선관위 점검을 통해 '부정선거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외교부에선 지난 5일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대통령실 자료를 장관 모르게 일부 외신에 비공식 배포한 부대변인을 곧바로 직위해제시켰습니다.
12·3 이후 법원의 판결은 윤석열의 위헌·위법적인 국정 기조를 정면으로 부인하는데까지 나가는 모습입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9일 2022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윤석열 정부가 화물노동자들에게 내린 업무개시 명령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헌재에 요청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이 사실상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입니다. 법원이 지난주 연이어 남영진 전 KBS 이사장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해임 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것도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 무풍지대로 여겼던 한남동 관저 시위 허용
법원이 그동안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한남동 관저 앞 시위를 허용한 것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경찰이 그동안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열리는 집회를 제한한 조치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지난 21일 처음으로 군인권센터가 관저 출입로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22일 농민들의 트랙터가 경찰과 장시간 대치 끝에 남태령을 넘어 한남동 관저 부근까지 진출해 시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법원의 판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당장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추진해 온 '부자 감세' 세제 개편안은 대부분 좌초될 위기에 놓였고, 조만간 발표될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도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야당이 요구하는 추경 편성만 해도 정부는 겉으론 난색을 표하지만, 갈수록 둔화하는 경기흐름을 고려하면 조기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재정당국에서도 윤석열표 '건전재정' 기조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다분히 윤석열 탄핵 후 제 살 길 찾기의 일환이지만 그간의 잘못된 국정을 회복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윤석열의 파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지난 2년 7개월여의 족적을 지우는 일입니다. 이런 과제는 조기 대선 후 출범할 새정부의 몫이지만 그전이라도 윤석열이 퇴행시킨 경제와 민생, 외교와 안보 등 모든 분야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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