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럽고 놀랍습니다. 그냥 서 계신 줄 알았는데..."
28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일대에서 전봉준투쟁단이 준비한 '무지개떡'을 받기 위해 100m가 넘게 줄 선 시민들을 보고 전봉준투쟁단 소속 고제형씨가 한 말이다.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28시간 동안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벌어진 일명 '남태령대첩'에 참가했던 고씨는 이날 형광색 조끼를 걸친 2030 청년들과 함께 투쟁단이 준비한 무지개떡 1만 개를 나눠줬다. 전국농민총연맹은 남태령대첩 당시 경찰에 가로막힌 트랙터 행진 길을 터준 시민들에 보답하기 무지개떡을 준비했다.
'왜 이렇게 반응이 뜨겁냐'는 질문에 고씨는 "지금도 그날 남태령에서의 밤을 생각하면 감동적이고 눈물이 난다"며 "아마 현장에서 함께 했던 시민들의 연대와 그것을 밤새 지켜본 국민들의 응원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무지개떡을 준비한 이유에 대해 "떡이 가장 농민적인 것이라 생각했다"며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작물은 쌀이다. 이 감동을 시민들과 함께 나눔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무지개떡을 수령한 서울시민 김민선씨는 "트위터(현 X)에서 떡을 나눠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와 줄을 섰다"며 "남태령대첩 당시 밤새진 못했지만 다음날 참가해서 사당에서 한강진역으로 함께 갔다. 80년 광주에서 여러 시민들이 앞장섰듯 이번에도 좌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시민들이 나선 것 아니겠냐"라고 소회를 밝혔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무지개떡 나눔 자원봉사를 한 오지영씨 역시 "남태령대첩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오늘도 트위터를 보고 온 같다"며 "남태령도 농민들과 연대해서 한강진까지 트랙터가 간 거 아니냐. 윤석열 탄핵시키고 나서도 이렇게 연대해서 더 좋은 세상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떡을 나누며 시민들 한 명 한 명에게 "남태령에서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유기농귤부터 핫팩, 어묵, 방석, 차, 커피, 컵라면, 급속충전까지... 나눔 품목도 다양
이날 오후 4시부터 150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4차 범시민대행진을 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의 손길이 지난 동짓날밤 '남태령대첩'처럼 계속되고 있다. 전봉준투쟁단이 준비한 무지개떡을 비롯해 핫팩, 어묵, 방석, 차, 커피, 컵라면, 여성용품, 핸드폰 급속 충전까지 나눔 목록 또한 다채롭다.
제주에서 유기농귤 15kg짜리 126박스, 무게로 치면 1890kg을 들고 현장을 찾은 윤순자씨는 안국역 일대에서 지인들과 함께 귤 나눔을 했다.
윤씨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도 여러 시민들이 선결제로 나눔을 해줬다"며 "이번에도 십시일반 나눔을 해서 이렇게 풍성하게 귤을 나눠드릴 수 있게 됐다. 시민들 한 분 한 분이 집회 현장으로 귤을 들고가는 모습을 보니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는 기자에게 "가장 놀라운 점은 무엇인지 아냐"고 물은 뒤 "거리를 한 번 살펴봐라. 바닥에 귤껍질 하나 없다. 이런 게 민주시민의 모습 아니겠냐"고 자랑스러워했다.
광화문광장 북서쪽 광장에서 손수 포장한 핫팩을 나눔한 정숙경씨도 다르지 않았다. '소미화장품' 직원들과 함께 나왔다는 그는 "회사 차원에서 전 직원이 나서서 1만 개 핫팩에 자사 화장품을 넣고 포장해서 갖고 왔다.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방석 1000개를 준비한 진보당 당직자 김성은씨 역시 "시민이 후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당에 연락이 왔다. 당에서 대신 받아 이렇게 나눔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엉덩이가 시리고 추워서 집회 도중 돌아가는 시민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방석을 벽돌처럼 쌓아놓고 준비해 놨으니 필요한 분들이 와서 많이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