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윤석열 내란 사태에 투입된 군 병력 중 국군방첩사령부, 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와 함께 이름을 올린 곳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하고, 국회의원 등에 대한 체포조 역할도 맡았다. 이를 위해 북한에 침투해 요인 암살·납치가 주임무인 HID까지 준비시켰다.
특히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계엄 당일 발표된 포고령 초안을 작성한 의혹에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이후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함께 '추가 작전' 시행 여부를 논의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심지어 노 전 사령관-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지난 1일 경기 안산 상록수역 인근 롯데리아 매장에서 만나 계엄을 모의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정보사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흔적은 길고 깊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흑금성 사건'. 북한에서 공작 활동을 하던 흑금성(실명 박채서)이 총풍사건으로 남한 공작원임이 탄로난 첩보 사건이다. 총풍사건은 1998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이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고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북한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총격전)를 해달라고 요청한 사건이다.
이 일로 그간 북한군 무력시위도 정치적 거래에 의한 조작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게 일었다(흑금성은 총풍 사건과 관련이 없었으나, 당시 안전기획부가 수사 자료를 밝히면서 '흑금성' 자료를 포함시켜 대북사업을 하던 박채서의 공작명이 공개됐다).
암호명 '흑금성'은 당시 안기부(국가정보원) 소속 대북 공작원으로 일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이력이 정보사 공작관 출신이라는 점이다.
한국군 내 국정원 역할, 국군 해외정보담당 첩보기관
정보사는 1972년 육군 정보대와 육군 첩보대를 통합 '육군정보사령부'로 운영되다가 1990년 육군·해군·공군의 정보부대로 통합했다.
정보사는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국군의 해외정보와 북한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첩보기관이다. 해외정보 중에서도 주로 군사정보 수집이 주 업무다. 국군방첩사령부가 국내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반면 정보사는 그 반대다. 군대 내 국가정보원이라 할 수 있다. '흑금성'이 정보사와 국정원을 오가며 일한 이유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듯 정보사도 국내 정치에 불법 공작으로 관여한 흑역사가 여러차례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육군 정보사 소속 현역 군인들이 중앙일보의 자매지인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오홍근 기자를 대검으로 공격한 백색테러사건이다. 1988년 6월 어느 날 오 기자는 대낮에 큰길 앞에서 괴한 4명에게 흉기로 대퇴부를 찔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었다. 수사 결과 괴한들은 육군 정보사 소속 부대원이었다. 오 기자가 기사를 통해 끈질기게 정부와 군을 비판하자 군 상부가 이를 불편하게 여겼다. 그게 테러의 이유였다.
정보사 예하 부대장(준장)과 소령과 대위 등이 직접 관련돼 있었지만 모두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 솜방망이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범행 동기가 군을 아끼는 충정에서 비롯됐고 피해자의 피해 정도도 가볍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MBC 잘 들어!"... 용산 대통령실 수석이 들춘 '정보사 백색 테러사건'
정보사의 이같은 흑역사가 36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지난 3월. 용산 대통령실 황상무 당시 시민사회수석이 언론사 기자들과 같이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다.
당시 황 수석은 "MBC 잘 들어"라며 MBC를 꼭 집은 뒤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중앙)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린 사건이 있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를 쓰고 했던 게 문제가 됐다"라고 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발언은 MBC의 윤석열 대통령 비판 보도에 대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졌다. 황 수석이 정보사도 감추고 싶었던, 정부 비판 기자에게 칼을 휘두른 추문을 다시 들춰낸 것이다.
군사기밀 유출사건 "20, 30년 지나야 복구 가능한 궤멸적 피해"
정보사 소속 전·현직 군인들이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아 군 전체가 엄청난 손해를 입는 중대 사건도 여러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을 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해외 공작원 명단 유출 사건(2013년부터 정보사 공작팀장 황아무개씨가 해외 정보요원 명단을 포함한 주요 기밀을 팔아넘긴 사건)
▲정보사 대위 군사기밀 유출 사건(2017년 정보사 소속 대위가 경찰서 모 경사에게 대북 관련 군사기밀 문건을 전달한 사건)
▲정보사 군무원 군사기밀 유출 사건(2024년 7월 밝혀진 것으로 정보사 소속의 군무원이 대북 첩보 활동을 하는 군 정보작전 요원들의 신상, 스파이 활동용 위장 기업 정보 등을 중국의 조선족 해커 집단에 유출한 사건)
특히 지난 7월 드러난 '정보사 군무원 군사기밀 유출 사건(일명 '블랙요원 명단' 유출사건)'에 대해 한 전문가는 "20~30년은 지나야 그동안에 우리가 구축해 왔던 군사 정보망을 다시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궤멸적인 피해를 당했다"라고 분석할 만큼 군의 해외 대북 첩보망에 큰 타격을 입혔다.
12.3 윤석열 내란 전후로 정보사가 한 짓
하지만, 군사기밀 유출사건과 황상무 전 수석이 들춘 정보사의 흑역사는 정보사가 12.3 윤석열 내란 사태에 적극 가담한 일에 비하면 약과다.
정보사 소속 군인들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다른 부대원들과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불법 진입했다. 국회의원 등에 대한 체포조 역할도 맡았다.
문상호 정보사령관을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지시로 영관급 요원 10명을 선관위에 파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임무는 선관위에 가서 전산실 위치를 확인하고 그곳을 지키고 있다가 다른 팀이 오면 인계해 주라는 것이었다"며 "정보사 선관위 출동팀에 전산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밝혔다.
또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정보사 예하 부대 100여단(HID) 대기 명령도 김용현 전 장관으로부터 임무를 받고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북한에 침투해 요인 암살, 납치가 주임무인 HID를 정치인 체포 등 내란 업무에 투입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오마이뉴스>는 계엄 당일 정보사가 강원도 소재 HID 부대 요원들 1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소재 HID 부대가 관리하던 전직 요원 20여 명을 동원했다고 보도했다(관련 기사 :
[단독] 정보사, 계엄 주도했나…전직 HID 요원 투입 증언 https://omn.kr/2bg29 ).
이들의 특수 임무는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빠져나가거나 숨어있을 경우 찾아내 체포하는 역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정보사 특임대 역할이 당초 알려진 '국회의원 체포조'가 아니라, 북한군을 위장하는 등 사회 혼란을 초래해 비상계엄의 대의명분을 사후 만들어내는 것이었을 수 있다"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악의 불명예 '내란 사총사'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4일 민주당 내란진상조사단은 계엄 당일 발표된 포고문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이 있다면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했다. 이 때문에 노 전 사령관이 이번 계엄을 실질적으로 설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이후에도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이른바 '추가 작전' 시행 여부를 의논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특히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12월 1일 경기 안산 상록구역 인근 롯데리아에서 만난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했다. 두 전현직 사령관은 햄버거집에서 회동했는데, 정보사 소속 대령 2명을 불러 '계엄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확보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경찰 국가수사본부를 통해 긴급체포됐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18일 오후 8시 30분, 구속됐다. 그리고 긴급체포됐다가 풀려난 문상호 정보사령관 역시 이날 낮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과 합동으로 체포했다.
이로써 정보사는 방첩사, 특전사, 수방사와 함께 '내란 사총사'(四銃司, 시민에게 총을 겨눈 사령부)라는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남겼다.