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
㈜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03.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요새 즐거워 보이던데."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성적인 보수주의와 관련한 문제와도 연결된다.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거나 그와 관련한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근거 없는 무시와 멸시 같은 것이다. 어쩌면, 앞서 이야기했던 특정 문화에 대한 우월의식 또한 그 출발점은 이와 같은 사회적 정체성에서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방통위의 청소년 보호팀에서 걸러내는 음란물까지 모두 수용되어야 한다는 뜻은 분명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성이란, 편견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가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대해 영화는 극중 인물의 말을 빌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일깨워서 대중에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괜찮은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단비는 동화와 성인 로맨스, 성적인 편견과 자유, 문화의 계급적인 측면 모두로부터 묶여있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인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가치관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성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면 누구보다 자연스럽다. 동화 작가로서의 그는 그렇지 않지만, 야설을 쓰는 모습에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마치 혼돈(Chaos)의 상태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은 그런 단비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인식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 하나의 성장처럼 느껴진다.
04.
여성과의 원나잇을 불법으로 촬영해 해당 장면을 그대로 소설화하고 피해자들이 신고도 할 수 없고 입증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악용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중심 이야기가 되는 야설 업계의 선두 주자인 야설마왕을 엄벌하는 지점의 서사에는 그래서 두 가지 의미가 놓인다. 성과 관련된 매체와 문화, 산업이라고 해서 규칙과 규범, 도덕적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방종과 범죄까지 수용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나다. 여기에는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야설마왕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이 지점을 세일즈 포인트로 하고 있음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오랫동안 업계 1위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구매하고 소비한 이들의 잘못에 대한 지적도 함께 놓인다.
다른 하나는 옳은 방식으로 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비가 동화 작가를 그만두고 성인 로맨스 장르에 전업하게 되는 과정에는 엇갈린 메일을 보내는 실수와 아버지의 보물 상자 속에 들어있던 '어른 동화'와 같은 몇 가지 계기가 놓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집필한 야설 밑에 달려 있던 독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혼란(Chaos)의 시기를 지나 명확한 가치관과 태도를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한 지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 작가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처음에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겸업 건에 대한 방통위의 심사위원회에서 '여자가 공무원 품격 떨어지게 야설이나 쓴다'는 위원장의 말에 단비가 출입증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모습과도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