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동화 작가가 꿈인 단비(박지현 분)는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청소년 보호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동화를 집필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포부와 함께다. 동화와 청소년 보호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만으로는 서로 비슷한 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출근 첫날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살색의 향연이다. 주된 업무가 유해 콘텐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마주해야 하는 야한 동영상의 수는 40-50편. 동화를 쓰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음란물을 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방심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황 대표(성동일 분)와의 악연은 단비를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의 소중한 자동차를 망가뜨리게 되면서 엮이게 된 단비는 1억 원이라는 수리비를 대신하는 조건으로 20편의 성인 소설을 집필하는 노예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회사 선배 정석(시원 분)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동화와 성인 로맨스 장르의 글을 동시에 쓰기 시작한 단비는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전업 동화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야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재미와 뜻밖의 재능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현빈, 손예진 주연의 영화 <협상>(2018)을 연출했던 이종석 감독의 신작 <동화지만 청불입니다>는 코미디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타이틀이나 시놉시스와 같은 기본적인 정보만으로도 이 작품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달리 의외로 영화는 메시지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선정적이고 노골적인 노출보다 소재나 이야기의 전개에 필요한 코드로서 성적 코드를 활용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려는 모습이 느껴진다.

02.
"솔직히 야설이 다 거기서 거기지 표절은 무슨 표절."

이 작품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의역해 보자면 문화와 장르에 수직적인 의미의 수준과 등급의 차이가 주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처음 단비의 꿈으로 설정되어 있는 동화, 동화 작가는 순수하고 가치가 있는 문학 장르로, 황 대표가 몸 담고 있는 성인 로맨스, 야설 작가는 저급하고 가치 없는 장르로 구분된다. 이를 위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장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야설의 장르에 진입하기 전에도, 처음 방심위의 청소년 보호팀에 입사한 단비는 앞으로 자신이 맡게 될 업무에 난색을 보이며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직업에도 귀천이 따로 있다는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황 대표와 맺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처음 야설을 쓰는 단비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성인 로맨스라는 것이 그저 야한 장면만 가져와 짜깁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작품을 표절하는 일 또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 바탕은 앞서 이야기한 해당 장르의 저급함에 대한 인식에 있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공모전 담당자의 태도나 동화책 출판사 선배의 인식에도 유사한 결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지점의 문제는 영화 상에서의 설정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지점의 주제 의식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풍자로도 여겨진다.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03.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요새 즐거워 보이던데."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성적인 보수주의와 관련한 문제와도 연결된다.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거나 그와 관련한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근거 없는 무시와 멸시 같은 것이다. 어쩌면, 앞서 이야기했던 특정 문화에 대한 우월의식 또한 그 출발점은 이와 같은 사회적 정체성에서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방통위의 청소년 보호팀에서 걸러내는 음란물까지 모두 수용되어야 한다는 뜻은 분명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성이란, 편견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가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대해 영화는 극중 인물의 말을 빌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일깨워서 대중에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괜찮은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단비는 동화와 성인 로맨스, 성적인 편견과 자유, 문화의 계급적인 측면 모두로부터 묶여있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인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가치관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성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면 누구보다 자연스럽다. 동화 작가로서의 그는 그렇지 않지만, 야설을 쓰는 모습에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마치 혼돈(Chaos)의 상태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은 그런 단비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인식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 하나의 성장처럼 느껴진다.

04.
여성과의 원나잇을 불법으로 촬영해 해당 장면을 그대로 소설화하고 피해자들이 신고도 할 수 없고 입증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악용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중심 이야기가 되는 야설 업계의 선두 주자인 야설마왕을 엄벌하는 지점의 서사에는 그래서 두 가지 의미가 놓인다. 성과 관련된 매체와 문화, 산업이라고 해서 규칙과 규범, 도덕적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방종과 범죄까지 수용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나다. 여기에는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야설마왕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이 지점을 세일즈 포인트로 하고 있음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오랫동안 업계 1위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구매하고 소비한 이들의 잘못에 대한 지적도 함께 놓인다.

다른 하나는 옳은 방식으로 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비가 동화 작가를 그만두고 성인 로맨스 장르에 전업하게 되는 과정에는 엇갈린 메일을 보내는 실수와 아버지의 보물 상자 속에 들어있던 '어른 동화'와 같은 몇 가지 계기가 놓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집필한 야설 밑에 달려 있던 독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혼란(Chaos)의 시기를 지나 명확한 가치관과 태도를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한 지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 작가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처음에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겸업 건에 대한 방통위의 심사위원회에서 '여자가 공무원 품격 떨어지게 야설이나 쓴다'는 위원장의 말에 단비가 출입증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모습과도 연결된다.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05.
"나도 크면 꼭 아빠처럼 동화 작가가 될 거야."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가 구조적으로 뛰어난 영화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몇몇 설정은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불모의 영역처럼 여겨지는 코미디 장르 안에서 감독 본인이 이끌어내고자 하는 몇 가지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 개봉한 영화 <히든페이스>(2024)에서 처음으로 농밀한 연기를 보여줬던 박지현 배우의 새로운 면모, 코믹함을 이 장르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성동일 배우의 연기와 함께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작품이 내세울 수 있는 지점이 될 것이다.

지금 세상을 떠난 단비의 아버지 광철(박호산 분)은 동화를 쓰는 아빠가 멋있다던 어린 시절의 단비 때문에 평생 동화 작가로 남고자 했다고 한다. 그 딸은 다시 또, 그런 아빠와의 약속 때문에 동화를 쓰려고 애를 쓴다. 결과적으로 단비는 이제 동화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예술을, 집필을 이어가게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모두 그런 게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의미를 찾고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명확한 가치관과 정확한 신념 안에서.
영화 동화지만청불입니다 박지현 시원 성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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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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